매거진 감정수집

퇴색된 노력

마흔 즈음에

by 감정수집

즉각적인 성과를 말하는 요즘 콘텐츠. 소셜 미디어가 단연 제일이겠으나 자기 계발서나 스타트업 성공을 신화시 하는 매체도 빼놓을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는 건, 쇼츠 따위의 콘텐츠도 그것을 제작하는 사람의 능력까지 즉각적이지는 않았다는 것과 그러한 사람들 덕분에 콘텐츠 품질이 점점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즉각적인 보상이 가능하다며 사람들을 부추기고 그 부추김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인간들이 있다. 심지어는 노력을 가치 없게 여기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노력은 왜 점점 힘을 잃었을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한때 인기를 끌었지만, 의지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며 질타를 받기도 했다. (정작 본인은 무슨 고생을 해봤냐고 까이는 거지만) 그럼에도 당시 청년들은 대가를 위한 노력이 당연하다고 믿었다. 노력에 대해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청년들에게 아프고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강연이나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부터일 것이다. 그리고 믿음을 확실히 박살 내 버린 건 역시 코인의 등장과 주식시장의 급격한 변동 그리고 끝없이 오르는 부동산이겠다. 매울 수 없는 빈부격차와 같은 사회적 문제들도 있겠으나 그것을 배제하더라도 우리는 노력에게 배신당한 마냥 등한시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내뱉는 "열심히가 아니라 잘해야지"라는 표현도 노력의 가치를 퇴색시킨다. '잘함'은 오랜 시간 꾸준한 노력을 통해 쌓이는 것이다. 스스로의 내면에서 꺼내온 생각이든, 남의 생각을 가공한 것이든 발전시키기 위해선 반드시 노력이 필요하니까. 그러니 열심히가 아니라 잘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숙성이 필요하다. 한데 '열심히' 즉, 노력 따위는 필요 없고 결과만 중요하다는 뉘앙스로 작용하지 않았는가.


사회적인 상황부터, 우리가 겪는 일상에 까지 침투하면서 노력이라는 단어 자체에 부정적인 의미가 점점 스며들었다. '노력'은 더 이상 긍정적 의미의 성실함과 꾸준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효율적이지 못한 일, 어리석게 시간만 낭비하는 행위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노오력'과 같은 단어로 말미암아 그것이 미련하거나 멍청하게 여겨지는 담론이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재빠르게, 똑똑하게 성과를 내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되면서 노력이란 것은 가치를 상실했다.


효율성, 생산성 따위와 같은 기계론적인 사고에 빠지면서 답을 얻기 위한 과정은 생략하고 즉각적인 결과만을 기대하는 태도가 더 만연해 지고 있다. 문제는 즉각적인 결과가 오지 않을 때, 외부 환경을 탓하며 스스로가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등한시한다는 데 있다. 작은 문제라도 해결하기 위해선 고민하고 시도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마저도 번거롭게 느끼고 노력자체를 회피하니 말이다.


요즘 ChatGPT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가 많은데 "써보니까 뭐 별거 없던데"라며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저 몇 마디 질문을 던져보고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으니 별거 아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들은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어떻게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혹은 조금 더 구체적인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노력조차 없다. 한데 챗봇을 쓰려고 조금이라도 노력을 기울여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걸 사용하기 전과 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노력은 단순히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성장과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다. 노력하는 과정에서 많은 걸 얻을 수 있으니까 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런 말은 좀 진부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나는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다. 비록 목표를 향하는 과정이 효율적이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게 효율적인 건지 아닌 건지도 노력한 경험이 없으면 구분할 수 없다고 말이다. 노력을 퇴색되도록 만든 사람들의 문제겠지만, 순수한 의미에서의 노력이 퇴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력은 수고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해야 한다.


이제금 다시 노력을 재조명해야 할 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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