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감정수집

복권을 사게 된 이유

36살에 처음 사본 복권

by 감정수집

복권을 사지 않겠다는 의지를 푼 것은 36살쯤이었다. 운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고, 설사 있더라도 내게는 있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이유다. 얻기 위해선 반드시 열심히 해야 했고, 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내 신념이었다. 그러니 복권은 그저 돈을 갈구하는 허망한 욕망쯤으로 생각했다.


언제부터인가 가끔씩 복권을 사게 됐는데, 운을 바라게 돼서는 아니다. 세상은 예측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인생관에서는 내가 믿던 '열심히'라는 기준 자체도 통용적이지 않고, 개인의 기준일 뿐이라는 는 것을 알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이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삶의 태도와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과거에는 '열심히'라는 요인에 매몰되어 능력주의적 사고에 빠져 있던 것 같다. 엄밀한 태도와 완벽주의 성향을 띠었고, 모든 것이 노력에 비례한다고 믿었으며, 나쁜 결과는 노력 부족의 증거라 여겼다.


지금 다른 것은,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 보겠다는 심리적 의지를 다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함이다. 열심히 임하겠다는 자세는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정리하면, 과거의 열심히는 결과를 통제하려는 시도였다면, 지금의 열심히는 과정에 충실하면서도 결과의 불확실성을 수용하는 것이다.


태도의 변화는 일상에서도 드러난다.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누군가를 탓하거나 잘잘못을 따지는 대신, 잘못을 바로잡고 문제를 함께 타개해 보려는 태도로 바뀌었다. 복권 한 장을 사는 것은 이런 나의 변화된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은 행위일 뿐인 것이다.


복권을 사는 것은 운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확실성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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