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감정수집

생일 축하가 불편한 이유

"태어난 날" 보다 중요한 것

by 감정수집

5년 전이었나, 모든 채널에서 생일의 흔적을 지웠다. 택배를 한가득 받을 만큼 축하를 받은 적도 있는데, 그때나 그 전이나 그리고 지금도 생일이란 이유로 축하받는 것이 즐겁지 않다. 사람들의 축하와 관심 자체가 싫은 건 아니다. '생일을 맞이하는 사람'이란 이유로 주목받는 것에 대한 불편함, 축하받는 사람이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관심 자체가 싫은 건 아닌데도 왜 생일 축하가 불편할까? 이번 생일에서야 고민해 보니, 지난날의 무엇으로 내 존재가 소비되는 걸 불편해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과거의 타이틀로 나를 부각하거나 알리거나 혹은 타인에게 소비되는 것들을 의미한다. 허울 좋게 과거의 영광에 매몰되지 말라는 말을 따르는 사람이라 생각해 왔는데, 알고 보니 내 본성 자체가 그런 것이었나 보다. 어떤 업적으로 고체화되는 게 싫었던 거다. 그러니까 단지 생일이라는 이유로 축하와 관심을 받을 이유가 없음에, 그 상황을 배타적으로 느꼈던 거다.


나는 살아있는 존재로써 끊임없이 나를 입증하는 것에 쾌감을 느껴왔다. 매 순간 인정받기 위해 부딪혀야 하는 고난이 있음에도, 생산을 반복하는 행위는 열정과 도전을 일으키며 나를 매번 창조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물리적으로도 신체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지난날의 어떤 것들로 인정받는 것이 싫은 건 아니다. 나도 누구 못지않게 자랑하길 좋아한다. 다만 따지자면 생동감 있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을 뿐이다.


정리해 보면, 생산의 과정에 즐거움을 느끼고 그 보상으로 관심받는 것은 의식적으로도, 본능적으로도 추구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의식적으로 추구해 온 것이 실제로 내 본성이었다는 걸 깨닫고 나니 자존감도 꽤나 높아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표면적으로는 추구하는 삶이니, 누군가가 나에게 그것을 멋있다고 할 수는 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칭찬은 좋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을 멋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본성과 추구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지 못한 채 추구하는 것을 본인이라 착각하는 사람이 멋대가리 없는 사람이다. 중요한 건, 본성과 추구하는 것 과의 간극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 간극이 매우 넓음에도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멋지다. 그리고 본성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자신만의 멋을 찾는 사람도 멋지다.


이제 와서 굳이 생일을 챙기자면, 조용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사용하고 싶다. 이미 생일은 지났지만, 왜 생일을 불편하고 부담스러워했는지 고민해 보니 그렇게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일, 즉 '태어난 날'이라는 고체화된 관점이 아니라, '태어남'이라는 동사적 시선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살아있는 과정에 집중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역동적인 나는 어떻게 존재해 왔고, 존재해 가야 할지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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