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려서 고생을 조금 했던 시기엔 될 데로 되라는 식이 어지만 지금은 삶의 소중함을 너무 잘 알기에 죽음이라는 것은 단어조차도 낯설게 느껴졌다.
일교차가 커지는 요즘 같은 계절엔 소식이 많이 들려오는데, 봄, 가을 시기엔 당연한 듯 찾아오니 크게 당황스럽지도 않은가 보다. 그런데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 이유가 계절만 되면 돌아오는 부고 소식 때문은 아니고, 동호회에 같이 운동하는 분의 암 소식 때문이다. 수술은 두 달 정도 전에 하셨고, 지금은 운동도 조금씩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호전됐다. 누가 봐도 큰 병을 앓은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술 전 그분의 모습을 알기에 얼마나 힘들어했을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선고를 받았을 때 보다 수술 날짜를 받고 수술을 기다리기 직전까지가 가장 힘들다고. 수술을 받은 분도 이야기에 동감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그분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흘러나왔는데, 그때 생겼던 두려움은 아닐까 한다.
그 흘러나오는 두려움이 결국 나에게도 영향을 끼쳤는지 나도 모르게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저 상황이라면 저 정도로 태연할 수 있을까? 그분도 아마 속으로는 수많은 감정들이 요동쳤을 테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지난 시절처럼 느긋하고 여유스러운 모습이었다. 눈빛만은 모든 감정을 대변하고 있었지만 행동은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복잡하다. 그 두려움이 어떤 두려움일까? 나는 죽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라고 며칠을 생각해 봤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그것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고,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나는 사 후세 계란 걸 믿기도 하고 믿지 않기도 한다. 그런데 사후세계란 걸 강력하게 믿고 싶기도 했다.
아직 죽음을 생각해 볼 수 없고,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신기할 것이 나이를 먹으며 죽음에 한발 씩 다가갈수록 그것을 생각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다는 것이다. 아직 그 정도를 생각할 나이는 아니지만, 아마도 삶에 대한 욕심 때문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