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평가한다는 것
이번 주는 발표 준비로 매우 바쁜 한주였습니다. 게다 오늘 결혼 사회까지 말이에요. 사회를 꽤나 많이 본 편인데도 주례 없는 사회는 처음이라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실수가 있을까 걱정을 좀 했지만 다행히 깔끔하게 마치고, 과분한 칭찬까지 받았습니다.
중요한 발표는 다음 주인데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혹시나 투자자를 얻을 수도 있는 기회라 상당히 심혈을 기울여 준비 중입니다. 이 주 전에 예선을 치르고, 지난주에 발표 컨설팅을 받은 후 이틀 후면 본선이 진행되는데요. 브런치 포스팅을 마치면 또 대본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저는 어떤 공식석 상에서 말을 할 때 준비된 나와 준비되지 않은 나로 극명히 갈립니다. 분명 생김새는 같은데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죠. 그런데 발표 컨설팅을 받을 때 너무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 이렇게 이번 글의 주제가 되었네요. 발표를 처음 해보는 거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까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러려니 했지만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역시나 속상하더군요.
저도 전에 회사를 다닐 땐 기업들 사업계획서 컨설팅을 간혹 했었습니다. 정부 기술개발사업을 받기 위해 작성하는 사업계획서는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쓰는 수준이었고요. 기술교류회 기조연설도 한번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발표를 처음 해보냐는 소릴 들으니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하지요. 물론 처음에는 정부과제가 아니라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투자를 받기 위한 사업 발표는 처음이니까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긴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눈뜨니 속이 상하더군요.
그날 컨설턴트 앞에서의 사전 발표는 참 제가 생각해도 너무 저급했습니다. 발표 대본도 완성되지 않았고, 발표자료도 겨우 2시간 정리해서 마감시간만 맞춰 보낸 거였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속상했던 건 컨설턴트는 기업이 원하는 바를 잘 지도해 줄 사람이지 남을 타박할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저 역시 컨설팅을 했던 사람으로서 나에게 찾아온 사람은 당연히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찾아온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컨설턴트로서의 자격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업의 숨겨진 가능성을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기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기업의 정체성을 무엇인지 그리고 기업의 사람들은 어떠한지를 면밀히 보는 것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행동이지만. 저를 컨설팅하시는 분은 그저 자신의 지식 내에서 발표자료로만 판단하더군요. 사업계획서도 분명 예선 때 제출했는데 말입니다.
이를 통해 남을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또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예전에 그러지 않았나 라고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했고요.
작년에 창의융합설계라는 과목으로 계절학기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강의 자체는 너무 재미있고 특별했는데요. 학생들의 학과 제한이 없어 인문, 경영, 공학, 예술 학과가 전부 섞여 진행된 강의였습니다. 강의 내내 웃으며 진행됐고, 토론식 강의를 좋아하는 지라 매번 팀별 주제를 던져주고, 팀별로 돌아가며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문제는 학점을 평가하는데서 시작됐는데, 평가 시스템을 관련 논문 준비 중인 대학원생에게 위임했기 때문입니다. 분명 개개인으로 보자면 강의를 진행했던 저도 그리고 평가를 진행했던 그분도 문제는 없었습니다. 제가 평가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까라는 걱정 때문이었는데, 학과에 구분이 없다 보니 일반적인 평가 시스템으론 평가가 힘든 이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분명 저의 잘못인 듯합니다. 제가 가르쳤으니 당연히 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맞는데요, 저는 편애와 평가를 구분하지 못해 평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렸던 것입니다.
남을 평가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반드시 철학적 사고능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할 것 같고요. 평가가 어려운 이유는 세상에 진리처럼 적용되는 정답이 없다는 거겠지요. 그래서 저는 싫어하는 누군가에 대한 험담을 할 때면 집으로 돌아와 반성합니다. 누가 남을 평가해, 나 스스로나 잘 해야지 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남을 점수 매겨야 할 상황이 종종 찾아오곤 하는데, 앞으론 그럴 때마다 이번 주가 생각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