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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 Jan 03. 2019

[영화 에세이]#8.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1)

우리가 껴안아야 할 사람들

 우리가 껴안아야 할 사람들



 어릴 적 한민족이라는 말은 참 멋들어지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끈끈한 유대감도 있는 것 같고, 오천 년 역사의 자긍심도 있었으니. 처음 산 자전거의 자물쇠 비밀번호를 단기(檀紀)로 계산한 내 생일로 해놓기도 하였다. 초등학교 6.25 글짓기 대회라도 있으면 사뭇 진지하게 끄적이기도 했다.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염원에 대해서. 노벨평화상을 우리나라에서 받았다더라 하는 소식을 건너 건너 들은 어린 날에는 내가 어른이 될 때쯤 통일이 되어있겠지라는 생각도 하였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가 6.25 참전용사였음을 알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이다. 어딘가 무슨 전쟁에 참전하였음은 진즉 알고 있긴 했지만. 나는 그를 한참 나이 들어서 뵌 기억밖에 없지만, 어머니가 자라날 적 외할아버지는 폭군이셨다. 매일같이 술에 취해 이리저리 주먹질 고함을 질렀다더라. 외발로 여섯 아이를 키워내는 설움이 담겨있긴 하였겠지만 서도. 그럼에도 감히 상상해보건대 어느 시대를 탓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의 한쪽 다리를 앗아간 것은 북괴도 아니오, 외적도 아니오, 어느 동포의 뺑소니이기에.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 장률)은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라는 콜론(:)으로 구분된 제목은 1부가 끝난 뒤에 등장하면서 두 이야기 사이에 경계를 긋는다. 다시 말해, 1부의 제목은 ‘군산’, 2부의 제목은 ‘거위를 노래하다’인 셈. 이러한 병렬적 배치 덕분에 우리는 자연스레 두 이야기 비교하고 연결 짓는다.


 윤영은 아마도 尹影, 윤동주의 그림자이다. 시인 윤동주는 만주에서 태어나, 연희전문학교를 나왔으며, 일본으로 유학을 가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죽는다. 비슷하게도 윤영은 화교학교를 다녔고 연희동에 살며 시를 썼다. 그리고 윤영은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어머니의 고향, 군산으로 향한다. 카메라는 그를 앞세워 관객을 1부, 군산으로 이끈다.(*)


*  윤동주는 대한민국의 근간과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윤영은 윤동주의 그림자처럼 윤동주를 쫓는다.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제목이 등장하는 시점

#. 1부: 군산


 군산에 도착한 윤영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 와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영화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대사,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는 역사와 공간의 반복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윤영은 민박집 딸, 주은을 만나기도 전에 그녀와 섬에 도착한 장면을 떠올린다. 한편 그가 바라보는 5개의 액자에는 앞으로 이 영화에 등장할 대상과 공간이 담겨있다. 이 역시 영화 속 이야기가 이미 반복된 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그들의 탐구는 그 이전 세대, 다음 세대. 그리고 군산과 서울에서 반복된다.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칼국수집, 거위, 대나무, 철로, 폐가

 군산에서 그들은 재일동포가 운영하는 곳이자 적산가옥을 개조한 민박집에 묵는다. 이곳은 화면 양측으로 프레임을 두며 인물들을 옥죄어 그들을 한껏 웅크리게 하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아내를 잃은 주인과 그 딸이 있다.

 민박집주인은 상실의 세대이고 딸은 상실 후의 세대이다. 그곳에서 주인과 딸, 주은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cctv로 감시를 하면서 손님을 가려 받는다. 영화는 이 두 인물을 통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물론 이 두 가지 모두 실패하지만.     


 집주인은 아내를 잃은 사람이기에 상실을 겪은 세대이자. 그의 말마따나 옛사람이다. 그는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필름을 사용한다. 한편 그는 사람을 찍지 못하고 풍경만 찍는다. 송현이 자신을 찍어 달라할 때에도 슬쩍 바다를 향해 카메라를 돌릴 뿐. 그는 자기 방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다. 집주인은 인물들을 직시하지 못하고 과거의 상흔이 남은 배경만을 바라본다.(*) 일본에서 손님이 왔을 때 방이 다 나갔다고 둘러대는 장면은 그의 자기 방어를 보여주대표적인 모습.

 이에 윤영은 방이 많다고 소리친다. 군산 어느 길거리에 전시된 사진전처럼, 일제의 만행만을 전시해놓기만 현실에 있는 인물들을 외면하는 것으로는 파편화된 민족을 봉합할 수 없기에.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 이 영화에서 이동수단(vehicle)은 달려가는 역사가 행하는 폭력을 의미한다. 윤영의 어머니는 기차, 민박집 딸, 주은의 어머니는 트럭에 치여 죽었다. 송현과 주인이 거니는 바다에도 vehicle이 등장한다. 바다에서는 불도저가 땅을 헤집는다. 불도저 역시 기차, 트럭과 마찬가지로 vehicle이기에 불도저가 헤집는 바다는 역사의 상처가 남아있는 곳인 셈이다.      


 집주인은 필름 몇 통이 사라지자 송현에게 그 행방을 묻는다. 송현은 이렇게 답한다. ‘필름이 없어졌는데, 왜 저에게 물어보세요?’ 이 대사를 기점으로 주인과 송현도 갈라서게 된다. 역사의 상실을 상실 후에 남겨진 이들에게 묻는 것은 조선족이 아닌 사람이 조선족의 역사를 외치는 것만큼이나 우문(愚問)이다. 우리들은 우연히 이 땅에 태어나 상처 후의 시대를 살아갈 뿐이니까.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필름은 역사를 뜻한다. 따라서 필름이 사라진 것은 역사의 상실을 의미한다.

  상실 후의 세대인 주은은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집 밖으로 나서지 못한다. 다만 cctv를 통해 집안 곳곳을 바라볼 뿐. 민박집주인과의 차이점이라면 민박집주인이 바라보는 것은 상흔이 머무는 풍경지만 주은은 cctv를 통해 인물을 바라본다. cctv는 주은이 들여다봄에 따라 확대되기도 하고 옆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주은의 시선에는 능동성이 존재한다. 이 능동성은 윤영이 의자에 앉아있을 때와 주은의 어머니로 보이는 기모노 입은 여인을 바라볼 때 두드러진다. 즉, 주은의 시선은 같은 아픔을 공유한 사람을 헤아리는 시선이다. 윤영은 이런 주은의 시선을 마주 본다. 그리고 그는 주은의 공간으로 침투한다. 이 사건으로 주은은 드디어 집 밖으로 나서게 되고, 주은이 떨어뜨린 인형을 주은에게 건네는 것으로 윤영과 주은의 연대는 공고화된다.      


 송현이 그들의 연대를 이해하지 못하자 윤영은 개꿈을 꾼 것 같다며 민박집을 떠난다. 윤영과 주은이 향하는 곳은 섬, 섬으로 가려면 필히 바다를 건너야 할 터. 그들이 배를 타고 섬으로 향하는 것은 상흔의 공간인 바다, 민족을 갈라놓은 어떤 경계, 우리가 공유하는 상처를 넘겠다는 의도이다.(*)     


* 인물들이 공유하는 멸치국수는 바닷소리로 확대되는 것으로 그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 관객은 카메라와 시선을 공유한 채, 윤영을 앞세워 군산을 탐색한다. 덕분에 몇 차례 카메라가 윤영을 이탈하는 장면은 관객을 영화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처음으로 카메라가 윤영을 이탈하는 순간은 어느 폐가에 들어섰을 때다. 카메라는 윤영에서 시선을 거둔 채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다시 윤영을 잠깐 비추나 윤영은 프레임 밖으로 사라지고 결국 담아낸 것은 창에 갇힌 윤영의 모습이다. 이 폐가는 아마도 과거 언젠가 묵었던 민박집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이런 연출과 공간 설정으로 과거를 탐색하는 방법론의 실패를 강조한다.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송현이 108배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에도 카메라는 윤영을 이탈한다. 줄곧 윤영의 뒤를 쫓던 카메라는 성급하게도 윤영의 어깨너머 그보다 먼저 고개를 들이민다. 하지만 이어진 쇼트에서 카메라는 방 안으로 들어와 있는 반면 윤영은 들어오지 못한다. 카메라는 윤영이 돌아서는 모습만 비춘다. 이는 다음 장면에서, 윤영이 송현이 아닌 주은의 쇄골을 만지는 에 합당성을 부여해준다.     


  섬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다시 한번 카메라가 윤영을 이탈한다. 배 위에서 카메라는 윤영을 비추다가 팬(pan)하여 바다를 비춘 후 다시 주은을 비추는 것으로 둘의 연대를 이미지화한다. 그러나 섬에서도 그들은 대나무 숲에 갇히고 만다.(*) 그들은 바다로 내려가지만. 이후 이어지는 장면은 병실에 쓰러져있는 주은의 모습. 주은이 쓰러진 까닭은 바다를 마주해서일 테지만 경찰은 윤영을 몰아세운다. 서로 같은 아픔을 공유하지만, 서로를 돕는 것이 범죄로 취급되는 우리네 모습과 꼭 닮아있다.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 절에서 윤영이 대나무 숲 안에 갇혀 있는 장면으로 대나무와 창살을 비슷한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다.

   

 군산은 과거를 각인하는 것과 같은 아픔을 공유한 낯선 이들과의 연대 모두 실패한 공간이다. 1부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군산에서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송현과 윤영은 다시금 서울로 향할 수밖에. 서울로 돌아온 윤영은 치과의 야경을 보려 발버둥 친다. 야경을 보여주면서 1부는 막을 내리고 2부가 시작된다.(*)     


* 윤영이 바라보고자 하는 야경이 무엇인지는 2부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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