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탓인지, 계절 탓인지 요즘 ‘하오체’에 꽂혔다.
출발은 국내 ‘아트 팝’의 선구자 김효근 님의 노래였던 것 같다.
성악의 예술성과 가요의 대중성을 듣기 좋게 버무린 장르인데, 첫사랑이나 눈 같은 노래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애정 하는 곡인데 가사 중 일부다.
“조그만 산길에 흰 눈이 곱게 쌓이면 내 작은 발자욱을 영원히 남기고 싶소
... 눈감고 들어 보리라 끝없는 님의 노래여. 나 어느새 흰 눈 되어 산길 걸어간다오”
(눈)
“그대를 처음 본 순간이여. 설레는 내 마음에 빛을 담았네.
말 못 해 애타는 시간이여. 나 홀로 저민다.
외로운 겨울새 소리 멀리서 들려오면 내 공상에 파문이 일어 갈 길을 잊어버리오...”
(첫사랑)
세계적인 바리톤 고성현 님이 부른 ‘시간에 기대어’도 역시 하오체의 가사가 일품이다. 노래가 절정으로 치닫는 부분이다.
“난 기억하오. 난 추억하오. 소원해져 버린 우리의 관계도,
사랑하오 변해버린 그대 모습, 그리워하고 또 잊어야 하는 그 시간에 기댄 우리...”
(시간에 기댄 우리)
평상시 하오체로 말하는 건 어색하고 장난스럽기까지 하지만, 글에서 하오체는 다른 느낌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다른 높임 어법이 말하는 사람을 낮추는 것과 달리 본인을 낮추지 않으면서 동시에 상대를 배려하는 특이한 높임 어법이라는 거다. 겸손하지만 당당하고 쿨한 ‘차도남’ ‘차도녀’의 어법이랄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품격 있고, 겸양하고, 부드럽고, 따뜻하다. 특히 듣는 이의 감정선을 건드려야 하는 노랫말에선 잘만 쓰면 그 효과가 배가되는 것 같다.
대중가요에도 하오체가 주는 감동이 있다. 모든 가사가 하오체로 적힌 김광진의 편지가 대표적일 거 같다.
실제 가사의 화자는 김광진 님 아내가 김광진 님과 연애하던 시절에 부모의 권유로 선을 보았던 다른 남자이고, 가사의 ‘사랑한 사람’은 김광진 님의 아내. 그리고 가사의 ‘좋은 사람’은 결국 김광진 님이 되는 사연이 담긴 곡이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
오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
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 맘만 가져가오” (편지)
김광진의 편지를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흥엉거렸다면 박효신의 연인은 최근에 꽂힌 노래다.
“연인, 오 나의 연인아
내 사랑아, 넌 나의 기쁨이야. 우리의 밤을 불 비춰주오
눈부신 그대의 이름으로 날 지켜주오
너의 그 슬픔과 기나긴 외로움에는 모든 이유가 있다는 걸
너의 그 이유가 세상을 바꿔 갈 빛이라는 걸
날 보는 두 눈에 나의 깊은 밤, 그대는 나만의 연인이오.” (연인)
멜로디가 아무리 좋고, 가사가 아무리 훌륭해도 만약에 이런 노래를 하오체가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면 이 느낌과 맛이 나지 않았을 거다.
어떻소? 정말 좋지 않소? 우리 함께 듣기로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