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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거나달 Oct 20. 2021

가족의 부재


 ‘야호’ ‘앗싸’ 

아내와 아이들이 제주로 보름간 여행을 갔다. 빨래며 간단한 설거지며 약간의 집안일이 생기겠지만 집에서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 그런데 웬걸? 48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만의'와 '시간' 사이에 '고독한' 이란 형용사가 슬그머니, 그러나 또렷하게 끼어들었다. 시간은 이렇게 흘러갔다. 대체로 저녁 식사와 반주를 곁들인 평일 귀가 이후엔 TV 재핑을 하다, 졸다가 잠이 들었다. 휴일엔 좋아하는 운동을 했지만, 역시 귀가 후엔 평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책을 잡아도 글이 안 들어왔고, 혼자 듣는 음악은 감정 없이 공간에 퍼지다 사라졌다. 마침 에릭 사티의 곡이 왜 자꾸 눈에 들어왔는지, 평생을 처절한 외로움 속에 살다 간 그의 삶이, 시공간을 넘어 우리 집 거실 스피커를 통해 흘렀다.

      

 평소에 그렇게 갈구하던 여유를 알차게 쓰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도 싫었다. 그래서 어차피 고독한 거, 근사한 이유라도 찾으러 다시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를 청했다. 내 자아를 어느 한적한 숲길에 데려다 놓은 듯한 

몽환적인 피아노 연주곡으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때 좋은 음악이다.      

 

자신이 만든 음악처럼 외롭게 인생을 마감한  프랑스의 작곡가 에릭 사티


 그리고 얻은 깨달음. 내가 평소 생각했던 가정(家庭)에서의 '가정(假定)'이 틀린 거였다. 첫째 아이들에게 친하고 편한 아빠를 자처했던 난 그동안 아이들을 위해 놀아준 게 아니었다. 그냥 나를 위해 아이들과 같이 논 거였다. 물론 가끔은 아닐 테지만, 아이들과 와이프는 집에서 나의 유희를 위한 나의 친한 친구들이었던 거다. 두 번째, 가끔 시간은 철저하게 상대적인 거였다. 아껴서 만든 시간이 더 소중한 거였고, 그래서 다시 시간은, 꼭 아껴서 써야 하는 절대적인 소중함이었다.      

 

 가족과 시간에 대한 깨달음을 안고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늦은 저녁,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세 친구들의, 마치 '쇼 미 더 머니'의 하이라이트 같았던 ‘이야기 배틀’. 지난 1주일 동안의 제주 이야기는 세밀한 묘사와 적절한 비유를 곁들여 1시간 만에 깔끔하고 빼곡하게 정리됐다. 세 친구가 시간당 쏟아낸 단어의 수가 내 귀로 담아낼 용량을 벗어나 살짝 피로가 몰려왔다.      

 

그러나, ‘다시 고독을 그리워하면 안 되겠지?’ 이 ‘쇼 미 더 머니‘가 내가 몇 시간 전까지, 애타게 그리워한 수백, 수천만 원과 바꿀 수 없는 그 시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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