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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거나달 Oct 20. 2021

사치스럽게 살기로 결심했어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님의 수상 소감과 기자회견 중에 직관적으로 꽂힌 말은 “저는 60이 넘으면서 사치스럽게 살기로 결심했어요. 내가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사치스러운 거 아니에요?”였다.  회사 특파원 선배가 ‘미나리를 선택한 동기?’를 물었는데, ‘예전엔 나름 (흥행 여부나 출연료, 상대 배우, 제작 환경 등으로 추정) 계산을 했는데, 60이 넘어선 그냥 작품을 가져오는 프로듀서나 감독이 좋으면 그 작품을 한다’는 취지의 답변이었다. 그렇게 사람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면 그 사람의 작품에 출연한다는 걸, 이 대배우는 ‘사치’라고 표현했다.      

 

2021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님

 미나리 직전, 평단에서 호평을 받고, 미나리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상을 휩쓴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산동네 조그만 집에 혼자 사는, 정 없어 보이지만 속정 깊은 할머니’로 분한 윤여정은, 세상 되는 일 없지만 일상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세입자 찬실이와 콩나물을 다듬으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 대신 애써서 해” 그러자 무덤덤한 경상도 사투리로 찬실이는 “그럼 오늘 일은 콩나물 다듬는 일이겠네요?” 이런다. 영화 속 할머니가 그냥 영화 밖 윤여정 님과 똑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      

 

 돌아보면 그렇다. 뭔가 늘 계산하고 앞뒤 맥락을 따지고, 효율을 고민하지만, 그 선택이 맘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노력이,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였을 때 ‘나 이 만큼 꼼꼼하게 살폈잖아? 그러니 괜찮은 거야’라는 위안을 주기도 하니, 노력은 또 그만큼의 의미가 있는 것이고. 하루 세끼 ‘뭘 먹을까?’에 대한 단순한 생각부터 여행지를 고르거나, 집을 옮기는 것, 그리고 아이를 더 낳을까?라는 복잡다단한 문제까지, 내 경우엔 중요한 결정일수록 깊은 고민 없이 오히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했던 것 같다.  마치 12만 원짜리 맘에 드는 티셔츠를 사고 싶은데,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고민하다가, 결국엔 할인을 많이 해주는 8만 원짜리, 맘에 조금 덜 드는 티셔츠를 사기를 후회하며 반복하지만, 아파트를 벗어나 집을 짓기로 한 결정이나 집을 짓기 위해 땅을 고른 결정을 할 땐 ‘여기 좋잖아. 느낌 오잖아’ 이러고 바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버린 거 말이다. 난 60이 안 됐는데 참 ‘사치스러운’ 결정을 했던 것 같다. ‘아, 위험한 결정이었나?’  

   

 결은 조금 다르지만, 얼마 전 똑똑한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이 TV에 나와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일생은 되는 대로’ 사는 게 인생의 기조라고 했다. 감히 해석을 하자면,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채우는 삶은 결국 되는 대로 내버려 둬도 충실한 일생이 될 거라는 믿음일 수도 있고, 아무리 뭔가 열심히 해도, 일생의 주기로 보면 노력보다 큰 변수가 훨씬 많다는 현실론 또는 경험론일 거 같은데, 아마 수천 권의 책과 수천 편의 영화와 수천 곡의 음악을 두루 섭렵한 이동진 님의 경우 전자에 가까울 것 같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일생은 되는 대로'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

 나에게 자유를 주는, 내 감정에 충실한, 나의 경험과 사고에서 뽑아낸 그 느낌을 오롯이 믿는 ‘판단의 사치’를 누리며, 전체 인생을 되는대로 내버려 둘 수 있는 ‘충실한 오늘’을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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