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이거나달 Oct 20. 2021

간절한 간절기

 가끔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간절기라고 답했다. 그런 결정의 계기는 별거 아닌 한순간이었던 거 같다. 대학 2학년 때 가을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의 등굣길. 아침에 수업을 들으러 캠퍼스를 걷는데 딱 기분 좋게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긴소매 셔츠 사이로 살에 닿는 바람의 느낌이 참 좋았다고 생각했더랬다. 아마 그때 뭔가 기분 좋은 일도 있었을 텐데, 바람 느낌 말고, 그 기억은 없다.  간절기는 뭔가를 

기대하게 하고, 변화를 꿈꾸고, 그래서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다. 생각해 보면, 생각이 많아지면서 활동도 많아진다. 옷을 사고, 옷장을 정리하고, 집 청소를 하고, 서점에 가고, 운동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런 것 말고 간절기가 좋은 건 개인적인 성격 탓도 있는 것 같다. 아주 춥거나 아주 덥거나, 날씨 말고 어떤 상황이 아주 춥거나, 아주 덥거나 극단으로 가는 걸 힘겨워한다. 자꾸 중간에 어느 지점에서 타협점을 찾으려 하고, 가성비나 가심비나 하는 것들을 동원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결론을 내놓아야 마음이 편하다. 혹자는 타협과 공감이라 하고, 혹자는 줏대 없거나 우유부단이라 한다.      

겨울에서 봄으로 갈 때의 집 앞 풍경은 수묵화가 수채화로 변하는 과정 같다

 산이 앞에 있고, 꽃과 나무를 가꾸는 ‘그레이집’으로 이사 온 후로는 간절기가 더 간절해졌다. 산의 색과 빛이 변하기 시작하면 산책이 잦아지고, 산책을 하다 보면 사색이 깊어진다. 사색은 지식의 밑천이 달리는 나에겐 각종 비타민에 마늘과 감초까지 들어간 링거 주사다. 꽃과 나무를 위해 할 일도 많아진다. 그러면 에너지를 쏟고, 또 에너지를 얻는다. 간절기의 삶은 풍성해진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인가 가장 좋아하는 간절기가 달라졌다. 20대의 기억을 더듬으면 여름과 가을이 만나는 지점이었는데, 이젠 명확하게 겨울과 봄 사이, 요즘이다. 왜 그럴까? 먼저 겨울을 벗어나고 싶은 본능이다. 솔직히 요즘 겨울엔 몸이 움츠러드는 걸 체감한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위의 활동량이다. 체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그러면 그 위를 위해서 음식 섭취를 줄여야 한다. 그러면 몸의 에너지도, 일의 집중력도 떨어진다. 주변에 마음을 더 쓸 여유도 줄어든다.      


 최근에 산책을 하며 사색에 잠겨 얻은 결론도 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돈다는 건, 저 앞에 보이는 산 정상에서 이제 내려오기 시작했다는 것이지. 내가 하산을 시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삶과 생명을 더 귀하게 여기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생명이 움트는 봄이 더 기다려지는 게 아닐까?


 


이전 15화 기타 등등? 기타 둥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