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가운데 가장 자신 있는 게 빨래 개기다.
OECD 기준보다 까다로운 와이프의 예리한 눈에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이니 자랑해도 될 듯하다. 내용은 이렇다. 두 번 접든, 세 번을 접든 다 접었을 때 비슷한 크기가 될 수 있게 모양을 잘 잡아야 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건 주름이다. 티셔츠의 경우 일단 세로로 반을 접으면 입었을 때 보기 싫은 주름이 지기 일쑤다. 그건 고수의 손놀림이 아닌 것이다.
형식도 중요하다. 가족이 넷이니 일단 네 분류로 나누고, 겉옷과 속옷으로 다시 구분해서
8개의 모둠으로 구분해 차곡차곡 쌓는다. 그래야 이걸 다시 옷장에 넣을 때 편하다.
다 접었을 때 깔끔한 직사각형 모양이 잘 잡히게, 조금씩 옷감이 삐져나오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일이 많아지고, 시간도 손해다.
빨래 개기와 함께하기 좋은 건 야구 시청이다. 야구는 다른 스포츠와 비교해 중간에 눈을 자주 떼도 맥락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볼이 멈춰져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인데 이것이 야구의 매력이다. 그래서 야구를 보며 빨래를 개면 일단 무언가 집안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뿌듯하고, 아내에게도 떳떳하다. ‘일타쌍피’, ‘일석이조’, ‘가성비 짱’
경기 시간도 3시간이 넘어서 아무리 밀린 빨래가 많아도 야구를 이길 순 없다.
빨래 개기는 가끔 마음의 진정제 역할도 한다. 깨끗하게 세탁된 빨래를 접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치 귀에 익은 클래식 음악을 혼자 듣고 있을 때처럼 머리가 개운해지고 걱정의 농도는 조금 옅어진다.
최근엔 9살 딸 바지를 개면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얼마 전까지 3등분으로 접으면 될 길이였는데, 두 번을 포개서 개야 할 정도로 바지가 훌쩍 자라 있었다. ‘아, 우리 딸이 이렇게 컸구나’ 하는 유쾌한 놀라움과 깨달음.
오랜 세월 빨래 개기에 매진한 결과 얻은 소중한 감정이라 참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