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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Apr 18. 2022

【24살 아들과의 여행은 대한민국 1%】

 

 아들이 만으로 23살, 한국 나이로 24세. 이젠 누가 봐도 어엿한 청년이다. 녀석이라고 아버지와의 여행에 크게 거부감이 없었을까? 재수 후 합격발표가 나고서 바로 아들과 나는 남도 여행길에 올랐다. 목포, 강진, 여수, 순천, 남해, 통영, 거재를 돌아오는 3박 4일의 일정이었다. 내려가는 길에 너무나 과묵해 목포까지 가면서 별 대화가 없었는데 올라오는 길에 여행이 어땠냐고 물으니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내년에는 강원도로 한 바퀴 돌자 했었는데 녀석이 나보다 더 바빠서 실천하지 못했다.      


 코로나로 학교 수업이 들쑥날쑥 하자 아들은 군대에 입대했다. 그리고 약 15개월이 지났을 때 마지막 휴가를 나왔고, 술 한잔하다가 너 제대하면 아빠랑 캠핑할까? 했더니 흔쾌하게 ‘콜!’했다. 그리고 급하게 준비한 캠핑 장비에 약 3백만 원을 투자했고, 24살이 되는 해 2월부터 캠핑을 시작했다. 아비와 함께 캠핑에 나서는 24살 아들을 생각하니 녀석이 잘 자라주어 고맙고, 또 한편으로 날 외면하지 않기에 나도 아버지로서 나쁘지는 않았다는 뿌듯함이 가슴 속에서 피어났다.     


 캠핑은 날 것이었다. 2월의 바닷가는 추웠고, 캠핑 초보에게 쉘터를 치는 것만으로도 난관이었다. 그래도 군 제대한 아들의 재빠른 손에 쉘터는 그럴싸하게 우뚝 섰고, 우리는 캠핑의 꽃이라는 불멍까지 하며, 깊은 밤 술에 취했다. 늦겨울 바닷가의 바람은 술 취한 부자의 깊은 잠을 순식간에 깨웠다. 전기담요의 온도를 올렸지만 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그만 전기 히터는 소리만 낼 뿐 온기를 전해오지는 못했다. 아기 때 같은면 녀석을 꼭 끌어안아 주었겠지만 나보다 덩치가 더 커진 아들을 안기에는 추위가 민망함을 이기지 못했다.   

  

 그래도 이른 아침 가져온 갈비탕에 누룽지를 말아 먹고, 따뜻한 커피에 몸이 사르르 녹으니 언제 추웠냐 했다. 온전히 아들과의 하룻밤은 많은 이야기를 하게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있는 억양과 악센트는 녀석의 생각과 사상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오는 길에 다음 캠핑을 약속했다. 다음에는 계곡이 있는 산으로 가자, 그 다음에는 동해 바다로 가자, 그리고 그 다음에는 엄마도 델고 가자. 등등...     


 두 번째 캠핑도 성공적이었다. 온전히 짱짱한 텐트를 20분 만에 설치했다. 거의 프로의 솜씨다. 세 번째 캠핑은 반만 성공이었다. 텐트보다 큰 타프 사서 처음 쳐봤다. 어려웠다. 아들이 답답했는지 나한테 큰 소리를 쳤다. 그래 이제는 전세가 역전이 되었다. 수컷의 세계에서는 더 힘센 놈이 목소리가 커지게 마련이다. 나이 대우해주는 것은 그저 예의를 차리는 것일 뿐이다. 꼰대들이 잔소리가 많은 이유는 없는 힘이 있는 척하기 때문이다. 힘 있는 놈이 그 꼰대의 잔소리를 듣고 있자니 얼마나 한심하게 보일까? 그래도 아비를 따라오고 함께 시간을 내주는 아들놈이 난 너무 좋아 죽겠다. 그 녀석은 대한민국 1%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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