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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Jul 07. 2022

【보고 싶다. 친구야!】

      

불혹을 훌쩍 넘어 4학년 7반. 지천명을 바라보며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그날은 학위 수여식이 있는 날이었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축화 전화를 거절 없이 받았는데, 낯선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너 철호맞지?”,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나 민준이야. 강민준. 국민학교 6학년 때 우리 같은 반이었잖아.”..... 그랬나!?      


기억의 끝을 잡고 더듬어 본다. 그런데 가물거린다. 이쯤 되면 다음 말이 궁금해진다. 보험일까? 아니면 다단계? 그것도 아니면 도서판매? 세파에 찌든 중년의 뇌리에는 모든 것을 의심하며 전화기에 집중해 본다. 그것이 조직에 속해 사회생활을 하며 생긴 나만의 익숙해진 습관이었다. 모든 사안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고 마니까. 이놈의 습관이 생소한 동창의 목소리에 의심의 장막을 치게 하고 잔뜩 경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친구는 애써 자신을 설명하고 나하고 꽤 친했었다고 강조한다. 강조하면 할수록 연락한 의도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그래도 친구는 친구니? 불편한 듯 그래그래 하며 맞장구쳐 준다.

     

그렇게 몇 번 통화를 되풀이 한 후, 35년 만의 국민학교 동창과의 만남을 위해 약간 어색한 마음으로 교대역 14번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저 사람은 머리숱이 많이 없어 보이고 배도 많이 나왔다. 동창이 아니겠지, 저 사람은 얼굴이 깊은 주름이 패어 있어 나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인다. 저이는 아니겠지 하는데 나의 예상은 무너지고 그놈이 동창이란다. 남자 동창이 그런데 여자 동창은 더 알아보기 힘들다. 그에 더해 어찌 그리 넉살과 변죽이 좋은지 여성호르몬의 마지막까지 쪽 빠진 아줌마 티가 팍팍 난다. “니가 철호지, 야 너 많이 변했는데, 그래도 생각난다.” 서슴지 않고 다가오는 터치터치의 스킨십에 깜짝 놀라지만 이내 우리의 만남은 국민학교 시절 고물 줄 끊고 도망치던 짓궂은 머슴아와 가신아로 돌아간다.

     

이제는 다방구, 술래잡기, 고무줄, 딱지치기가 아니라 명함을 돌리면서 자신의 성공을 은근히 뻐기지만, 소주잔에 곱창을 구워 서로 권하며 과거의 추억을 잘근잘근 씹다보면 그 추억이 현재의 지위를 잊게 만든다. 그리웠나 보다. 도시의 한 구석 대폿집에서 그 시절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드는 내 모습을 인지하는 순간 영화 속 영상처럼 사방이 조용해지면서 서로의 삶에 대한 장편 서사시를 읊는 그들만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웃고 있다. 적어도 여기서 함께 떠드는 것이 그리 슬픈 중년의 모습만은 아니었다. 그랬다. 마음 속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냥 그렇게 ‘보고 싶다, 친구야!’를 외치고 있었다. 우리에게 그리운 건, 그대보다 그때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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