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만 있는 기적적인 열정】

by 섬돌

더 이상의 자원 투입은 없다. 일정도 넉넉지 않다. 그리고 다가오는 행사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행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인데, 그 뮤지컬 뭐 그런 어려운 거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냥 합창으로 세 곡 정도 하고 내려오면 어떨까? 혹시라도 완성도가 떨어지면 안 하느니만 못하잖아.” 창립 70주년 행사에 신입사원들에게 뮤지컬을 2주간 연습시켜 올리겠다고 하니 임원 몇 분이 이를 한사코 말리면서 한 말이다.


헛갈린다. 우리의 역사는 개척과 도전의 역사라고 그 안에는 기적과 같은 사건들이 있었고, 그 동력은 선배들의 열정이었다고 귀에서 핏물 나오게 들었는데, 정작 후배들이 열정을 가지고 뭔가 도전하려면 “하지 마”라며 막는다. 어디서부터 이것이 꼬여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더 오래된 임원일수록 경영진일수록 그 도전을 막고 나서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성공경험 전에 실패경험의 아픈 기억 때문인 것도 같다.


‘휴브리스(Hubris)’, 과거에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방법을 우상화함으로써 오류에 빠지게 된다는 뜻으로 사용한 역사 해석학 용어로 토인비에 의해 유명해진 말이다. 토인비는 역사가 창조적 소수에 의해 바뀌어 가지만, 일단 역사를 바꾸는 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는 과거에 일을 성사시킨 자신의 능력이나 방법을 지나치게 믿어 우상화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고 보았다. 곧 자신의 과거 성공 경험을 과신해 자신의 능력 또는 자신이 과거에 했던 방법을 절대적 진리로 착각해 실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토인비는 휴브리스로 규정하였다.

그런 휴브리스를 나는 강하게 거부한다.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러려면 쉽게 말해서 덤벼야 한다. 그들의 말을 비토하며 싸워야 한다. 일을 하며 때로는 너무 두렵게 다가오는 것은 철옹성같은 선배의 경험에 반기를 들 때다. 그것이 그저 조직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설명이 부족하다. 성공경험이 있기까지는 많은 실패경험이 존재한다. 실패경험 없이 성공을 경험했다는 것은 운이다. 그런데 세상에 운 좋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바득바득 우겨서 하지 말라는 뮤지컬을 강행하기로 했다.


2주간의 시간 중 실제로 순수하게 연습할 수 있는 날은 5일, 나의 무지막지한 스케쥴을 따라오는 신입사원들은 목이 쉬고, 발톱이 빠지고 머리만 땅에 대면 잠을 잔다. 살인적인 연습을 소화해야 실제 공연이 가능하다. 그것은 아마도 또 다른 나의 휴브리스를 그들에게 강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열정을 나는 믿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나는 믿었다. 그리고 실제 기적은 일어났다. 코엑스의 대형 무대에서 100여 명의 신입사원이 펼치는 뮤지컬에 전 임직원이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 기적을 왜 믿고 있었나? 그것은 그들이 신입사원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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