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역 시계탑 앞으로 모여.”
“강남역 뉴욕제과에서 6시에 보자.”
대학시절 MT나 술 약속이 있으면 모이는 좌표! 그리 낯설지 않은 약속 장소였다. 꽤 정감이 있고 인간적이었다. 약속을 했는데 조금 늦어도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하는 기대감과 미안함 그리고 빨리 보고 싶은 설렘이 있었고, 조금 일찍 나가 언제 올까 하는 기다림이 좋았다. 그리고 지금 이런 낭만은 추억이 되었다.
만남의 좌표가 존재할까? 카톡, 문자, 이모티콘이 기다림과 설렘이라는 멋진 감성을 없애버렸다. 엄지족의 현란란 손놀림은 조금이라도 늦으면, “어디?”하고 문자가 바로 날아든다. 굳이 어디냐고 묻지 않아도 “지금 가는 중, 또는 곧 도착.”이라는 문자가 또는 빨리 와 하는 이모티콘이 가슴속 설렘을 반감시킨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참 소중한 일이다. 특히 연인들의 만남은 더욱 기다려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마음속 기다림과, 다가오는 인파 속에 내가 기다리는 당신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는지 모가지를 길게 빼고 두리번거리던 추억의 몸짓이 이미 퇴화한 꼬리처럼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스마트폰에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들이 똑같다. 때때로 그립다. 강남역 뉴욕제과가. 십여 년 전 강남역 뉴욕제과가 문을 닫는다(2012년)는 뉴스를 보면서 가슴 속 허전함이 꽤 오래 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강남역을 나가면 그 앞을 일부러 돌아 지나갔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너무 빠르다. 각각 다른 술집에서 있다가도 ‘우리 합칠까?’ 하는 문자에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두 모임은 합체된다.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헤어진다. 팀원들이 여행 사진을 정리한다면서 클릭 한 번에 소중한 추억의 사진 한 장이 사라진다. “야, 그걸 왜 지워?”라는 물음에 아무런 감정 없이 녹음된 안내처럼 “잘 안 나와서요.”라고 한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소풍을 갔을 때, 우리는 비록 돈이 모자라 “잘 나온 것만 뽑아 주세요.”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현상된 필름에는 소중한 추억이 있어 언제라도 다시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님 말고’다. 잘 안 나와서, 표정이 좋지 않아서, 그냥 보기 싫어서, 용량을 줄여야 해서...
우리는 속도에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고 있다. 보기 싫어 지우려 했던 그 사진 한 장이 몇 달이 지나 내 눈에 모습을 드러내면 매우 반가운 추억으로 살아난다. 하물며 우리가 생각보다 빠른 현란한 손가락의 습관적 행동은 소중한 추억과 가슴 설렘이라는 만남의 좌표를 기억에서 지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