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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돌 Sep 05. 2023

【커진 책상이 좋지만은 않았다】

'20년 근무하니 책상이 커졌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의자의 등받이가 수직에 가까운 철제 의자와 책상이 생각난다. 겨울에 입사해서인지 전해오는 느낌이 차가웠다. 그 책상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내 양복바지를 몇 번 찢어먹고 나서야 시스템 가구로 변했다. 그리고 크기가 거의 변하지 않던 그 책상이 20년이 지나서 커졌다.     


지난 주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부서원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있었는지 자리가 텅 비어있었다. ‘책상이 빠지나’ 하고 내심 덜컥했지만, “이사님 책상 이사 온답니다.”하는 막내의 언어유희에 싱긋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승진을 하며 몇몇 직책을 맡았지만 책상이 커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을 더 많이 하라는 것일 게다. 그리고 또 하나 들어올 때는 왁자지껄하지만 빠질 때는 조용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상장기업의 임원이 된다는 것, 아마도 월급쟁이의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대부분 같은 목표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가 언젠가는 갑이 되는 날을 꿈꾸고, 내가 언젠가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모습을 그리며 말이다. 그런데 막상 임원이 되고 나니 그리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10여 년 전 새로 산 플랭클린플레너에 나는 2018년 교육담당 임원이 되겠다고 목표를 적었다. 그래서 직원들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는 데, 최고의 조력자가 되겠다고, 꿈 전도사가 되겠다고 했다. 그리고 딱 10년이 지나 2018년에 그 꿈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조금은 내 옷이 아닌 듯 불편하고, 또 조금의 잘못과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심장이 쫄깃해졌다.     


책상이 커지니 물건과 서류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다. 저 속에 무엇을 담아야 할까? 한참은 고민했던 것 같다. 임원이 되면 높아지는 칸막이로 약간의 비밀도 보장되니 비밀스런 문서와 장부가 들어갈까, 아니면 새로운 지식과 업무 영역이 확대될까? 물론 후자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지만, 요즘은 자리가 사람을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장된 업무와 성과로 저 빈 서랍들을 채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과거나 지금이나 시간관리가 답인 듯했다. 제아무리 시간관리를 잘한다고 한들, 쏟아지는 정보와 처리해야 할 업무에 저녁이면 녹초가 된다. 몇 년 전만 해도 체력이 버텨줘서 저녁에 소주에 맥주를 마시고 노래방도 갔었다. 지금은 어림도 없는 소리다.  늦은 술자리를 가진 다음날이면 산송장이 된다. 언제나 영혼은 23세에서 멈춘 시계 같다. 그러나 이제는 왜 자전거 동호회 선배들이 무릎 아파했는지 알게 했고, 지하철 문이 열리면 가방을 먼저 던졌던 아주머니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체력에 맞지 않는 무겁고 큰 책상 앞에 앉아 ‘짠’하고 성과를 내야 내 몫을 하는데, 임원은 부리부리 박사(만화 / 우주소년 아톰을 만든 사람)가 아니었다. 요것저것 넣어 ‘펑’하면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부리부리 박사만이 하는 일이다. 다행인 것은 MZ세대가 부리부리 박사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한 부서에 없던 임원이 생기면, 직원들은 뭐든 고민이 해결될 것으로, 의사결정이 빨라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직원들의 고민 해결을 위해 책상과 서랍이 그들의 요구사항과 고민으로 채워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 동티가 나는데 말이다.      


이런 생각으로 7년이 지나면서 신사옥 이전, 모시던 명예회장님의 운명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신사옥으로 이전하면 내 자리가 없는 자유석이라고 한다.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다. 또 다시 적응해야 하나? 애써 적응하지 않아도 익숙해지기 전에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27년 6개월을 다닌 직장에 ‘안녕’을 고했다.      


이제는 내 서재의 정말 큰 책상 두 개를 다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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