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님, 드디어 뽑았습니다.”
팀 막내가 차를 샀다. 팀원들은 첫 차 구입을 축하한다고 핸들커버, 주차번호판 등 부착물을 구입해 달아주었다. 막내는 늘 돈이 없다고 모자란다고 하면서 구두쇠처럼 살았다. 모아놓은 돈에 대출까지 합쳐 무리하게 차를 사는 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축하해주었다.
다음 달 내가 차를 바꿀 예정인데, 영업사원이 5백만 원 준다던데 내 차 300만 원에 타라고 하는 내 말에 단호히 거절했던 이유가 있었던 거다.
“왜 그렇게 무리하면서 차를 사냐?”고 했더니
“가오(남자의 자존심)가 있잖아요?”라고 했다.
‘가오가 밥 먹여 주냐?’ 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뭐 또래 세계에선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이 지나서 BMW를 8개월 정도 탄 팀원이 더 큰 BMW로 업그레이드를 한다고 또 난리다. 와~ 하는 탄성이 나오고 7천만 원이 넘는 차를 핸드폰 바꾸듯 단숨에 계약한 그 직원을 부럽기도 했다. “왜 그렇게 무리를 해서 외제차를 사는 거야?” 했더니 쿨하게 대답한다. “타고 싶어서요.”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 식사를 하면서 30대 직원들에게 물어봤다. “왜 굳이 무리해서 외제차를 타고 싶은 거니?” 했더니 “하차감이 좋잖아요.”라고 했다.
나는 느끼지 못 했나? 아니면 눈치를 보면서 살아온 걸까? 예전에 세피아를 사면서 프라이드 베타를 타고 있던 선배의 눈치를 봤던 시절, 그 때는 차가 지위를 대변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시절은 아니지만 ‘하차감’으로 본인의 능력을 뽐내야 한다고 하니 씁쓸하다. 또 차가 뭐든 광택을 내고, 휠을 큰 것으로 갈고, 꾸미기에 열중인 것도 그렇다. 자신의 차의 개성을 심는다고 하지만 차 본연의 기능에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인데 하는 생각이 앞선다. 그런 생각을 말도 못하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자니 내가 꼰대구나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차를 사게 되었다. 10년 넘게 탄 차를 형님의 세컨카로 드리고, 상장회사에서 어렵게 임원이 된 나에게 차로 보상하겠다는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가슴 설렌다. 어떤 차를 살까? 고민이 됐다. 그런데 결국 더 늙기 전에 SUV 한번 타보자고 마음먹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동안 아들 뒷바라지에 직장생활 뭐 그러한 것으로 여행 한번 편하게 못 간 우리 부부가 10년간 여행 열심히 다녀 보리라는 목적이었다. 그리고 구매 후보를 알아보는데, 직원들은 계속해서 뽐뿌질(남에게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하게끔 들쑤시는 짓)을 한다.
“이사님 외제차로 하시죠. 아니면 적어도 제네시스는 뽑아야죠.”라며 몇 일을 뽐뿌질을 한다. 심지어 BMW를 타는 후배 놈은 점심시간에 나를 끌고, 외제차 전시장을 순회를 했다. 볼보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6개월 후에나 차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 말에 외제차 탈 팔자는 아닌가 보다 하며 국산 SUV 신형으로 계약을 했다. BMW를 타는 후배가 “이사님 그럴 줄 알았습니다.”고 했다. 그의 말이 “넌 역시 그것밖에 안 돼.”하는 비아냥으로 들렸다. 그러나 주변의 선배 임원들은 다들 잘 선택했다고 한다. “이 이사가 외제차나 제네시스를 탄다면, 다른 임원들 눈에 많이 튈 거야. 그리고 이 이사는 눈에 보이잖아.”라고 하는 선배의 말에 조직에 있는 한 나는 눈치를 봐야 하는 세대고 후배들은 그런 것 없이 개성대로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이해 못하는 것은 새 차에 왁스를 입히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셀프세차장에 가서 직접 세차하는 팀원들을 보면서 나는 그 시간이 아까워서 그렇게 못하는데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내 모습이다. 차는 운송 수단이라는 본질적 기능 중심으로 보는 나와 차는 자신의 개성을 뽐내고 자신을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팀원들 사이에 세대차는 좁혀지지 않을 것 같아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원이고 뭐고 지하주차장에 30%는 외제였음을 알고나서 나에게 충고했던 선배도 눈치 보는 꼰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차를 아끼는 것만큼 사람과의 관계에 공을 들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를 매주 열심히 세차하는 것만큼 가슴에 켜켜이 쌓인 관계의 응어리들을 잘 씻어 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차에 광을 내는 만큼 독서와 사색을 통해 지적 욕망과 파릇한 지혜에 광을 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네 차 멋진데, 하는 타인의 말이 SNS에서 의미 없이 던져지는 ‘좋아요’ 버튼과 뭐가 다를까? 진정으로 내면을 볼 수 있다면 차는 잘 쓰는 것은 차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닐까? 대출 없이 롤스로이스나 페라리를 탈 수 있다면 그들의 격은 이미 높겠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불편해하는 중학생 아이의 교복처럼 버거운 차를 타며, 관리가 아닌 차를 모시는 듯 전전긍긍 하는 모습을 보면 좀 더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