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의 [거대한 100년 김수영] ⑩ 마포 구수동 시절 <닭을 키우며 “난생 처음 직업을 가진 것처럼 자홀감” 느껴>에서 나희덕 교수는 김수영이 1955년부터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구수동 집에서 전쟁과 포로수용소 생활로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비로소 안착할 수 있었다고 적절하게 설명한다.
김수영은 이미 전쟁 직후부터 가족에 대한 사랑을 중요한 시적 주제로 삼았다. 「나의 가족」(1954)에서 그는 “고색(古色)이 창연”한 우리 집에도 변화의 “물결과 바람”이 “신선한 기운”을 가지고 쏟아져 들어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현실 생활에서 자리를 잡고 아침에 나가서 일하다 저녁에 들어올 때마다 “먼지”처럼 작지만 그래도 돈을 벌어오기 때문이라고 암시한다.
그는 가족을 장구한 세월 동안 “파도”처럼 옆으로 흘러가고, “세대” 간에 이어지는 오랜 역사를 지닌 “억세고도 아름다운 색깔”이라고 긍정한다.
그리고 “가족의 입김이 합치어진 것” 즉, 가족의 사랑이 “겨울바람”보다도 자신의 눈을 밝게 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시인은 가족들이 떠드는 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그들에게 자신의 “전령(全靈)”을 맡겼음을 밝힌다.
물론 그가 「너를 잃고」에서 제시한 것처럼 민족과 인류를 향한 “위대”한 사랑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지금도 “위대한 고대조각의 사진”을 보면서 초월적인 정신을 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성스러운 향수와 우주의 위대감”도 “가족들의 기미 많은 얼굴”에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초월적인 예술과 정신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현실적인 가족의 사랑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제각각 자기 생각에 빠져 있으면서 부자연스러운 곳이 없는 가족의 “조화와 통일”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그리고 “유순(柔順)한 가족”들이 모여서 “죄 없는 말”을 주고받는 현실 생활공간인 “방”에서 차라리 “위대한 것”, “위대의 소재”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전쟁 직후의 상황에서는 초월적인 위대한 사랑이 아니라 현실적인 가족에 대한 사랑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뜻이다.
마지막 연에서도 그가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 집안의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을 “사랑”이냐고 자문한다. 그리고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이라면서 가족의 사랑을 강조한다.
시인은 초월적인 위대한 사랑보다 현실적인 가족에 대한 사랑을 낡은 것이지만 부정할 수 없이 좋은 것으로서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희덕 교수는 구수동 시절의 시들에 ‘생활’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고 하면서, ‘생활’에 대한 김수영의 태도가 “양가적”이었다고 설명한다.
“시인에게 생활의 안정이란 글쓰기의 최소조건인 동시에 정신의 치열성을 약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적(敵)이 되기도 한다.”
나 교수가 구수동 시절 김수영의 시를 “생활과 예술” 사이의 "중용"으로 파악하는 것도 설득력이 있다. 김수영은 “생활의 운산과 무위의 글쓰기 사이에서,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 합리와 비합리 사이에서,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수없이 번민하며 내적 싸움”을 이어간 흔적들을 다양한 작품들에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나 교수가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 꼽았던 「여름 아침」(1956)에서도 이런 중용의 길이 나타나 있다. 여기서 그는 농부들이 밭을 고르고 씨를 뿌리는 “여름 아침의 시골”이 “가족”과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간밤의 “쓰디쓴” 감각들과 정신적인 “통각(統覺)”마저 잊어버리겠다고 밝힌다. ‘밤’에는 초월적인 영혼을 “숙련”하더라도, ‘아침’에는 다 잊어버리고 현실적인 가족의 생활을 위한 육체 노동에 전념하겠다는 말이다.
그는 “아내의 얼굴”이 시골 사람들의 얼굴을 닮아간다고 하면서, 이런 “가장 아름다운 이기적 시간” 위에서 자신도 밤에 추구했던 초월적인 “정신”을 현실적인 햇살에 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이런 밤과 낮의 “구별”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고뇌여”라고 탄식한다.
자신은 초월적인 영혼을 추구하는 밤과 이기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낮을 구별하고 그 사이에서 긴장과 균형을 추구하려고 하는데, 세상은 시인이 이기적인 생활을 추구한다고 자신을 나무라고 용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천국도 지옥도 너무나 가까운 곳”이라고 하면서, 선악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양극 사이를 “강물”처럼 도도하게 흘러가자고 말한다.
밤에는 ‘천국’ 같은 초월적 영혼을 추구하되, 낮에는 ‘지옥’ 같은 현실적 노동에 충실하면서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자는 말이다.
그가 “차라리 숙련(熟練)이 없는 영혼이 되어 /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가래질을 하고 고물개질을 하자”라고 스스로에게 권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여기서 숙련이 없는 영혼은 ‘영혼의 노동’이 아니라, 영혼의 숙련과 구별되는 ‘육체의 노동’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초월의 시간인 밤에는 영혼의 숙련을 추구하다가도, 현실의 시간인 낮에는 이를 잊어버리고 가족을 위해 이기적인 육체의 노동에 충실하자는 뜻이다.
마지막 연에서 그는 “자비로운 하늘”이 “무수한” 우리들의 사진이자 “단 한 장”의 사진을 찍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아침에는 저마다 가족을 위해 이기적인 생활에 충실하기 때문에 무수한 사진이 되지만, 밤에는 모든 사람이 영혼을 숙련하는 “단 한 장”’의 사진이 되는 구별을 하늘도 자비롭게 허용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인간이 초월적인 영혼의 숙련과 현실적인 육체의 노동 사이에서 긴장과 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하루가 밤과 낮으로 구별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말이다.
한편, 「구름의 파수병」(1956)에서도 중용의 길이 제시되어 있다. 나희덕 교수는 김수영의 1950년대 후반은 생활이 안착되면서 문학적으로도 첫 결실을 거둔 시기였다고 하면서,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고 말했던 ‘나’는 메마른 산정에서 내려와 나지막한 “지상의 마을”에 머물러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김수영은 「구름의 파수병」에서도 산정과 마을 사이를 부단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지금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자식”과 “아내”와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고 말한다. 시인으로서 초월적인 자유를 추구하지 않고, 가족 때문에 “낡아 빠진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이미 정하여진 물체”, 즉 시인으로서 이미 추구해 왔던 초월적 자유만을 보기로 결심했다고 밝히면서, 이러한 자신의 “꿈”을 친구가 깨워주고 꾸짖어 주어도 좋다고 자부한다.
그는 “함부로 흘리는 피” 즉,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이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힌다.
그리고 “먼지 낀 잡초” 같은 생활 위에는 초월적인 자유를 상징하는 “구름”이 잠자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지금 낡아빠진 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는 생활과 돈 그 자체가 아니라 초월적인 예술을 추구할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뜻이다.
그는 지금처럼 비인간적인 세상에서는 현실 생활 속에서 “고생”만 하면서 “철 늦은 거미”처럼 존재 없이 살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시인으로서 초월적인 예술을 부정하면서 단지 현실 생활에 빠져서 돈만 벌기도 어려운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가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와 함께 “외양만이라도” 남들처럼 사는 것이 쑥스럽다고 고백하는 것도 현실 생활에 빠져 있는 것은 시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하지만 그는 생활에 사로잡혀서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 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이 된 비참한 자신을 한탄한다. 그리고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 즉 ‘집’으로 상징되는 개인적인 생활과 ‘거리’로 상징되는 사회적인 과제 사이에서 긴장을 추구했던 현실성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어디로이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이라고 말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말하는 반역의 정신은 초월적인 시를 반역하는 것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활도 반역할 수 있다는 뜻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가 “날아간 제비”를 거듭 반복하는 것도 제비처럼 가볍게 현실적 생활과 초월적 정신 사이를 날아다닐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미 그가 「하루살이」에서 무수한 “반복(反覆)”을 제시했던 것처럼 여기서는 제비를 통해 무수한 반복을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현실적 생활이나 초월적 정신의 한 극단이 아니라 언제든지 어디로든 ‘반역’할 수 있는 정신인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그는 그동안 시를 반역하고 낡아빠진 생활을 했던 죄를 씻기 위해서 “메마른 산정”에서 “구름의 파수병”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시를 반역하고 산정에서 마을로 내려왔듯이 이제는 다시 생활을 반역하고 마을에서 산정으로 올라가겠다는 것이다. 물론 때가 되면 산정에서 다시 마을로 제비처럼 날아서 내려오겠지만 말이다.
그가 1955년 이후 구수동 시절의 시에서 생활과 예술 사이의 긴장과 균형을 제시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희덕 교수의 말처럼 그에게 구수동 시절이 “중용과 절제의 정신을 배우는 기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이미 해방 직후부터 문명과 전통, 서양과 동양 사이에서 중용의 길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동양의 중용이나 헤겔의 변증법, 하이데거의 긴장 등을 통해 초지일관하게 이분법을 넘어서려고 했던 다원주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