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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주 Oct 29. 2021

니체 : 긍지의 날,  폭포

- 김수영의 다원주의(19)

한겨레신문의 [거대한 100년, 김수영] (21) 니체 <그의 산문에 두 번 등장한 니체, 닮음과 다름>에서 김응교 교수는 김수영 시와 니체의 닮음을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김 교수가 특히 김수영의  「폭포」(1956)를 니체와 연결지어 해석하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김응교 교수는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라는 구절이 “몰락하는 위버멘슈”를 떠오르게 한다면서,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 모르는 사람들을”이라 했던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는 구절도 “보라, 나는 번갯불이 내려칠 것임을 예고하는 자요, 구름에서 떨어지는 무거운 물방울이다. 번갯불, 이름하여 위버멘슈렷다.”를 떠올리게 한다고 덧붙인다.


김 교수가 말하는 위버멘슈가 현실적인 생활 초월한 자유로운 존재를 뜻한다면 여기의 폭포는 니체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김수영은 시의 첫머리에서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지는 과감한 존재로 폭포를 제시한다. 그리고  폭포가 어느 하나로 “규정”되거나 “무엇을” 향하는 특정한 목적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폭포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상승하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어 규정할 수 있는 현실적인 존재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초월해서 용기 있게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자유로운 존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폭포를 “계절”의 변화나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쉴 사이 없이 움직이는“고매한 정신”에 비유하는 것도 현실을 초월한 자유로운 존재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폭포는 현실적인 생활과 돈만을 쫓는 속물적인 존재가 아니라,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고매한 정신과 예술을 추구하는 초월적인 존재라는 말이다.  

이어서 그는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가 “곧은 소리”를 내면서 떨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밤의 시간에는 곧은 소리가 다시 곧은 소리를 불러서 곧은 소리로 가득찬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곧은 소리는 시작 노트에 제시된 것처럼 “평화의 나팔 소리”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인 시간인 낮에는 금잔화와 인가로 상징되는 현실 생활을 위해 돈을 벌려고 바쁘게 뛰어다니더라도, 초월적인 밤의 시간에는 곧은 소리로 상징되는 세계의 평화 같은 고매한 정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연에서 폭포는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이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고 묘사된다.


여기서 “취할 순간”은 이후에 나오는 “나타와 안정”처럼 현실적 생활에 취해서 안주하는 것을 의미고, “높이”와 “폭”도 없다는 말은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의 변주로서 일정하게 규정할 수 없는 자유롭고 초월적인 존재라는 뜻으로 보인다.


이제는 현실적인 생활의 안정을 위해 돈만 쫓아다니는 부자연스러운 속물이 아니라, 욕망을 버리고 떨어지는 폭포처럼 자유로운 존재가 되겠다는 말이다.        


한편 김응교 교수는 김수영의 시 「긍지의 날」(1953)니체적 사유로 해석한다. 포로가 되어 매맞아 허벅지 상처가 나고 덧난 상처에서 구더기를 걷어냈던 체험은 단순한 개인의 체험이 아니라, 김수영과 당시 사람들이 겪은 신산한 설움이었다고 하면서 김수영은 설움과 함께하려 했다고 설명한다.


런데 김수영 시에서 ‘울다’보다 ‘웃다’라는 용언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니체의 사상을 관통하는 디오니소스적 명랑성이 김수영 시의 명랑한 긍지와 통한다”라고 본다. 


하지만 김수영이 「긍지의 날」에서 말하는 긍지는 고통스러운 운명을 사랑하라는 명랑한 긍지가 아니라 설움 자체에서 긍지를 느끼는 서러운 긍지에 가깝다.


그는 시의 첫머리에서 너무나 잘 아는 “순환의 원리”를 위하여 피로하였고, “영원히 피로할 것”이라고 말한다. 육체를 가진 인간은 하루하루 순환하는 현실 생활 속에 내던져져서 영원히 노동의 피로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리고 옛날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초월적인 예술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활에서 겪는 “설움”에서 긍지를 느낀다. 전쟁 직후에 당면한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으로서의 생활력이 그의 긍지인 것이다.


시인으로서 속물들처럼 돈을 벌기 위한 설움과 피로를 긍정하는 것이 “이 시대를 진지하게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치욕”(「구라중화」)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이를 당당하게 긍지로 여긴다.


물론 그도 “내가 살기 위하여” 피로한 현실을 벗어나는 “번개 같은 환상”이나 “꿈”, “청춘, 물, 구름” 등의 초월적인 정신과 예술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기 위해 돈을 버는 노동의 피로와 설움이 자신의 “원천”이자 “최종점”인 긍지라고 거듭 강조한다. 


“파도”처럼 요동하는 위험한 현실 속에서도 소리 없이 살 수 있고, “비”처럼 퍼붓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젖지 않고 살 수 있도록 기본적인 생존 조건을 마련할 수 있는 힘이 바로 그의 긍지이다.     


마지막 연에는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이고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이라고 하면서 피로와 긍지를 동일시한다. 그리고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한 노동의 피로와 설움이 자신의 몸을 “한치를 더 자라는 꽃”처럼 아름다운 존재로 만든다고 강조한다.


그는 현실 생활공간 한복판에서 돈을 벌기 위해 부대끼면서 느끼는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오늘이 바로 “긍지의 날”이자 자신이 “자라는 날”이라고 선언하면서 생활력을 강조다.


그가 긍지로 여기는 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초월적인 예술이 아니라, 전쟁 직후에 생존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설움과 피로이다.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현실 생활에서 필수불가결한 돈을 버는 힘에서 긍지를 느끼는 김수영의 현 사유와 현실 생활에서 벗어난 자유를 추구하는 니체의 초월적 사유는 거리가 아주 멀어 보인다.


김응교 교수는 김수영과 니체의 다름을 공동체와 연결된 고독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그에게 공동체와 관계없는 개인적인 자유란 없다. 자유와 정의는 공동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라는 설명은 동의하기 어렵다.


「푸른 하늘을」에서 잘 나타나듯이 김수영은 상대적 완전을 추구하는 사회적 정혁명보다 절대적 완전을 추구하는 고독한 문학혁명을 더욱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긍지의 날」에서는 현실적인 생활을 위한 피로와 설움에서 긍지를 느끼는 반면에 「폭포」에서는 현실적인 생활의 구속에서 벗어나 고매한 정신을 추구하는 초월적 존재를 추구한다.


그는 자유롭고 초월적인 존재를 제시했던 니체와 달리 생활과 정신, 돈과 예술, 속물과 성인을 모두 긍정하면서 양극 사이에서 긴장과 균형을 추구했던 시인이다.


김수영이 니체와 갈라지는 핵심적인  지점은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서 초인을 지향하면서도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생활인이 되어야 한다는 양면성을  인정한 것이다.


초인을 자처하는 독재자가 열등한 생활인들 위에서 군림하는 반민주적이고 반자유주의적인 독일 나치즘의 사상적 기반으로 악용되었던 니체 철학의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힘도 김수영의 다원주의적 균형 감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수영이 철학을 강조했고 실제로 한국 시인 가운데 철학적인 사유를 누구보다 깊이 있게 펼친 시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특정한 철학적 사유를 시로 각색하려고 애썼던 시인은 아니다.


김수영은 다양한 철학적 사유들을 참조하면서 생활과 정신, 문명과 전통, 내용과 표현 사이에서 긴장과 균형을 추구했던 다원주의 시인이다.



긍지의 날(1953)


너무나 잘 아는

순환의 원리를 위하여

나는 피로하였고

또 나는

영원히 피로할 것이기에

구태여 옛날을 돌아보지 않아도

설움과 아름다움을 대신하여 있는 나의 긍지

오늘은 필경 긍지의 날인가 보다


내가 살기 위하여

몇 개의 번개 같은 환상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꿈은 교훈

청춘 물 구름

피로들이 몇 배의 아름다움을 가하여 있을 때도

나의 원천과 더불어

나의 최종점은 긍지

파도처럼 요동하여

소리가 없고

비처럼 퍼부어

젖지 않는 것


그리하여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그러할 때면은 나의 몸은 항상

한 치를 더 자라는 꽃이 아니더냐

오늘은 필경 여러 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 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 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 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 보다


폭포(1956)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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