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자 김수영의 더러운 향로

by 이건주

김수영은 1950년대 시에서도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사회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민족의 통일과 완전한 독립을 위해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려는 의지도 분명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더러운 향로」(1954)에서도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계속 나타난다. 화자는 “길”이 끝이 나기 전에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적진을 돌격하는 전사”, “나무에서 떨어진 새”와 같이 “적”, “벗”, “땅” 등 모든 것에서부터 자신을 감추겠다고 덧붙인다.


이것은 “나무에서 떨어진 새”와 같이 민족이 분단된 위기 상황에서 민족 통일로 가는 “길”이 끝나기 전에는 “그림자”로 상징되는 이기적 욕망을 버리고, “적진을 돌격하는 전사”처럼 서양의 물질문명에 맞서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고궁”에 있는 “더러운 향로” 앞으로 걸어가서 잃어버린 “애아(愛兒)”를 찾은 듯이 “우는 날”, 즉 분단으로 잃어버린 반쪽을 찾은 민족 통일의 날이 오더라도 “비행기”로 상징되는 물질문명 속에서 이기적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독”한 노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밝힌다.


그리고 “나”는 “너”와 같이 “자기의 그림자”를 마시고 있는 “향로”라고 하면서, 자신이 향로를 좋아하는 이유가 “긴 역사”였다고 생각한 것은 “과오”였다고 지적한다.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물질문명에 맞서 인간성을 회복하는 세계시민주의라는 것이다.


그는 향로와 같이 있을 때 향로도 살아 있고, 자신도 소생한다고 하면서, 이 길로 마냥 가면 어디인지 아느냐고 거듭 묻는다.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길이 “더러운 것”일수록 “더한층 아까운” 길이자, “더러운 것” 중에도 가장 더러운 썩은 것을 찾는 “더러운 길”이라고 되풀이한다. 이것은 “이 길로 마냥 가면” 나오는 종점인 세계시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민족주의는 “더러운 향로”처럼 깨끗하지 못하고 더럽더라도 “더한층 아까운” 것으로 긍정해야 하는 시발점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해석은 그가 「반시론」에서 “우리 시단의 참여시의 후진성은, 이미 가슴속에서 통일된 남북의 통일선언을 소리높이 외치지 못하고 있는 데에 있다. 이것은 우리의 참여시의 종점이 아니라 시발점이다. 나는 천년 후의 우주탐험을 그린 미래의 과학소설의 서평 같은 것을 외국잡지에서 읽을 때처럼 불안할 때가 없다. 이런 때처럼 우리들의 문화적 쇄국주의가 저주스러울 때가 없다. 이런 미래의 꿈을 그린 산문이 시를 폐멸시키고 말 시대가 불원간 올는지도 모른다.”(전집:515)라고 말했던 것으로 뒷받침된다.


개별 민족의 역사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것일지라도 종점인 세계시민주의로 가는 시발점으로서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는 이후 「거대한 뿌리」(1964)에서 “역사는 아무리/더러운 역사라도 좋다”라는 말로 이어진다.


- 문학박사 이건주


「더러운 향로」(1954)


길이 끝이 나기 전에는

나의 그림자를 보이지 않으리

적진을 돌격하는 전사와 같이

나무에서 떨어진 새와 같이

적에게나 벗에게나 땅에게나

그리고 모든 것에서부터

나를 감추리


검은 철을 깎아 만든

고궁의 흰 지댓돌 위의

더러운 향로 앞으로 걸어가서

잃어버린 애아(愛兒)를 찾은 듯이

너의 거룩한 머리를 만지면서

우는 날이 오더라도


철망을 지나가는 비행기의

그림자보다는 훨씬 급하게

스쳐가는 나의 고독을

누가 무슨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잡을 수 있겠느냐

향로인가 보다

나는 너와 같이 자기의 그림자를 마시고 있는 향로인가 보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원인을

네가 지니고 있는 긴 역사였다고 생각한 것은 과오였다


길을 걸으면서 생각하여 보는

향로가 이러하고

내가 그 향로와 같이 있을 때

살아 있는 향로

소생하는 나

덧없는 나


이 길로 마냥 가면

이 길로 마냥 가면 어디인지 아는가


티끌도 아까운

더러운 것일수록 더한층 가까운

이 길로 마냥 가면 어디인지 아는가


더러운 것 중에도 가장 더러운

썩은 것을 찾으면서

비로소 마음 취하여 보는

이 더러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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