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자 김수영의 가다오 나가다오

by 이건주
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후기인 1960년대 시에서도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사회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민족의 통일과 완전한 독립을 위해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려는 의지도 지속적으로 드러냈던 것이다.


「가다오 나가다오」(1960)에서도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나타난다. 화자는 민족 분단을 강요하는 외세인 “미국인과 소련인” 모두에게 나가라고 반복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혁명”이 끝나고 시작되는 것이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는 “카운터” 같은 것이라고 하면서, “너희들”이 나가는 것은 날이 저물면 “석양”이 비치는 “적막”이 오는 자연적 원리나,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는 자본주의 교환 원리에도 맞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당시 사월혁명으로 인해 민족 통일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다시 도래했으니 분단을 강요하는 낯선 서양 세력이 나가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그는 “글 모르는 백성”들의 마음에는 “미국인”과 “소련인”도 똑같은 놈들이라며, 서양의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이 우리 민족에게는 의미 없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4월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을 “강변 밭”에 계속해서 “씨”를 뿌리는 것에 비유하면서, 당시 사월혁명이 일회적인 정치혁명으로 그치지 않고, 민족 통일의 씨앗이 되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이어서 그는 지나치게 “풍년”이 들어서 헐값으로 넘겨야 하는 상황을 제시하면서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폐단을 비판한다. 그리고 “너희들”이 “피지” 섬을 침략하듯이 우리나라에 서양 문명을 강제로 이식했기 때문에 이런 비극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초콜릿, 커피, 페티코트” 등의 물질문명과 “군복, 수류탄, 따발총” 등 살인적인 전쟁무기들을 모두 가지고 “아주” 가라고 외친다.


그들은 민족 분단을 불러온 침략자일 뿐만 아니라 “생명을 파괴하는” 죽음의 문명을 퍼뜨린 인류의 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이 이 땅에서 나가는 것은 분단된 민족의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는 물론이고, 물질문명으로 인해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인간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가다오 나가다오」(1960)


이유는 없다 -

나가다오 너희들 다 나가다오

너희들 미국인과 소련인은 하루바삐 나가다오

말갛게 행주질한 비어홀의 카운터에

돈을 거둬들인 카운터 위에

적막이 오듯이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는

석양에 비쳐 눈부신 카운터 같기도 한 것이니


이유는 없다 -

가다오 너희들의 고장으로 소박하게 가다오

너희들 미국인과 소련인은 하루바삐 가다오

미국인과 소련인은 ‘나가다오’와 ‘가다오’의 차이가 있을 뿐

말갛게 개인 글 모르는 백성들의 마음에는

‘미국인’도 ‘소련인’도 똑같은 놈들

가다오 가다오

‘4월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끝나고 또 시작되고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잿님이 할아버지가 상추씨, 아욱씨, 근대씨를 뿌린 다음에

호박씨, 배추씨, 무씨를 또 뿌리고

호박씨, 배추씨를 뿌린 다음에

시금치씨, 파씨를 또 뿌리는

석양에 비쳐 눈부신

일 년 열두 달 쉬는 법이 없는

걸찍한 강변밭 같기도 할 것이니


지금 참외와 수박을

지나치게 풍년이 들어

오이 호박의 손자며느리 값도 안 되게

헐값으로 넘겨버려 울화가 치받쳐서

고요해진 명수 할버이의

잿물거리는 눈이

비둘기 울음소리를 듣고 있을 동안에

나쁜 말은 안하니

가다오 가다오


지금 명수 할버이가 멍석 위에 넘어져 자고 있는 동안에

가다오 가다오

명수 할버이

잿님이 할아버지

경복이 할아버지

두붓집 할아버지는

너희들이 피지 섬을 침략했을 당시에는

그의 아버지들은 아직 젖도 떨어지기 전이었다니까

명수 할버이가 불쌍하지 않으냐

잿님이 할아버지가 불쌍하지 않으냐

두붓집 할아버지가 불쌍하지 않으냐

가다오 가다오


선잠이 들어서

그가 모르는 동안에

조용히 가다오 나가다오

서푼어치 값도 안 되는 미·소인은

초콜릿, 커피, 페티코트, 군복, 수류탄

따발총……을 가지고

적막이 오듯이

적막이 오듯이

소리 없이 가다오 나가다오

다녀오는 사람처럼 아주 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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