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주의자 김수영의 공자의 생활난

by 이건주
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1940년대 시에서부터 세계시민주의 논의 가운데 하나인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사회적 차원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민족의 통일과 완전한 독립을 위해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려는 의지도 분명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공자의 생활난」(1945)에서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나타난다. 화자는 당시 현실을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어 있는 상황으로 파악한다. 여기서 “꽃”은 아름다운 전통적 정신을 상징하는 반면에, “열매”는 먹고사는 생활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물질문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어 있다는 말은 「이」(1947)에서의 “도립(倒立)”이라는 말처럼 꽃과 열매의 위치가 거꾸로 서 있는 전도된 상태를 의미한다. 해방 직후 당면한 생활난 해결을 위해서는 먹을 수 있는 “열매(물질문명)”가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과거의 아름다운 “꽃(정신)”이 여전히 그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꽃이 열매의 상부 피어 있는 상황에서도 줄넘기 장난 수준에 머물러 있는 동무를 비판한다. 여기서 “동무”는 아름다운 개별적 민족 전통만 추구하면서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보편적 세계 문명을 배척했던 편협한 민족주의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제목인 “공자의 생활난”처럼 해방 직후 “쌀값 폭등”으로 인해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과거의 “공자”만 찾으면서 현재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난”을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민족주의자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발산한 형상”도 제자리에서 뛰기만 하는 “줄넘기”와 달리 미래를 향해 나가는 문명의 발전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은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물질문명의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작전(作戰)”처럼 어렵다는 말은 당시 해방 직후 미군정 시대에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다 보면 자칫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민중의 생활난 해결을 위해 보편적 세계 문명을 수용하면서도 그들에 맞서 개별적 민족 전통을 지킬 수 있는 “작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곧바로 그가 서양의 “마카로니”보다는 전통적인 “국수”가 먹기 쉽다고 말하는 것은 개별적 민족 전통을 추구하는 “반란성”을 통해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반란성”은 낯선 외래 문명을 거부하게 마련인 민족의 자연적 “습성”(「아침의 유혹」)으로서의 “반란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중국의 손문은 민족을 형성하는 다섯 가지 힘으로 혈통, 생활, 언어, 종교, 풍속·습관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런 힘들이 “자연히 진화되어 생긴 것”이라며 민족의 자연성을 강조했다.


이 시에서 제시하는 “반란성”도 보편적 세계 문명에 대항할 수 있는 민족의 자연적 힘으로 볼 수 있다. 보편적 세계 문명을 수용해도 이에 대항할 수 있는 민족적 습성인 반란성이 있으므로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파스칼 카자노바 식으로 말하면, 보편적 세계문학을 추구하면서도 “종속에 맞서 투쟁하고 경쟁 관계를 확립”하기 위해 “특수하고 민족적인” “차이”를 창출하는 반란을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자신감을 근거로 마침내 그는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라고 당당히 선언한다. 이제부터는 “사물의 생리”, “사물과 수량의 한도”, “사물의 우매”, “사물의 명석성”, 즉 ‘사물’이 가리키는 세계적 물질문명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나는 죽을 것이다”라는 말로 시를 마무리하는 것도 실제로 죽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공자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은 것이다.(朝聞道夕死可矣,)”라는 말대로 이제는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보편적 세계 문명을 추구하는 것을 새로운 도(道)로 삼겠다는 “행복”한 선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그가 개별적 민족 전통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보편적 세계 문명만을 추구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가 “사물의 명석성(明晰性)”과 함께 “사물의 우매(愚昧)”를 제시하는 것은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적 물질문명을 수용하더라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우매”한 폐단도 함께 직시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이 열매의 상부에 있다고 해서 반대로 열매를 꽃의 상부에 놓는 것이 아니라, 양극의 가치를 모두 긍정하면서 다원적 균형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헤겔이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꽃과 열매의 “동등한 필연성”을 강조한 것으로 뒷받침된다. 헤겔은 “꽃이 피어나면 꽃봉오리는 사라지는데, 이를 두고 꽃봉오리가 꽃에 의해 반박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터이고, 마찬가지로 꽃이 식물의 거짓된 현존재임이 열매를 통해 밝혀지면서 꽃 대신 열매가 식물의 진리로 등장했다고 선언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형식들은 서로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서 서로를 배척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유기적 통일 속에서 그것들은 상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하나가 다른 하나 못지않게 필연적이며, 이런 동등한 필연성이 비로소 전체의 생명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자의 생활난」은 민족의 분단에 맞서서 전통적인 관공의 얼을 추구하는 「묘정의 노래」와 달리, 민중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서양의 물질문명을 추구하고 있다. 해방 이후 비슷한 시기에 창작된 두 작품에서 나타나는 이런 간극은 그가 시작(詩作) 초기부터 개별적 민족과 보편적 세계를 모두 긍정하면서 그 사이에서 다원적 긴장을 추구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 문학박사 이건주


[공자의 생활난](1945)


꽃이 열매의 상부(上部)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

나는 발산(發散)한 형상(形象)을 구(求)하였으나

그것은 작전(作戰)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이태리어(伊太利語)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叛亂性)일까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事物)과 사물(事物)의 생리(生理)와

사물(事物)과 수량(數量)의 한도(限度)와

사물(事物)의 우매(愚昧)와 사물의 명석성(明晰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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