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적 절제:김수영의 너를 잃고

by 이건주
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1950년대 시에서부터 개별성과 보편성 가운데 어느 한 극점에 안주하려는 마음을 절제하고, 양극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려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를 제시했다. 그는 양극을 고차원적으로 종합하는 변증법이 아니라, 중용적 절제를 통해 양극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다원주의를 긴장의 해법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먼저, 「너를 잃고」(1953)에서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려는 절제가 나타난다. 화자는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너”를 “억만 개의 모욕”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늬”는 “나”를 배신해서 나에게 모욕을 주는 실제의 아내로서 “상처를 아물게 하기는커녕 계속 자신의 상처를 덧내는 모욕 덩어리”가 아니라, “나”가 가장으로서 책임지고 부양해야 할 아내로서 개별적 생활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모욕”은 실제 아내로서 “가장 가까운 존재가 가장 멀리 사라질 때 모욕감”이 아니라, 반대로 “나”가 개별적 생활을 부정하고 보편적 정신만 추구함으로써 아내로부터 당하는 비난과 모욕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꽃”이나, “별”을 등에 지고 앉아 “모래알” 사이에서 “너의 얼굴”을 찾고 있었다고 하면서, “인제” “늬가 없어도 산단다”라고 다시 선언한다. 그동안 “모래알”처럼 각박한 생활 속에서 “너의 얼굴”을 찾으면서 개별적인 가족을 위해 돈만 벌었으니, 이제부터는 이를 절제하고 “꽃”, “별”로 상징되는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늬” 없이 사는 삶이 “보람”이 있기 위해서 “돈”을 벌지 않고, “여자”를 보지 않고 산다고 하면서, “애정의 원주(圓周)”가 진정으로 “위대”해지기를 바란다고 밝힌다. 이제부터는 애정의 원주를 가족에서 민족, 인간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1954년 11월 27일자 일기로 뒷받침된다. 여기서 그는 “너 왜 어머니한테 붙어 있니? 집식구들을 벌어먹이려고 있니?”라고 꾸짖는 이모에게 “그럼 돈으로 벌어야 꼭 버는 거요. 정신으로도 버는 수가 있지.”라고 항변하면서 “이러한 종류의 모욕, 아니 이것보다 더 큰 모욕에라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공연히 마음이 뒤숭숭하여진다.”라고 고백하였다.(3판:678-679) 당시에 그는 가장인데도 무책임하게 “돈”을 벌지 않는다는 가족의 “모욕”을 견디면서 시인이자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개별적 생활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늬”가 없는 “공허한 원주”가 가장 찬란해지면 그때는 다시 “다른 유성(遊星)”을 향해 달아날 것을 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별적 생활을 부정하고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다가 “공허한 원주”가 찬란해지면 다시 개별적 생활로 돌아오겠다는 것이다. “나”의 “생활의 원주(圓周)” 위에 어느 날이고 “늬”가 서기를 바라고, “나”의 “애정의 원주(圓周)”가 진정으로 “위대”해지기를 바란다는 말도 지금은 위대한 정신을 추구하지만, 이후에 다시 “늬”가 있는 개별적 생활로 되돌아오겠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마지막 연에서 제시된 “영원한 숨바꼭질”은 개별적 생활과 보편적 정신 사이에서 “영원히” “숨바꼭질”을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사람은 개별적 생활과 보편적 정신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해야 하는 다원적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영원한 숨바꼭질”은 이후 산문「반시론」(1968)에서 제시한 “무한한 순환”과 연결되고, “애정의 원주(圓周)”가 진정으로 “위대”해지기를 바란다는 말은 가족에서 민족, 인간으로 사랑의 범위가 넓어지는 “원주(圓周)의 확대”로 이어진다.


그가 영원히 “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리겠다는 말로 시를 마무리하는 것은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개별적 생활이 아니라 보편적 정신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은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영원히 보편적 정신을 추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개별적 생활을 부정하고 돈을 벌지 않아서 받을 억만무려(億萬無慮)의 “모욕(侮辱)”을 감수하면서도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그동안 가장으로서 개별적인 가족을 위한 생활만 추구해 왔으니, 이제부터는 무책임하다는 “모욕”을 감수하는 중용적 절제를 통해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너를 잃고」(1953)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

억만 번 늬가 없어 설워한 끝에

억만 걸음 떨어져 있는

너는 억만 개의 모욕이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꽃들

그리고 별과도 등지고 앉아서

모래알 사이에 너의 얼굴을 찾고 있는 나는 인제

늬가 없어도 산단다


늬가 없이 사는 삶이 보람 있기 위하여

나는 돈을 벌지 않고

늬가 주는 모욕의 억만 배의 모욕을 사기를 좋아하고

억만 인의 여자를 보지 않고 산다


나의 생활의 원주(圓周) 위에 어느 날이고 늬가 서기를 바라고

나의 애정의 원주가 진정으로 위대하여지기 바라고


그리하여 이 공허한 원주가 가장 찬란하여지는 무렵

나는 또 하나 다른 유성(遊星)을 향하여 달아날 것을 알고


이 영원한 숨바꼭질 속에서

나는 또한 영원히 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 하겠다

나는 억만무려(億萬無慮)의 모욕인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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