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후기인 1960년대 시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가운데 어느 한 극점에 안주하려는 마음을 절제하고, 양극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려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를 지속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양극을 고차원적으로 종합하는 변증법이 아니라, 중용적 절제를 통해 양극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다원주의를 긴장의 해법으로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이다.
「사랑의 변주곡」(1967)에서는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려는 절제가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화자는 속물적 “욕망”의 “입” 속에서 보편적 정신의 핵심인 “사랑”을 발견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도시의 끝”에는 사그러져 가는 “라디오”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쪽빛 산”이 있다고 덧붙인다. 이기적 욕망을 추구하는 도시와 사랑이 있는 자연 사이를 이행하면서 균형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강 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삼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한다고 하면서, “봄밤”에는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사랑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쪽빛 산”이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고 말한다. 봄밤에는 도시에서 이기적 욕망을 추구하느라 쌓인 슬픔을 달래기 위해 “기차”를 타고 “사랑”이 있는 “산”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이제”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까지도 “사랑”이라고 하면서,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사랑의 숲”이 벅차게 밀려닥친다고 말하는 것도 봄밤에는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인 사랑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그는 “욕망”의 “입”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방법으로 낮에는 문명을 상징하는 “라디오” 소리가 들리는 “서울”에서 개별적 생활을 위해 일하고, 밤에는 “사랑의 음식”인 사랑을 구하기 위해 “쪽빛 산”에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식으로 시공간의 무한한 이행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어서 그는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節度)”가 열렬하다고 말한다. 욕망과 사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면, 낮에는 사랑을 잊어버리고 “열렬”히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다가, 밤에는 욕망을 잊어버리고 “열렬”히 인간적 사랑을 추구하는 식으로 시간적 상황에 알맞게 행동하는 “절도”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가 “간단도 사랑”이라고 하면서, “암흑” 속을 “사랑이 이어져 가는 밤”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잠시 그치거나 끊어짐을 뜻하는 “간단(間斷)”이라는 말처럼 인간적 사랑이 낮에는 잠시 중단되었다가 밤에는 다시 이어지는 “중단과 계속”(「꽃2」)을 반복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이라는 말도 낮에는 “서울”에서 눈을 뜨고 가족을 위한 이기적 욕망에 충실하다가도 밤에는 “쪽빛 산”에서 눈을 감고 인간적 사랑을 추구하는 중용적 절제가 “욕망의 입”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기술”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이런 사랑의 기술을 “불란서 혁명”과 “4·19” 혁명에서 배웠다고 하면서, 이제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가다오 나가다오」(1960)에서 “4월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를 무수히 반복한다고 말했듯이 사랑도 혁명처럼 시공간적 상황에 따라 중단과 계속을 반복하기 마련이므로 굳이 소리내어 외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려는 욕망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인간적 사랑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낮과 밤이라는 시간적 상황에 따라 “절도” 있게 양극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다원주의가 바로 사랑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시의 후반부에서는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폭풍의 간악한 신념이여”라고 외친다. 여기서 “씨”는 과일에 “씨”가 있어야 영원히 생명을 지속할 수 있듯이 인간이 영원히 존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랑”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간악한 신념”은 성격이 곧아 거리낌 없이 바른말을 한다는 의미로 사랑이 “간악”(侃諤)하게 지켜야 할 보편적 “인류의 신념”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는 산문 「새로움의 모색-쉬페르비엘과 비어렉」(1961)에서 “현대시는 이제 그 ‘새로움의 모색’에 있어서 역사적인 경간(徑間)을 고려에 넣지 않으면 아니 될 필연적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면서, “역사적 지주는 이제 개인의 신념이 아니라 인류의 신념을, 관조가 아니라 실천하는 단계”를 밟아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로터리의 꽃의 노이로제-시인과 현실」(1967)에서도 “진정한 시는 자기를 죽이고 타자가 되는 사랑의 작업이며 자세인 것”(3판:280)이라고 강조했다. 현대는 개별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개인의 신념”을 죽이고, 보편적인 ‘인류의 신념’으로서의 “사랑”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 신념보다 더 큰 / 내가 묻혀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 너는 개미이냐”라고 말하는 것도 개별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개인의 신념”으로 만들어진 물질문명의 도시보다 “인류의 신념”인 “사랑”을 추구하는 도시가 더 위대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개별적으로 “욕망”을 추구하는 물질문명의 도시를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처럼 아름답고 단단한 보편적 사랑을 추구하는 사랑의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개별적 생활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아들에게 “광신(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고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적 사랑만을 “광신”하지 말고 “사랑”을 알기 전까지는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인류의 종언의 날”이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 미대륙에서 “석유”가 고갈되는 날은 물론이고 그 전에 “도시의 피로”에서 이 “단단한 고요함”으로 상징되는 “사랑”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배울 것이라고 단언한다. 지금은 당면한 생활난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지만, 생활의 피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인간적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는 언젠가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것이라고 외치면서, 그것이 “아버지” 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이 아닐 것이라는 말로 시를 마무리한다. 이것은 생활난이 극심한 “아버지”의 시대에는 인간적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그릇된” 명상일지도 모르지만, 미래 “아들”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지금은 가족의 생활난을 해결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인 “잘못된 시간”이지만, 미래에는 인간적 사랑을 추구하는 시간이 반드시 도래할 것이라는 확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가 “욕망”의 “입”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욕망과 사랑, 개별적 생활과 보편적 정신 어느 한 극점에 안주하지 않고 “절도”를 지키면서 양극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것이다. 제목이 “사랑의 변주곡”인 것도 변주곡(變奏曲, variation)이 하나의 주제가 되는 선율을 바탕으로 선율·리듬·화성 등이 여러 가지로 변형되는 것처럼 “사랑”도 시공간적 상황에 따라 무한히 바뀌는 변주곡과 같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가장으로서의 개별적 생활과 세계시민으로서의 보편적 정신 사이를 끊임없이 이행하는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사랑의 변주곡(1967)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都市)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삼(三)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節度)는
열렬하다
간단(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 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 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사․일구(四․一九)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 놓은 폭풍(暴風)의 간악한
신념(信念)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신념(信念)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 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광신(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인류(人類)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미대륙(美大陸)에서 석유(石油)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도시(都市)의 피로(疲勞)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 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 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瞑想)이 아닐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