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1960년대 시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도시와 시골 사이의 무한한 순환을 지속적으로 제시하였다. 도시에서는 가장으로서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다가, 시골에서는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공간의 무한한 순환을 유목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이다.
먼저, 「여수(旅愁)」(1961)에서부터 도시와 시골 사이의 순환이 나타난다. 화자는 “소록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시멘트”로 만든 뜰에 “겨울”이 와 있었다고 말한다. 정신적 공간인 소록도 여행을 마치고 왔더니, “시멘트”로 상징되는 도시의 물질문명이 차가운 “겨울”처럼 시련과 고통을 안겨다 준다는 것이다.
그는 “전보”도 안 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없는 동안 “아내의 비밀”과 “그의 비밀”을 탐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비밀”은 실제 아내와 그 사이의 불륜 문제가 아니라, 도시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속물들의 숨겨진 욕망을 불륜 관계에 빗대어 비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도시 문명 속에서 살고 있는 “아내”와 “그”를 비롯한 세인(世人)들의 비밀은 보편적 정신을 외면하고 개별적 생활만 추구하는 이기적 속물이라는 것이다. 그가 이런 비밀을 탐지하고도 “조금도” 놀라지 않았고, 그동안의 “부재(不在)”에도 놀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것도 도시인들의 속물적 비밀은 이미 알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 연에서 그는 도시 문명 속에 있는 “집”에 돌아와서 여전히 바쁘기만 한 자신을 “상식에 취한 놈”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전통적 공간인 “소록도”의 “하얀 바다”에 버리고 온 “취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도시 문명 속에서 개별적 생활을 위해 일하는 피로와 설움을 달래기 위해 술을 먹고 “취기”에 빠져 살다가, 정신적 공간인 소록도를 여행하면서 하얀 바다에 이를 버리고 왔는데, 아직도 그 취기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남은 취기를 버리기 위해 다시 소록도의 하얀 바다로 가겠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당시의 산문 「소록도 사죄기」(1961)에서 “봄이 오면 꼭 이 친구를 데리고 소록도를 다시 한번 찾아갈 작정이다. ‘봄에 또 한 번 오슈. 다음에 올 때는 이번하고 놀라울 만큼 소록도가 달라져 있을 테니!’ 하고 소록도의 혁명 완수를 다짐한 원장의 장담도 테스트해 볼 겸.”(3판:102)이라고 썼다. 소록도는 도시 물질문명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시 찾아가야 하는 혁명적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기의 「시골 선물」(1954)에서는 “시골”에다 모자와 함께 도시 물질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설운 마음”을 놓고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는 “소록도”에 생활의 고통인 “취기”를 버리고 와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할 수 있는 힘을 얻고 있다. 도시에서 개별적 생활에 몰두하다가 시골로 가서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공간의 무한한 순환을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여수(旅愁)」(1961)
시멘트로 만든 뜰에
겨울이 와 있었다
아무 소리 없이 떠난
여행에서
전보도 안 치고
돌아오기를 잘했지
이 뜰에서
나는 내가 없는 동안의
아내의 비밀을 탐지하고
또
내가 없는 그날의
그의 비밀을
탐지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나
지쳤는지도 모른다)
여행이 나를
놀래일 수 없었던 것과 같이
나는 집에 와서도
그동안의 부재에도
놀라서는 안 된다
상식에 취한 놈
상식에 취한
상식
상…… 하면서
나는 무엇인가에
여전히 바쁘기만 하다
아직도
소록도의 하얀 바다에
두고
버리고
던지고 온 취기가
가시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