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주의 박사논문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다원적 세계시민주의 연구」(2025)를 알기 쉽게 수정 보완한 [K-문학:다원적 세계시민 김수영]의 일부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초고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김수영은 1960년대 시에서도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다원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도시와 시골 사이의 무한한 순환을 지속적으로 제시하였다. 도시에서는 가장으로서 개별적 생활을 추구하다가, 시골에서는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공간의 무한한 순환을 유목적 세계시민-되기의 실천 방법으로 일관성 있게 제시했던 것이다.
「X에서 Y로」(1964)에서도 도시와 시골 사이의 순환을 찾아볼 수 있다. 화자는 낮의 “전등(電燈)”에서 밤의 “소등(消燈)”으로, 생활의 “소음”에서 “라디오의 중단”으로 암시되는 침묵으로, 문명적인 “모조품 은단(銀丹)”에서 유학의 “인(仁)”을 연상시키는 전통적인 “인단(仁丹)”으로, 현실적 일터인 “남의 집”에서 정신적 공간인 “내 방”으로, 개별적 생활을 위한 “노동”에서 이를 잠시 중단하고 쉬면서 보편적 정신을 추구하는 “휴식”으로, 그리고 개별적 생활을 아예 잊어버릴 수 있는 “수면”으로 왔다고 말한다. 따라서 제목인 “X에서 Y로”는 도시 X에서 시골 Y로, 다시 시골 X에서 “나의 마을” Y로의 연속적 이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물질문명을 상징하는 “신축공장”이 있고, 새까만 발에 어울리지 않게 “샌들”을 신은 여자가 사는 “시골”, 즉 점차 도시화되고 있는 시골에서 무식하게 사치스러운 “공허의 서울”을 지나서 “얼굴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발목이 굵은” 여자들이 많이 사는 자연적인 “나의 마을”로 “억지”로 왔다고 말한다. 물질문명의 공간인 “서울”은 물론이고 서울처럼 변해가고 있는 “시골”도 떠나서 보편적 정신이 살아 있는 자신만의 헤테로토피아로 왔다는 것이다.
그는 “억지로” 왔다는 말로 시를 마무리하면서, 무식하게 사치스럽고 공허한 도시 물질문명의 폐단을 치유하기 위해서 보편적 정신이 살아 있는 “나의 마을”로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가 “억지로”를 강조하는 것에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억지로 오게 되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 X에서 억지로 Y로 왔지만, 나중에는 다시 Y에서 X로 다시 이동할 것이라는 뜻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도시 문명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X에서 Y로의 이동을 “지구”에서 “지구”로 왔다고 표현하는 것으로도 뒷받침된다. 그는 개별적 생활을 위한 도시와 보편적 정신을 위한 시골이 모두 지구의 일부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구를 도시, 시골, “나의 마을”이 공존하는 다원적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 문학박사 이건주
「X에서 Y로」(1964)
전등에서 소등(消燈)으로
소음에서 라디오의 중단으로
모조품 은단(銀丹)에서 인단(仁丹)으로
남의 집에서 내 방으로
노동에서 휴식으로
휴식에서 수면으로
신축공장이 아교공장의 말뚝처럼 일어서는
시골에서
새까만 발에 샌들을 신은 여자의 시골에서
무식하게 사치스러운 공허의 서울의
간선도로를 지나
아직도 얼굴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발목이 굵은 여자들이 많이 사는 나의 마을로
지구에서 지구로 나는 왔다
나는 왔다 억지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