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맞춤형 수준별 고교학점제로 개편

by 이건주
교사 출신 이건주 박사의 서울시교육감 선거 공약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일부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고등학교 단계에서 책임교육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별도의 부담을 부과하는 최소성취수준 보장지도(최성보)가 아니라, AI 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수준별 맞춤 교육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살만 칸이 『나는 AI와 공부한다』(2025)에서 지적했듯이 많은 학교에서 여전히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전통적인 학습 방식에서는 학습 공백이 불가피하다. 진도가 고정된 기존 수업 방식에서는 기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어도 다음 단계로 바로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학습 공백은 계속해서 커질 수밖에 없다.


교육부도 '고교학점제 운영 개선 대책(안)'(2025)에서 초‧중학교부터 학습 결손이 누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교에만 책임교육을 강조하여 교사의 부담이 가중되고, 형식적‧편법 운영 등이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초‧중학교 단계부터 기초학력 보장 지도를 체계적으로 운영하여 학습 결손 누적을 예방하고, 기초학력 미달, 경제적‧심리적 문제 등 학생의 복합적 어려움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의 발표대로 기초학력 미달 학생 보충지도는 학습 공백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단계에서 실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미 수년간의 학습 공백이 누적된 고등학생들에게 4년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과 동일한 수업을 하면서, 일정한 성취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보충지도를 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운영 개선 대책(안)'(2025)에서 학습 결손이 누적된 학생들의 이수를 지원하기 위해서 2022 개정 교육과정에 기초적 내용을 배울 수 있도록 개발한 과목인 ‘기본영어’, ‘기본수학’을 온라인학교에 개설하여 희망하는 학생들이 수강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기초적 내용을 배울 수 있는 과목들을 온라인학교에 개설할 것이 아니라, 학교의 정규 수업시간에 희망하는 학생들이 배울 수 있도록 수준별 맞춤수업을 실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AI 혁명 시대에 필수적인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학교를 학생 맞춤형 수준별 수업 체제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 살만 칸의 『나는 AI와 공부한다』(2025)에 의하면, 블룸은 ‘두 시그마 문제’를 다룬 논문에서 학생이 어떤 주제나 기술을 익히기 위해 개인 교사와 함께 공부할 때, 표준편차의 두 배에 해당하는 성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백분위 50에서 시작한 학생이 96까지 올라설 수 있는 수준의 발전을 뜻한다.


개인 교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준별 맞춤 수업이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은 교육적 상식이다. 이미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설 학원들이 사전 레벨 테스트를 통해 수준별 반 편성을 하고 맞춤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더구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는 미래 사회에서는 학생들이 급격한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본 교육을 보장하는 학교의 책임성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학력 수준이 천차만별인 학생들을 같은 교실에 모아 놓고 최소성취 수준 미도달 학생들을 가려내어 별도로 보충 지도할 것이 아니라, 애초에 미도달 학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학생 맞춤형 수준별 수업을 실시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타당하다.


특히 고등학교 단계에서는 학생들의 성취 수준 차이가 매우 크므로 수준별 맞춤 수업이 필수적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공부하여 SKY를 목표로 할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에 오른 학생과 학습 부진이 누적되어 기본적인 이해력조차 부족한 학생들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수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일반고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교이기 때문에 교사들이 중상위권 학생들의 수준과 속도에 맞춰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결과 하위권 학생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수업을 그저 졸업 요건을 채우기 위해 듣는 상황에 처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학습 결손이 누적된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 외에 별도의 보충 학습을 부과하는 방식보다는, 정규 수업 시간 속에서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수준별 수업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학생 중심 교육의 원리에도 부합한다. 학생 입장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들을 수 있는 과목 선택권뿐만 아니라, 자신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수준별 수업 선택권도 부여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학교에서는 여전히 SKY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과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한 교실에 모아놓은 채, 보충 지도만 고민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나는 수학, 영어 교과부터 수준별 맞춤 고교학점제를 실시할 것을 제안해 왔다. 학습 결손이 누적되면 따라가기가 어려운 수학과 영어 교과의 경우 공통과목과 학교에서 지정하는 일반 선택과목을 ‘기본과목’, ‘공통과목’과 ‘심화과목’으로 나누어 수준별로 선택하게 하자는 것이다.


가령 수학과 영어 과목의 경우 학생들이 기본과목을 신청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이미 2022 개정 교육과정에는 ‘기본수학’과 ‘기본영어’가 공통과목으로 개설되어 있다. 그리고 학생의 발달 수준 등을 고려하여 공통수학과 공통영어를 기본수학과 기본영어로 대체 이수하도록 편성·운영할 수 있다.


앞으로 중학교 졸업생이 고등학교에 배정되면, 신입생 등록 기간에 기본수학과 기본영어 과목 희망자를 조사해서 입학하자마자 이동해서 공부할 수 있게 하면 된다. 물론 희망하는 학생이 없으면 별도로 운영할 필요가 없지만,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은 경우는 스스로 원해서 선택한 것이므로 굳이 열등감을 걱정할 필요 없이 운영할 수 있다.


한편, 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내신 5등급 체제에서 1등급 학생들은 심화과목, 2~4등급 학생들은 공통과목. 5등급 학생들은 기본과목을 선택하도록 지도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학년 공통과목은 1학기에 공통으로 운영하되, 1학기 성적을 기준으로 2학기부터 기본과목, 공통과목, 심화과목으로 나누고, 2~3학년 선택과목은 직전 학기 관련 과목 성적을 기준으로 수준별로 나누어 편성하면 될 것이다.


물론 수준별 맞춤 수업에서는 기준에 미치지 못해서 낮은 수준의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이 심리적으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학원에서는 사전에 레벨 테스트를 통해 수준별 반 편성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이나 학부모 사이에서는 수준별 맞춤 수업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더구나 수준이 천차만별인 학생들을 한 교실에 모아놓고 수업한 후에 일부 미도달 학생들에게 별도로 방과후나 방학 중에 나머지 공부를 시킴으로써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 5등급 학생들이 정규 수업 시간에 기본과목을 수강하도록 하여 미도달 학생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훨씬 교육적이고 심리적으로도 건강한 방법이다.


기본, 공통, 심화라는 명칭이 열등감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면 미국처럼 일반, 우등, 심화로 명칭을 바꿀 필요도 있다. 미국은 고교학점제 자체를 일반 과목, 우등(Honors) 과목, 심화(AP) 과목으로 구분해서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미시건주의 레이크 오리온 고등학교(LOHS)에서는 영어 교과의 경우 10학년에서 일반 과목 English Language Arts 10과 우등 과목 Honors English 10을 개설한다. 또 11학년에서는 일반 과목 English Language Arts 11과 심화 과목 AP English 11 Language Arts & Composition을 운영한다. 학생들은 일반·우등·심화 과목 중에서 자신의 수준에 맞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으며, 우등이나 심화 과목을 신청한 경우에는 담당 교사가 학생의 학업 성취 수준을 고려해 수강 여부를 결정한다.


내신평가는 수준별로 가중치를 부여하면 된다. 가령 LOHS의 내신 평가는 12등급(A, A-, B+, B, B-, C+, C, C-, D+, D, D-, E)으로 산출된다. 일반 과목은 A등급 4점, B등급 3점, C등급 2점, D등급 1점으로 계산되는데, 우등 과목은 0.5점, 심화 과목은 1.0점의 가중치가 부여된다. 예를 들어 일반 과목의 A등급은 4.0점인데, 우등 과목의 A등급은 4.5점, 심화 과목의 A등급은 5.0점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과목 수준별 난이도에 따른 합리적 평가 시스템으로, 학생의 선택과 성취를 동시에 반영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2022 개정 교육과정에는 수학과 영어 교과의 경우 기본과목과 공통과목은 있는데 심화과목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선택과목도 기본과목도 없이 단일 수준으로 편성되어 있다. 따라서 수준별 맞춤형 고교학점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수학과 영어 교과를 기본, 공통, 심화 과목으로 나누어 편성하는 식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교육과정이 개편되기 전에는 기존의 교과서와 함께 학교에서 교사들이 제작한 기본 자료와 심화 자료를 추가해서 가르치면 될 것이다.


AI 시대 인재를 기르는 미래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학교를 수준별 맞춤형 학습 체제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 수준이 천차만별인 학생들을 같은 교실에 모아놓고 수업하는 것은 비교육적이고 비상식적이다. 더구나 수업 결손이 누적되어 고등학교 졸업장이 목표인 학생을 SKY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과 동일하게 가르치고서 최소 성취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나머지 공부를 시키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 이건주 교육평론가/전 한국교총 현장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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