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출신 이건주 박사의 서울시교육감 선거 공약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일부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OECD가 발표한 「TALIS 2024: The State of Teaching」(2025)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교사들은 세계 주요국 중 가장 긴 근무시간과 높은 업무강도를 감내하고 있으며, 직무 만족도와 심리적 안정도는 OECD 평균을 크게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TALIS는 전 세계 50여 개국 약 26만 명의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된 교사 국제 비교조사로, 교직의 현실과 교육환경을 분석하는 대표적인 국제 지표라는 점에서 한국 교육의 민낯이 드러낸 결과로 보인다.
TALIS 2024 조사에서 한국 교사들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52시간으로 OECD 평균(43시간)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이 중 수업 외 행정업무, 생활지도, 학부모 응대, 행정보고 등에 소요되는 시간이 전체의 약 40%를 차지했다. OECD는 “한국 교사들은 수업 준비나 학생 평가 외에도 행정적 보고와 관리 업무를 과도하게 수행하고 있다”며 “이는 교육 본연의 질적 향상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국 교사의 정서적 소진(burnout) 지수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응답자의 68%가 “업무로 인해 극심한 피로를 느낀다”고 답했으며, 45%는 “최근 12개월 내 업무 관련 스트레스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TALIS 분석진은 “한국 교사들의 업무환경은 ‘감정노동’의 전형”이라며 “교권 침해, 민원 스트레스, 과중한 책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 한국 교육의 핵심 문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교사들이 교육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울 정도로 교육 여건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의 교육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사의 행정 업무 경감이 시급하다.
AI 시대 교사의 역할과 한국 교사의 교육력
AI 혁명 시대에 교사의 역할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AI는 방대한 지식을 순식간에 제공하고,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맞춘 맞춤형 학습을 지원한다. 그러나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 배운 것을 이해하고 비판하며, 삶 속에서 적용하도록 이끄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그 과정의 중심에는 여전히 교사가 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교사가 가르치고 학생이 배우는 교육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AI 시대에도 AI가 교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AI 교육 자료들을 활용하여 수업을 하고, 학생은 수업이 끝난 이후에 AI 교육 자료들을 가지고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는 형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박형빈 교수는 『AI 시대 대한민국 교육 변혁』(2024)에서 AI 시대 교육에서 교사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욱 커지는 이유 6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교사는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 함양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생성 AI가 제공하는 정보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교사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정보의 타당성과 신뢰성을 평가할 수 있는 ‘AI 리터러시 능력’을 길러 줄 수 있다.
둘째, 교사는 협업과 소통 능력 개발의 조력자이다. AI는 인간 특유의 공감 능력과 상황 맥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섬세한 지도에서 아직 충분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인성 교육의 핵심 요소들은 인공지능이 아닌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인간 교사의 지도하에 효과적으로 습득되고 내면화될 수 있다.
셋째, 교사는 윤리적 판단력 개발의 조력자이자 AI 리터러시 교육의 주체이다. 학생들이 ‘AI의 한계와 잠재적 편향성’을 인식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인간 교사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넷째, 교사는 정서적 지원과 인간적 상호작용의 제공자이다. AI는 정보 제공과 학습 지원에는 뛰어난 수행을 보일 수 있지만, 학생들의 정서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이에 적절히 반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인간 교사는 학생 개개인의 상황과 정서·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이들에게 적합한 정서적 지원을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다섯째, 교사는 학생들의 메타인지 개발의 촉진자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평가할 수 있는 메타인지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학습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도록 유도하고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설명하도록 하며, 학생 간 상호 피드백을 주고받는 활동 등을 도와주어야 한다.
여섯째, 교사는 학생들의 학습 동기 부여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학습의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고 학습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하는 등 학습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인 학습 동기를 유발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박 교수는 AI 기술이 교육 현장에서 강력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지만, 인간 교사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도 없고 대체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인간 교사’와 ‘보조 도구로서의 AI 디바이스’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하면서, 미래 교육의 성공은 AI 기술의 효과적인 활용과 함께 인간 교사의 전문성과 지혜를 어떻게 조화롭게 결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AI 혁명 시대에 교사의 교육적 역량이 더욱 중요해짐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사의 역량이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성균관대에서 OECD가 2022년, 2023년에 진행한 2주기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서 국가별 교원 능력 자료를 별도로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OECD 분석 대상 16개국 가운데 한국 교원의 언어능력은 9위, 수리력은 10위, 적응적 문제 해결력은 12위에 그쳤다. 일본이 모든 항목에서 1, 2위를 차지한 것에 비교된다.
최근 한국학원총연합회 회장이 학교 교사가 학원 강사보다 실력이 떨어진다는 취지의 발언을 공식 석상에서 했다가 교원단체들의 뭇매를 맞았다. 그는 국회에서 열린 어느 토론회에 참석해서 소비자들이 선택할 때 학교 선생님들이 학원 선생님들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 발언에 앞서 과거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여성에게 안정적 직업 1위였다. 그런데 최근 교대 경쟁률은 형편없이 낮아지고 있다며, 이제는 교사가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3D 업종’으로 들어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회장은 한국학원연합회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을 통해서 사명감으로 교직에 헌신하고 계신 교사들이 행정 업무 과중, 돌봄 등으로 학습·연구 시간이 부족해 교육에 집중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 중에 단어 선택이 적절치 않았다고 사과했다.
학원총연합회 회장의 발언은 공교육의 가치와 교사의 존재 이유에 대한 몰이해와 철학 부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매우 부적절하다. 더구나 최근 교권 침해와 악성 민원 증가 등 교육활동 자체의 어려움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교사들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힌 것으로, 용서하기 어려운 망언이다. 그런데 사과문 내용 가운데 교사들이 행정 업무 과중 등으로 학습·연구 시간이 부족해서 교육에 집중할 수 없다는 지적은 사실에 가깝다.
교사의 교육력을 높이기 위해 행정업무 배제
나는 사범대와 교대에서 우수한 교원들이 양성됨에도 불구하고, 학교 현장에서 교사의 교육력이 낮다면, 그 주된 요인은 교육적 전문성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드는 과도한 행정 업무 때문이라고 본다. 이미 교사의 교육력을 높이고 학교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교육 전문가인 교사들에게 부과된 행정 업무를 경감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지금까지 교육부나 교육청에서도 이를 인식하고 교사의 행정업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사의 행정업무가 그대로 존재하는 한 이를 줄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는 교사의 행정업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행정업무에서 배제함으로써 교사들이 본연의 임무인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총에서도 지난 대선의 교육 공약으로, 학교 교육력 회복을 위해 교육과 무관한 학교 행정 업무 분리를 제시했다. 교원이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해, 교육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행정 업무는 학교 밖으로 이관하거나 폐지하는 종합 대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교총은 외부 기관으로의 이관이 타당한 업무부터 우선 이관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종 인력 채용 및 관리 업무, 환경 개선 및 산업 안전·보건 관련 업무, 학교 내 직종 간 갈등 발생 업무는 교육청 및 학교지원전담기구로 이관하고, 학교 주변 시설 관련 조사, 교육 급여 및 교육비 지원사업 대상자 확인 업무, 취학대상자 면접 및 소재 확보, 미취학자 소재 확인, 위장전입 학생 관리 등 교육활동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비본질적 행정 업무는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교사를 행정업무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교무행정실무사 확대 배치를 제안하고자 한다. 최우선적으로 학교에서 교육청이나 교육부, 국회 등에서 내려오는 공문이나 부서별 내부 결재 공문을 처리하는 전담 실무사부터 모든 학교에 추가 배치해야 한다. 지금 학교에서는 모든 교사가 하나 이상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교사 행정 업무 가운데 가장 부담이 큰 공문 처리로부터 교사를 해방시켜야 실질적인 행정업무 경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박형빈 교수의 책에 의하면, 미국에서도 공문 처리 주체는 교사가 아니라 교장, 교감, 코디네이터라고 한다. 미국에서 교사는 공문 수발 및 처리 업무를 담당하지 않는 것이다. 공문은 주정부 및 교육부가 요청하는 공식적 서류들이므로, 교사의 의견을 반드시 반영해야 하는 경우에만 교사가 제한적으로 참여한다. 우리나라도 모든 학교에 공문 처리 전담 실무사가 배치되면, 실무사가 교육청이나 교육부, 국회 등에서 내려오는 모든 공문을 관리자나 담당 부장교사의 확인을 받아서 처리하면 된다.
이와 함께 각 부서별로 진행되는 사업을 위한 내부결재 공문 처리와 예산 관련 결재도 실무사가 전담해야 한다. 특히 예산 집행과 결산 등은 처리가 매우 까다롭고 수많은 행정 절차가 따르기 때문에 수업하기도 바쁜 교사들이 처리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공문 전담 실무사가 담당 부장교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부서별 예산 집행과 결산 등도 함께 처리하면 업무 효율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장기적으로 교무실무사는 학교 조직을 교과교육팀과 행정업무팀으로 이원화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확대해 나가야 한다. 대학에서 본부에서 행정업무를 전담하고 교수들은 개별 학과에 소속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초중고 학교에서도 학교의 행정업무는 행정실과 교장, 교감, 교무실무사로 구성된 행정업무팀에서 전담하고, 교사들은 교과별로 구성된 교과교육팀에 배치하자는 것이다.
고교학점제를 위한 교과별 교사 조직
고등학교에서는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 교사의 행정 업무를 배제하고 학교의 조직을 대학처럼 교과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 고교학점제는 말 그대로 교과 중심 학교 시스템이다. 대학처럼 대부분의 교사들을 교과별로 배치해서 고교학점제에서 특히 요구되는 교과 교육과 상담에 전념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사실 교과 전문가인 교사들을 학교에서 행정 부서나 학년 부서가 아니라 전공 교과에 따라 배치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사들은 국어부나 수학부가 아니라 교무부나 연구부 등 행정 부서에 배치되어 행정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교육부의 <고교학점제 운영 안내서>(2024)에서도 행정 중심의 학교 조직을 교육과정 운영 및 진로·학업 설계 지원 중심으로 전환하고, 관련 업무 조직 간의 긴밀한 협업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학교 조직을 교육과정운영 지원팀(교무기획부, 학점제운영부, 생활안전부, 교육정보부), 진로 및 학습관리 지원팀(진로진학부, 1학년부, 2학년부, 3학년부), 교수학습 지원팀(수업혁신부, 인문사회교육부, 자연수리교육부, 예체능교육부)으로 나누는 방안을 예시로 들었다.
교육부는 교육과정 전담 부서 설치를 강조하고 있다. 고교학점제에서는 교육과정 운영을 중심으로 학교 조직이 구성되기 때문에 이를 총괄하는 교육과정 전담 부서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과정 전담부서의 업무로 교육과정 편성 총괄, 교육과정 및 선택과목 연수, 과목 선택 지도,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수요 조사 및 학생 편성, 시간표 작성 지원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교육부에서 예시한 학교 조직은 여전히 교과 중심이 아니라 행정 중심 체제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고교학점제 운영과 관련된 모든 행정업무를 전담하는 별도의 교무행정실무사를 모든 고등학교에 배치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 고교학점제를 실시하는 것인데, 이로 발생하는 행정업무 때문에 교사들의 역량이 소진된다면 오히려 교육의 질이 떨어져서 학생들에게 불이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고교학점제를 내실 있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과목 선택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지원하는 체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학교 조직 체계에서 교육과정부를 신설하고, 진로상담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교사 조직을 대학처럼 교과 중심 체제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현재 학교에서 교과교육과 직접 관련이 있는 부서는 인문사회부, 자연과학부, 예체능부 등에 불과하다. 그래서 고교학점제를 내실 있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국어부, 수학부, 외국어부, 사회부, 과학부, 예체능부 등으로 교과 부서를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교과 부서의 부장들로 ‘교과 교육팀’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교육부가 고교학점제 안내서에서 제시했듯이 학생들의 진로·학업 설계 지도와 교육과정 이수 지도를 총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교육과정 이수 지도팀’을 교과 중심형으로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
고등학교에서 교과 부서가 확대되면 진로·학업 설계와 과목 이수 지도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교과 학습 상담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대학처럼 학생들이 교과 학습에 어려움을 느끼면 언제든 해당 교과 부서로 찾아가서 담당 과목 선생님들과 일상적으로 상담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과 부서에 소속된 교사들에게 행정 업무를 없애 주면, 동일 교과 교사들의 일상적인 교과 협의와 교수학습 자료 공동 개발 등이 가능해져서 학교의 전체적인 교육력도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행정 업무는 실무사들을 확대 배치해서 교장, 교감, 교무실무사들로만 구성된 행정업무팀에서 전담해야 한다. 지금처럼 소수의 실무사가 고교학점제 운영을 비롯한 막대한 학교의 행정업무를 실질적으로 전담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대부분의 교사들을 교과 부서에 배치할 수 있을 정도로 실무사들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교사는 교육자이다. 교사는 말단 행정가가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과 전문가이다. 교과 교육 전문가인 교사들에게 부과된 행정업무를 배제하는 것은 학교를 정상화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교무행정실무사들을 확대 배치할 수 있는 예산을 최우선적으로 확보하기 바란다. 적어도 행정업무에다 교과업무와 담임업무까지 3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교사의 행정업무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교무실무사 배치를 확대해야 한다.
- 이건주 교육평론가/전 한국교총 현장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