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출신 이건주 박사의 서울시교육감 선거 공약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일부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국가교육위원회와 함께 수능시험과 고등학교 내신 절대평가 전환을 최대한 의제화해서 다음 대입 개편 때까지는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진보 교육계에서 줄기차게 주장해 온 절대평가를 이번 정부에서도 어김없이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현행 고등학교 내신 성적은 9등급 상대평가이다. 그런데 2025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치르는 2028학년도 대학입시에서는 5등급 절대평가·상대평가 병기 방식이 적용된다.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실시와 함께 신뢰할 수 있고 교육 혁신에 발맞춘 선진화된 내신 평가를 위해 전 학년에 일관된 5등급 절대평가·상대평가 병기로 성적 부풀리기 안전장치를 마련하여 신뢰성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전 문재인 정부에서 발표했던 고교학점제 계획에서는 1학년 공통과목은 상대평가인 9등급 석차등급제를 유지하되, 2~3학년 선택과목은 모두 절대평가인 5단계 성취평가제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했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1~3학년 모두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를 병기함으로써 사실상 현행처럼 상대평가를 유지하기로 변경하였다. 대신에 교육부는 내신 상대평가 석차등급을 현행 9등급에서 5등급으로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학령인구 감소 상황에서 학생 간 과잉 경쟁을 유발하는 9등급제를 해외 주요국 추세에 맞춰 5등급제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상대평가가 9등급제에서 하한선은 1등급(4%), 2등급(11%), 3등급(23%), 4등급(40%), 5등급(60%), 6등급(77%), 7등급(89%), 8등급(96%), 9등급(100%)이다. 그런데 5등급제로 개편되면, 하한선이 1등급(10%), 2등급(34%), 3등급(66%), 4등급(누적 90%), 5등급(100%)이 된다. 현행 9등급제에서 2등급인 학생들도 5등급제에서는 대부분 1등급이 되는 것이다.
현행 9등급제에서는 4% 이내에 들어야 1등급이 될 수 있으므로 학생들의 내신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그런데 앞으로는 10% 안에만 들면 1등급이 될 수 있으니 최상위권 학생들의 내신 경쟁이 완화된 것은 사실이다. 물론 대학들이 내신 등급이 아니라 석차를 반영한다면 경쟁 완화 효과는 줄어들 것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회·과학 교과의 융합선택과목은 상대평가 석차등급 없이 5등급 절대평가 성취도(A~E)만 기재된다. 교육부는 대입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고교학점제에서의 학생 선택권을 확대하고, 융합학습의 대표 교과인 사회·과학 융합선택과목 활성화를 통해 교과 융합 및 실생활과 연계한 탐구·문제 해결 중심 수업을 내실화하기 위해 절대평가만 기재한다고 밝혔다.
2028학년도 대입에서부터는 사회 교과의 융합 선택인 ‘여행지리’, ‘역사로 탐구하는 현대 세계’, ‘사회문제 탐구’, ‘금융과 경제생활’, ‘윤리문제 탐구’, ‘기후변화와 지속 가능한 세계’ 6과목과 과학 교과의 융합 선택인 ‘과학의 역사와 문화’, ‘기후변화와 환경생태’, ‘융합과학 탐구’ 3과목, 총 9과목은 상대평가 석차등급 없이 절대평가 성취도만 기재된다.
이와 함께 체육·예술 교과(군), 과학탐구실험 과목도 현행처럼 절대평가로 A~C 3등급 성취도만 기재되고, 교양 교과는 P(패스)만 기재한다. 결국 2028 대입에서도 보통교과 가운데 사회·과학 융합 선택과목, 체육·예술/과학탐구실험, 교양 교과(군)은 절대평가만 기재된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내신 절대평가를 언급한 것은 이전 문재인 정부의 고교학점제 계획에서처럼 1학년 공통과목은 상대평가인 9등급 석차등급제를 유지하되, 2~3학년 선택과목을 모두 절대평가인 5단계 성취평가제를 적용하겠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미 김대중 정부에서 2002년부터 수, 우, 미, 양, 가의 5단계 절대평가를 실시했었다. 이전 김영삼 정부 시절 내신이 상대평가 15등급이었기 때문에 총점 위주의 서열화로 지나친 경쟁 위주 입시 풍토를 만든다는 지적이 나오자 5등급 절대평가로 대폭 축소한 것이다.
이로 인해 전국의 거의 모든 고등학교에서 절대평가로 인한 교과성적 부풀리기 문제가 발생했다. 1등급 학생들이 많아져서 대학입시에 유리하도록 시험을 쉽게 출제했던 것이다. 그러자 대학들은 대학입시에서 상위권 변별력이 거의 사라진 교과성적 비중을 대폭 줄이는 대신에 수능성적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내신 경쟁을 줄여 주겠다는 취지로 실시된 내신 절대평가가 결국 교과성적이 사실상 배제된 수능 전성시대를 불러온 것이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는 학교가 수능 대비 입시 학원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국민적 비판이 거세지자 다시 교과성적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9등급 상대평가로 되돌아가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내신 절대평가는 학교를 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성적 부풀리기로 인해 입시에서 사실상 배제됨으로써 학교를 수능이나 논술 학원으로 전락시키는 정책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절대평가 지상주의자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내신 절대평가는 우리 대학입시의 역사에서 내신 부풀리기로 인해 이미 실패한 정책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 교육계에서는 실패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고 여전히 절대평가를 금과옥조인 것처럼 주장해 오고 있다. 최근 서울대 교육학과 한숭희 교수도 어느 칼럼에서 내신 절대평가로의 전환을 주장했다. 그런데 한 교수도 칼럼에 명시했듯이 학교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면, 특목고나 과학고 학생들이 일반고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성적 인플레이션이 과도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교수는 강한 변별력이 필요한 대학들을 위한 보완책으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적용하거나 면접, 논술, 창의성 평가 등을 곁들이는 것을 제시했다.
이렇게 학교 안의 내신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한 절대평가를 보완하려면, 학교 밖의 수능이나 논술 경쟁을 추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신 절대평가+수능/논술’보다는 단일한 ‘내신 상대평가’가 입시 경쟁 완화에도 도움이 되는 정책인 것이 분명하다. 한 교수도 칼럼에서 대학별 논술과 면접이 이미 고액 사교육 시장을 부추기고 있는 등 이들이 초래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고 쓰고 있다.
결국 한 교수는 스스로도 다소 파격적이라고 생각하는 ‘제한적 추첨제’를 제안한다. 대학입시에서 변별의 필요성이 교육적 허용치를 넘을 경우 그 너머까지 무리하게 변별하려고 하지 말고, 동점자 처리 기준으로 활용하는 등 무작위성에 기대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내신 절대평가로 인해 동점자가 늘어나면, 수능이나 논술 경쟁을 추가하지 말고 추첨해서 선발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교수의 말대로 얼핏 말도 안 되는 방식처럼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비현실적이고 지속 불가능한 방식이다. 대학입시 경쟁이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나라에서 대학입시 추첨제를 용인할 학생과 학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취업 경쟁이 심해서 문제라고 해도 신입 사원을 추첨제로 선발하겠다는 회사나 조직도 없을 것이다.
대학입시 경쟁이 존재하는 한 학생들을 등급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재명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말했듯이, 한국 교육 문제의 본질인 과도한 입시 경쟁을 해결할 수 있는 입시제도는 없다. 과도한 입시 경쟁은 대학입시 개편이 아니라,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해결될 수 있다. 갈수록 청년 실업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절대평가와 추첨제가 학생들을 등급의 굴레에서 해방시키기는 어렵다.
대학입시 경쟁이 치열한 우리 현실에서는 공정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정한 변별력을 부정하면서 주관적 정성평가를 확대하여 기득권층의 특권이 개입할 여지를 주거나, 운수나 요행을 도입하는 것은 결국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교육을 가로막는 일일 뿐이다.
세계에서 입시 경쟁이 가장 치열한 한국에서 내신 절대평가는 이론처럼 입시 경쟁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변별력 상실로 인해 내신 성적이 사실상 대학입시에서 배제됨으로써 학교를 수능이나 논술 준비 학원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정부가 내신 절대평가를 다시 상대평가로 되돌린 것은 내신 절대평가로 인한 성적 부풀리기를 막을 방법이 없고, 이로 인해 학교가 수능이나 논술 준비 학원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교사 출신인 최교진 교육부장관은 또다시 입시 문제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고, 내신 절대평가로 인한 성적 부풀리기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부터 제시하기 바란다. 교사 출신 교육부장관으로서 현장 경험이 없는 교수들이 주장하는 추첨제가 아니라, 실현 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대책을 마련한 후에 절대평가 전환을 추진하길 기대한다.
내신 절대평가와 성적 부풀리기
지난 2024년에 방영된 MBC 교육대기획 「교실이데아」에서는 국제바칼로레아(IB)를 소개하면서,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상대평가를 협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는 절대평가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고교학점제 시행의 선결 조건으로 내신 절대평가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학생 간 서열을 매기는 상대평가가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미래 인재가 갖추어야 할 상호 협력과 소통 능력, 공동체 역량 등을 기르기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만약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입시로 연결되지 않고 그 자체로 완결된다면, 굳이 학생들의 서열을 매기지 않고 학생 개인의 성취도를 평가하는 절대평가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대학입시 경쟁이 치열한 현실에서 상대평가를 모두 절대평가로 바꾸기만 하면 과연 ‘교실이데아’를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절대평가가 모든 교육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듯이 강조하는 절대평가주의자들은 교과성적을 상대평가 방식으로 산출하면 교사들이 학생들의 서열을 정하기 위해 암기 위주의 지필평가를 중심으로 수업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상대평가 방식은 지필평가만 가능하고 실험, 탐구활동 등의 수행평가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상대평가나 절대평가는 학생들을 평가하는 방식이지 수업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도 학교에서 교사들은 상대평가든 절대평가든 상관없이 지필평가와 함께 실험, 탐구활동 등의 수행평가 등을 대부분 실시하고 있다. 이렇게 산출된 점수를 석차 등급으로 나누면 상대평가인 것이고, 정해진 성취수준이나 점수에 도달하는 학생들에게 동일한 등급을 부여하면 절대평가인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절대평가로 인한 내신 부풀리기를 막지 못한다면 사실상 내신 성적이 대학입시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수능 전성시대나 논술 전성시대처럼 학교를 외부 입시 준비 기관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과거처럼 학교 수업 시간에 수능이나 논술 문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말이다.
상대평가는 석차에 따라 1등급이 결정되지만, 절대평가는 성취수준을 과목별로 교과 교사들이 정하기 때문에 대학입시에 유리하도록 1등급이 많이 나올 수 있게 조정할 수 있다. 그래서 대학입시 경쟁이 어느 나라보다 치열한 한국에서 내신 절대평가는 성적 부풀리기로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학교알리미 정보공시 등 학교 평가에 대한 모니터링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었다. 시·도 단위에서는 학교별 평가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중앙 단위에서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중심으로 현황 분석 등 성취평가 관리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대책으로 성적 부풀리기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사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절대평가 성취평가제에서는 학생들의 성취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권한이 전적으로 교사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교사들이 성적 부풀리기 지적을 받는다고 해도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A등급의 성취수준을 보인 것이지 성적 부풀리기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항변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국가교육위원회의 국민참여위원회 토론회(2024)에서도 현행 절대평가+상대평가 등급 병기 방식에 대한 찬성률이 38%로 가장 높았다. 내신 절대평가를 실시하되, 학교별 내신평가 과정 및 결과에 대한 교사평가단의 모니터링으로 성적 부풀리기를 막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찬성률이 25%에 그쳤다. 이것은 교사평가단 평가를 새롭게 준비·실행해야 하는 교사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교사평가단 평가로 절대평가로 인한 성적 부풀리기를 제대로 견제하기가 어렵다는 한계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나마 성적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지역별 관련 기관이 주관하는 지필평가 점수를 내신 성적에 부분적으로 반영하자는 외부 기관 지필고사 방식에 대한 찬성률은 37%로 높게 나타났다. 절대평가로 인한 내신 부풀리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외부 기관 지필고사 성적을 함께 반영하는 것이 거의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수능처럼 학교 외부 기관에서 시험을 출제하면 객관성 확보가 가능하고, 지역에 따른 유불리 문제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외부 기관 지필고사를 반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학교마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가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외부 기관 지필고사의 공통 범위조차 제대로 결정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 모든 고등학교에서 국정교과서 하나만 배우던 학력고사 시절에나 가능한 일이다.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이 학교 내신과 외부 지필고사를 모두 준비해야 하므로 시험 부담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의 입시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서 절대평가로 개편하면서도 내신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외부 시험을 추가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냥 현행처럼 상대평가를 유지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절대평가로 인한 고등학교의 성적 부풀리기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한숭희 교수가 칼럼에서 추첨제를 제안한 것도 절대평가로 인해 성적 부풀리기가 불가피하고, 이에 따라 늘어나는 동점자를 처리하기 위해서 수능이나 면접/논술을 추가하면 오히려 입시 경쟁이 더 심해지므로 추점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내신 절대평가를 주장하는 한 교수도 성적 부풀리기를 막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총이 교원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2025.6.12.~17)에서도 내신 절대평가 확대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절대평가 성취평가제 확대로 인해 ‘고교 서열화 심화, 대입에서의 내신 무력화 등 부작용이 명확히 예상되므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47.7%로, ‘고교학점제 취지를 살리려면 적극 확대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의견 20.5%보다 훨씬 높았던 것이다.
절대평가 방식은 이미 대학에서도 성적 부풀리기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주요 대학들의 A학점 비율이 50%를 훌쩍 넘는다고 한다. 가장 높은 대학은 A학점 비율이 60%나 된다. 대학들이 취업을 위해 절반이 넘는 학생들에게 A학점을 주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는 입시를 위해서, 그리고 대학에서는 취업을 위해서 성적 부풀리기가 발생하고 있는 한국 현실에서 절대평가는 이미 공정하고 변별력 있는 평가 도구로서의 역할을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평가가 고교학점제의 성공은 물론이고 ‘교실 이데아’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은 원론적인 당위만 내세우지 말고, 내신 부풀리기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하기 바란다. 대학입시에서 내신성적이 배제되지 않을 정도로 학교 현장에서 절대평가로 인한 내신 부풀리기를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다면 정부도 굳이 상대평가를 고집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일반고 학생들에게 불리한 내신 절대평가
고등학교에서 절대평가가 확대되면, 일반고 학생들에게 유리한 수시 학생부 교과전형이 사라짐으로써 일반고 슬럼화가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2019)에 따라 수도권 대학들은 정원의 10% 이상을 내신성적 중심의 학생부교과 방식인 지역균형(학교추천)전형으로 선발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수시 학생부전형에서는 ‘일반고는 교과, 특목자사고는 종합’이라는 공식이 작동하고 있다. 교과성적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일반고 학생들은 학생부교과에 주로 지원하는 반면에 생활기록부 자료가 상대적으로 우수한 특목자사고 학생들은 주로 종합전형에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과성적이 절대평가로 개편되면 내신 부풀리기로 인해 변별력이 현저히 약화되기 때문에 교과성적 중심으로 선발하는 학생부교과에서 수많은 동점자를 처리할 수가 없게 된다. 현재 고려대 등이 진로 선택과목에서 실시하고 있는 것처럼 성취도 등급별 분포를 반영해서 환산한다고 해도 당락을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변별력을 갖추기는 어렵다. 상대적 서열화를 막기 위해 절대평가를 실시하면서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굳이 복잡한 계산으로 환산점수를 부여하는 것은 취지에 어울리지도 않는 편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재 일반고 학생들이 수도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주요 통로인 학생부 교과전형이 절대평가로 인해 폐지될지도 모른다.
교과성적이 절대평가로 개편되면, 대학에서는 변별력이 부족한 교과성적을 보완하기 위해 교과전형에서도 종합전형과 유사하게 학생부 서류에 대한 주관적 정성평가나 면접고사를 추가할 가능성이 높다. 2028학년도 대입에서 내신이 상대평가 9등급에서 5등급으로 개편되는 것에 대비해서 이미 수시 학생부교과에서도 학종처럼 서류평가를 반영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5등급 절대평가가 확대된다면, 무늬만 교과전형이지 종합전형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사실상 교과전형을 폐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대학입시에서 일반고 학생들이 불리해지면, 특목고나 자사고에 들어가려는 고교 입시 열풍이 다시 불어닥칠 가능성도 매우 높다. 특목고와 자사고는 선발된 학생들 사이에 성적대가 비슷하고 내부 경쟁이 대단히 치열하기 때문에 일반고에 비해 교과성적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교과성적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대학입시에서 특목자사고의 교과성적 불리함이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절대평가에서는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모두 A등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상대평가에서 6~7등급인 특목자사고 학생들도 절대평가에서는 모두 A등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서울 주요 대학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선발하는 수시 학종에서는 개인의 교과성적보다 출신학교의 교육과정이나 프로그램 등을 중요하게 평가할 수 있으므로 특목자사고 학생들이 일반고보다 유리하다. 여기에 내신 절대평가가 확대되어 내신성적도 일반고에 비해 불리하지 않게 되고, 수시 학생부 교과전형이 종합전형처럼 운영된다면, 그동안 내신성적의 불리함으로 인해 합격이 어려웠던 학생부교과에도 지원할 수가 있게 되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결국 학생들의 내신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서 절대평가로 개편하면, 서울 주요 대학입시의 전초전인 특목자사고 입시 경쟁이 과열될 것이 틀림없다. 내신 절대평가가 고교 서열화를 강화하여 대학입시 경쟁을 중학교 단계로 확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고등학교에서 절대평가가 확대되면, 대학에서는 변별력이 부족한 교과성적을 보완하기 위해 내신 성적 중심으로 선발하는 수시 학생부 전형에서 수능이나 면접/논술을 강화할 가능성도 크다. 지금까지 학생부 교과전형에서는 수능최저를 반영하고, 종합전형에서는 면접을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절대평가가 확대되면 교과든 종합이든 내신 성적의 변별력을 보완하기 위해 수능과 면접을 모두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 내신 절대평가가 학생들의 입시 부담을 줄여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별력을 이유로 수능이나 면접/논술 부담을 늘려서 학생들을 내신+수능+면접 삼중고에 시달리게 만드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다시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한국교총 설문조사(2025.6.12~17)에서도 대학입시에서 내신·수능·학생부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 ‘모든 전형에 집중해서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학생 부담이 과도하다.’라는 의견이 45.9%로, ‘학교생활에 대한 과정과 성적, 공신력 있는 평가 결과를 두루 참고하는 것으로 바람직하다.’라는 의견 38.0%보다 더 많았다.
고교학점제와 내신 절대평가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운영 개선 대책(안)'(2025)에서 고교 내신 평가 방식, 과목 선택을 위한 정보 부족 등으로 학생들이 진로‧적성보다 성적 유‧불리를 중심으로 과목을 선택하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리고 당초 공통과목은 상대평가 9등급을, 선택과목은 절대평가를 적용할 예정(‘21.2.)이었으나, 대부분의 과목에 절대 및 상대평가를 병기하는 것으로 변경(‘23.12.)되었다고 설명했다.
내신 절대평가의 여러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고교학점제에서 절대평가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내세우는 이유가 과목 선택권 보장이다. 학생들이 대학입시에 유리한 과목으로 몰리는 부작용을 막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하려면 내신을 절대평가로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고교학점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절대평가를 실시해야 한다는 모순된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취업이 기본 목적인 특성화고라면 몰라도 대학 진학이 기본 목적인 일반고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할 때 흥미와 적성, 진로만이 아니라 대학입시를 고려하는 것이 이상하거나 나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일반고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할 때 대학입시 유불리를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평생 자신의 진로가 결정되는 대학이나 학과를 결정할 때도 지원 가능한 성적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과목을 선택할 때도 자신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지를 고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도 학생들은 흥미와 적성, 진로, 대학입시, 교사 등 다양한 고려 요소들을 종합해서 자신의 과목을 선택하고 있다. 어떤 학생들은 대학입시에 유리한 과목만 찾아서 선택하는 반면에 어떤 학생들은 대학입시에 불리해도 희망하는 진로를 위해 선택할 수도 있다. 어떤 학생들은 단순히 흥미와 적성에 따라 선택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을 따라서 선택하기도 할 것이다. 학생들에게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지,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신을 절대평가로 개편하면 학생들이 대학입시가 아니라, 자신의 흥미와 진로에 따라 선택할 것이라는 가정도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내신을 절대평가로 개편하는 것이 학생들의 과목 선택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소위 '사탐런', 즉 과학탐구보다는 상대적으로 쉽다고 생각하는 사회탐구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대폭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 보여주듯이 실제로 고등학생들의 과목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과목의 난이도이다. 가령 학생들이 어려워서 기피하는 물리 과목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개편한다고 해서 물리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대폭 늘어날 리가 없다는 말이다.
내신 성적이 아예 입시에 반영되지 않으면, 학생들이 흥미와 적성에 맞게 선택해서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는 주장도 학교 현장을 모르는 소리이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은 지금 3단계 절대평가로 실시되는 진로 선택과목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현행 수시 학생부전형에서는 변별력이 거의 없는 진로 선택과목을 반영하지 않는 대학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학생들이 진로 선택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하지만, 대부분 그 시간에 다른 과목을 공부하거나, 잠을 자면서 쉬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학교 현장의 현실이다.
이번 교육부 발표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1학년 공통과목은 상대평가로, 2~3학년 선택과목은 모두 절대평가로 실시하는 것은 학생의 선택권을 오히려 무력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2~3학년 선택과목 시간에도 입시에서 당락을 좌우하는 1학년 공통과목을 혼자 공부하거나, 잠을 자면서 쉬려는 학생들이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희망하는 대학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학생들은 절대평가라서 변별력이 없는 선택과목보다 대학입시에서 변별력이 있는 1학년 공통과목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만약 1학년 공통과목만 상대평가로 실시하면, 1학년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의 대거 자퇴 사태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대학입시에서 1학년 공통과목 성적이 당락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수시에 지원하기 어렵게 된 학생들이 수능 역전을 위해 1학년 겨울방학부터 수능 전문 학원을 찾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에서 내신 절대평가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신 절대평가는 학생의 선택권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도 못하면서, 성적 부풀리기나 일반고 슬럼화 등 다양한 문제들을 양산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
이런 위험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비현실적인 진단으로 섣불리 절대평가를 확대하면 교육적 혼란만 키우다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 이건주 교육평론가/전 한국교총 현장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