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의 공정하고 내실 있는 수행평가

by 이건주
교사 출신 이건주 박사의 서울시교육감 선거 공약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일부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최근 교육부는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이고 수행평가의 취지를 보다 잘 살릴 수 있도록, 수행평가 운영 방식을 올해 2학기부터 개선해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수행평가는 암기 위주의 지필평가 한계를 극복하고 학생의 전인적 성장과 고차원적 사고 능력 발달을 지원하기 위해 1999년 처음 도입되었다. 그러나 최근 수행평가의 시행 횟수가 많거나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등 학습 부담을 우려하는 현장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교육부는 수행평가의 본래 취지를 회복하고 학생들의 과도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모든 수행평가는 수업 시간 내에 이루어진다는 원칙을 철저히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학교는 자체 점검표를 활용해 학습 부담 유발 요인을 스스로 개선하고, 시·도교육청은 매 학기 시작 전 모든 학교의 평가 계획을 면밀히 점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부모의 도움 등 외부 요인의 개입 가능성이 높은 ‘과제형 수행평가’와 ‘과도한 준비가 필요한 암기식 수행평가’ 등 수행평가 원칙에서 벗어난 평가가 운영되지 않도록 한다.


또한 교육부는 수행평가 운영에 대한 현장 안내를 실시한다. 7~8월 중 시·도교육청별로 학교 관리자와 평가 담당자를 대상으로 수행평가의 도입 취지, 평가 운영 관련 규정과 유의 사항 등을 안내한다. 그리고 시·도교육청과의 협의를 통해 수행평가 운영 과정에서 나타나는 어려움과 개선 요구를 면밀히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관련 지침을 개정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학교 현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완화하고 평가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유도해 나가고자 한다.


고등학교의 경우 교과 학습의 평가는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로 구분되어 실시된다. 지필평가와 수행평가의 실시 비율 등 평가의 세부적인 사항은 학교에서 ‘학업성적관리규정’으로 정한다. 다만 교과목의 특성상 필요한 경우 ‘학업성적관리규정’으로 정하여 지필평가 없이도 수행평가만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감염병의 전국적 유행 등 국가 재난에 준하는 상황에서는 지필평가 또는 수행평가 어느 하나만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수행평가는 교과 담당 교사가 수업 시간에 학습자의 과제 수행 과정과 결과를 직접 관찰·판단하는 평가 방식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를 학기 성적의 40% 이상 반영하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2단위 이하의 과목은 20% 이상을 권장한다. 고3의 경우에도 지필 100%는 금지되어 있다. 이는 과정 중심 평가를 강화하려는 취지이지만, 실제 고등학교 현장에서는 수행평가가 수시 학생부 전형 내신 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므로 학생들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과제형 수행평가’가 사교육과 표절 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에 따라, 정규 수업 외 제작물 제출을 금지하고, 모든 수행평가는 수업 시간 내 성취 기준에 맞춰 실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기말고사 직후 대부분의 수행평가가 몰리다 보면, 하루 수업 시간 내내 수행평가만 하다가 보내는 날도 생길 수 있다.


수행평가가 주로 서논술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채점 공정성 논란이 자주 발생하는 것도 문제다. 1점이라도 감점된 학생들의 경우 채점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핑계를 대며 학부모까지 동원해 계속 항의하기 때문에 변별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시간을 많이 들여 열심히 준비한 학생들 가운데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변별력도 없이 입시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사들은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의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에 기재해 주기 위해 수행평가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과목마다 교사들은 학생 개인별로 특기사항을 적어야 하는데, 수행평가를 하지 않고 평소 수업 활동만으로 이를 채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지필평가를 어렵게 출제해서 변별력을 높이고, 수행평가는 감점을 거의 하지 않고, 세특에 기재하기 위한 내용으로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은 학생의 전인적 성장과 고차원적 사고 능력의 발달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된 수행평가를 정작 학생들이 거부하는 형국이다. 이것은 수행평가가 수시 학생부 전형에서 당락을 좌우하는 내신 성적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지와 달리 수행평가가 고등학생들의 입시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행평가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수행평가를 내신 성적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부담 없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학입시에 반영되지도 않는 평가를, 당장 입시 준비에 바쁜 학생들이 교육적인 가치가 있다고 해서 열심히 준비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비상식적이다.


수행평가를 아예 폐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수행평가는 교사 고유의 평가권인데, 외부에서 이를 함부로 박탈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수행평가를 없애면 수시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매우 중요하게 반영되는 세특을 기재하기가 너무 어려워진다. 더구나 대학입시와 다소 거리가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단계에서는 폐지가 아니라, 학생의 전인적 성장과 고차원적 사고 능력의 발달을 지원할 수 있도록 수행평가를 내실 있게 운영하면 될 것이다.


현행처럼 수행평가를 실시하되, 이로 인한 학생들의 과도한 입시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서는 수행평가 비중을 교육청에서 일방적으로 정할 것이 아니라,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개편할 필요가 있다. 가령 수행평가를 중시하는 교사는 최대 100%까지 실시하되, 이에 반대하는 교사는 아예 수행평가를 실시하지 않아도 되도록 바꾸자는 것이다. 이것은 ‘권장’이라는 형식으로 교육청이 사실상 박탈하고 있는 교사 고유의 평가권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교사는 교과 전문가로서 과목의 성격과 자신의 교육관에 따라 지필평가와 수행평가의 비율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고등학교에서 수행평가 문제는 우리 교육이 추구하는 가치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대학입시 제도와도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교육부는 수행평가의 교육적 가치와 교사의 평가권, 그리고 과도한 입시 부담이라는 현실적 문제점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학생과 교사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공정하고 부담 없이 실시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 이건주 교육평론가/전 한국교총 현장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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