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나는 공정한 대학입시

by 이건주
교사 출신 이건주 박사의 서울시교육감 선거 공약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일부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개천에서 용 나는 학교를 만들려면 대학입시를 공정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학입시가 부모 찬스나 출신 학교 등 기득권층의 특권을 대물림하는 도구로 전락한다면, 학교에서 교사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개천에서 용이 나오게 만들 수 없게 된다. 가난해도 열심히 공부하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공정한 대학입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입시 경쟁이 치열한 한국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을 정도로 공정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대학입시 폐지와 추첨제는 공정한가


미국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2020)에서 ‘유능력자 추첨제’를 제안했다. 샌델은 미국의 능력주의 시스템이 “기회의 엔진”이 아니라 상류층이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와 같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대학입시는 불공정한 우대 정책들로 인해 고등교육이 사회적 이동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득권층 부모가 자녀에게 특권을 물려줄 기회만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많은 대학들이 지원자의 학업 성적이나 잠재력과 무관하게 기부금을 많이 낸 졸업생의 자녀나 친척에게 가산점을 주는 ‘레거시(Legacy) 입학제도’나 체육 특기생 선발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서 불공정하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샌델의 눈으로 보면, 한국은 이미 모범적인 능력주의 시스템을 실시하고 있는 교육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기부금 입학제는 본고사, 고교등급제와 함께 ‘3불 정책’의 하나로 오래전부터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샌델은 대학입시의 공정성을 높이는 방안과 함께 ‘유능력자 추첨제’를 제시했다. 만약 지원자가 40,000명이라면 이 가운데 하버드나 스탠퍼드에 다니기 힘들어 보이거나 동료 학생들과 잘 지내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일부를 솎아낸다. 그러면 20,000~30,000명의 지원자가 남는다. 이 단계에서 그들을 대상으로 어렵고 불확실한 선별 작업을 하지 않고 제비뽑기(추첨)로 최종 합격자를 뽑는 방식이다. ‘유능력자 추첨제’는 무조건 추첨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자들 가운데 일정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추첨하는 것이므로 능력주의 경쟁 시스템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한숭희 교수도 어느 칼럼에서 제한적 추첨제를 제시했다. 대학입시에서 변별의 필요성이 교육적 허용치를 넘을 경우 그 너머까지 무리하게 변별하려고 하지 말고, 동점자 처리 기준으로 활용하는 등 무작위성에 기대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내신 절대평가로 인해 동점자가 늘어나면, 수능이나 논술 경쟁을 추가하지 말고 추첨해서 선발하자는 것이다.


김누리 교수는 아예 대학입시를 폐지하고 추첨제로 선발할 것을 제안해 왔다. 독일은 90% 이상 합격하는 고등학교 졸업시험인 아비투어만 합격하면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를 원하는 때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 학생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진학 학교(Gymnasium)와 직업 학교(Realschule)로 분리되어 대학입시 경쟁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그래서 세계에서 입시 경쟁이 가장 치열한 한국에서 독일처럼 추첨제를 실시하자는 주장은 비상식적이다.


김 교수는 프랑스도 바칼로레아라는 고등학교 졸업시험이자 대학 입학 자격시험만 본다면서, 한국처럼 대학 서열화가 있는 나라는 주로 영미권 국가들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교수의 말과 달리 프랑스는 일반 공립 대학교(Université)와 각 분야의 최고위직 인사들을 배출해 온 그랑제콜(Grandes Écoles)로 구분되어 있다. 그랑제콜은 바칼로레아 합격자 가운데 2년의 ‘그랑제콜 준비반’ 교육과정을 추가로 수료해야 입학할 수 있고, 소수정예 경쟁 선발을 통한 우수 인재 육성 과정을 지향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추첨제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공정한 시스템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개인 간 능력의 차이를 전적으로 부정하면서 운에 따라 추첨 선발하는 것이, 개인의 능력에 따라 선발하는 입학시험보다 공정할 수가 없다. 물론 고등학교 시험과 수능시험, 대학고사 등에서 가정환경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적 요소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현행 대학 입학시험 제도가 절대적으로 공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운수나 요행에 좌우되는 추첨제는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보장하지 못하고, 추첨 과정에서 조작될 위험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점수가 낮은데도 운 좋게 합격한 소수는 환영하겠지만, 점수가 높은데도 운이 나빠 불합격한 다수가 이를 용인할 리 없다.


대학입시만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시험에서도 추첨제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삼성이나 현대 등 대기업에서 공개채용 시험이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고 불평등을 합리화한다는 이유로 폐지하고, 추첨으로 신입 사원을 선발할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현대 능력주의 시대에 대학입시나 취업 시험에 운수나 요행을 도입하는 것은 건강한 해법일지는 몰라도 공정한 해법은 아니다.


대학입시 폐지와 추첨제는 학생들의 학력을 저하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AI 과학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바람직하지도 않다. 물론 과도한 대학입시 경쟁이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경쟁이 사라지면 교육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학교 현실을 모르는 몽상에 가깝다. 대학입시가 폐지되면 입시 부담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교육활동은 물론이고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 자체도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다. 추첨으로 운이 좋으면 대학에 갈 수 있는데, 누가 힘들게 공부하고 이런저런 교육활동에 참여하겠는가.


지난 PISA 2022에서 전체 81개 참여국 가운데 수학·읽기·과학 모두 1위를 차지한 싱가포르는 상위권 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대학입시 경쟁이 초등학교부터 매우 치열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OECD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연구: PISA 2018 상위국 성취 특성 및 교육 맥락 변인과의 관계 분석」(2020)에 따르면, 싱가포르에서 초등학교 졸업시험(PSLE)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중학교의 ‘속성(Express) 과정’에 배정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보통 과정’에 배정되어 ‘보통인문(Normal Academic)’ 또는 ‘보통기술(Normal Technical)’ 과정 가운데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속성 과정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 경쟁이 치열하다.


싱가포르는 중학생 가운데 중등학교 졸업시험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예비대학(Junior College)에 진학하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전문대학(Polytechnics)으로 진학한다. 대부분의 학생이 한국의 일반계 고등학교와 유사한 예비대학에 입학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고등학교 입시가 대학입시보다 더 치열하다. 한국에서는 과도한 대학입시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이미 오래전에 소수 국제중학교를 제외하고는 중학교 입시를 폐지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입시도 일부 특목고와 자사고만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대학입시까지 폐지한다면,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학입시 자율화는 공정한가


대학입시는 말 그대로 대학에서 신입생을 선발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학생부와 수능시험을 아예 폐지하고 본고사 시절처럼 대학별고사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거나, 학생부와 수능 반영 비율 등을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대학입시 자율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국에서 대학 본고사는 이미 이승만 정부부터 실시되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은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미국의 고등교육 모델에 따라 대학별 단독 시험제인 본고사를 시행했다. 입시 관리는 형식적으로 국가가 관장했지만, 입시 주체는 정부의 별다른 규제 없이 각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대학에 위임되었다.


당시에 대학에서 입시를 전적으로 관리하다 보니 부정 입학이 가장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래서 이승만 정부는 대학입시 자율화로 인해 발생한 무자격자의 부정 입학과 정원 외 초과 모집으로 인한 고등교육의 질적 저하를 막기 위해 1954년에 국가고사인 ‘대학입학 연합고사’를 도입했다. 당시 연합고사는 합격자만 본고사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예비고사로서 정원의 140%를 선발했다. 그리고 합격자들의 본고사 점수와 합산한 총점수에 의해 당락을 결정했다. 하지만 시험 문제가 유출되고 탈락자의 항의가 빗발치자 시행 1년 만에 폐지돼 다시 본고사로 돌아갔다.


이후 박정희 정부도 초기에는 본고사 체제를 유지했다가 1962년부터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사’를 실시해서 ‘예비고사+본고사’ 체제를 수립했다. 문제는 당시 본고사가 국·수·영 중심으로 지나치게 난해한 주관식 서논술형 문항으로 출제되어 ‘과외망국론’이 등장할 정도로 과열 과외 열풍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더구나 1973학년도 대입에서는 예비고사 성적도 본고사 성적과 함께 반영되자 고등학생의 입시 부담이 이전보다 배로 늘어나 ‘고3병’이 사회적 문제로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후 전두환 정부는 1980년에 과외 금지와 대학별 본고사 폐지를 골자로 하는 ‘7·30 교육개혁 조치’를 발표했다. 기존 대학별 본고사 체제에서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보다 대학별로 다른 입시를 준비해 주는 ‘맞춤 학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전두환 정부의 본고사 폐지와 김대중 정부의 본고사 금지 조치는 학교 정상화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대학별 본고사 폐지 이후 대학입시 자율화는 사실상 사라지고, 국가의 수능시험과 고등학교의 내신 성적이 대학입시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대학별고사는 논술과 면접고사 형태로 제한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 대학입시 자율화를 이유로 본고사를 부활시킨다면, 과거처럼 사교육비 폭증과 학교의 입시 학원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대학입시 자율화는 주로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확대 주장으로 나타난다. 대학입시 자율화는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2008년부터 실시한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 수시 학종으로 대폭 확대된 입학사정관제 형태로 다시 부활했다고 볼 수 있다. 수시 학종은 고등학교의 학생부를 중심으로 선발하는 것이지만, 대학 자체의 입학사정관들이 자율적으로 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입시 자율화는 본고사 폐지와 함께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가 수시 학종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하지만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과 조국 가족 입시 부정 사건 이후, 수시 학종은 공정성을 요구하는 국민을 더 이상 설득하기 어렵게 되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2018년에 실시했던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에서는 시민참여단 가운데 공정하고 투명한 입시제도가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학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 입시제도, 다양한 적성 개발에 부합하는 입시제도,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입시 제도 순으로 나타났다. 대학의 특성을 반영하는 입시제도의 중요도는 가장 낮게 나타났다. 따라서 본고사 부활이든 수시 학종 확대 등 대학입시 자율화를 요구하는 것은 공정한 입시를 바라는 국민들을 설득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대학입시 자율화가 기여입학제나 고교등급제까지 허용하자는 주장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동안 K-대학입시는 학교를 대학별 맞춤형 입시 학원으로 만들었던 대학 본고사를 금지함으로써 학교의 일상적인 교육활동을 입시로부터 그나마 보호할 수 있었다. 출신 고등학교의 등급을 대학입시에서 반영하는 고교등급제의 금지도, 개인적 능력 중심의 공정한 입시를 보장하는 핵심 장치로 작동해 왔다. 그리고 대학에 일정한 기부금을 주고 특례 입학을 하는 기여입학제의 금지도 입시에서 교육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그동안 3불 정책 덕분에 K-대학입시는 부모의 권력이나 재력, 그리고 학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이든 대기업 회장이든 서울대 교수든, 자녀를 서울대에 보내려면 모두 평등하고 공정한 선발 경쟁 시스템을 거쳐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미 수시 학종으로 인해 고교등급제 금지가 사실상 무너진 상황에서, 대학입시 자율화를 이유로 학종을 더욱 확대하고 본고사까지 허용한다면 입시의 공정성과 학교 정상화 모두 사라질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입시 전쟁터에서 대학입시 자율화는 시기상조다. 지금은 학교 정상화를 위한 고등학교 학생부, 대학 선발권을 위한 대학의 논술·면접, 공정한 변별력을 위한 국가의 수능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적 입시 시스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AI 혁명 시대에 더욱 심화되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를 완화하고, 개천에서 용 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정한 대학입시 제도가 필수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입시 경쟁이 치열한 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에 운수나 요행이 작용하는 추첨제를 도입하거나, 기득권층의 특권이 직접 개입할 수 있도록 자율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 이건주 교육평론가/전 한국교총 현장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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