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부정 사건과 수시 공정성 강화

by 이건주
교사 출신 이건주 박사의 서울시교육감 선거 공약입니다. 출간 예정인 신간 도서의 일부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한국의 대학입시에서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공정성 문제는 지난 노무현 정부가 주관적 정성평가인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해 이명박 정부에서 실시하고, 박근혜 정부가 수시 학종으로 확대한 이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미 EBS는 다큐프라임 <대학입시의 진실>(2017)에서 학생부 중심의 수시가 청소년들 스스로의 힘으로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계층 고착화와 그나마 있는 기회조차 날려버리는 ‘사다리 걷어차기’의 닫힌 통과의례라고 비판했다.


EBS 방송에서는 수시 학종이 교과 영역뿐 아니라 비교과 영역에서 학생의 다양한 재능과 잠재력을 두루 평가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도입 배경과 달리 학생의 노력과 능력에 근거한 공정한 전형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역·빈부·부모의 직업에 따라 교육 격차가 발생하며, 실제 능력보다 부풀린 항목 등 평가자의 주관성이 좌우하는 불공정한 경쟁 시스템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이 터지고, 이를 모티브로 제작된 드라마 <SKY 캐슬>이 인기리에 방송되었다. 그래서 당시 서울의 주요 대학에서 80%를 넘게 차지하고 있었던 수시 학종은 국민들 사이에서 불공정한 입시의 상징으로 각인되고 말았다. 오지선다 선택형인 수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수시 학종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드라마 <SKY 캐슬>과 시험지 유출 사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드라마 <SKY 캐슬>은 당시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교육 드라마로서 국민적 인기를 얻었다. 특히 2019년 1월 방영된 <SKY 캐슬> 16회에서는 주인공 강예서 학생이 그동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충격적인 이유가 밝혀졌다. 코디네이터 김주영이 학교에서 시험 문제를 사전 유출해 학생에게 제공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당시 국민적 관심이 매우 컸던 숙명여고 답안지 유출 사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이 사건은 2018년에 숙명여고 교무부장이던 아버지가 숙명여고에 재학 중이던 쌍둥이 자매에게 시험지와 답안지를 시험 전에 미리 유출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다. 결국 교무부장 아버지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되어 복역한 후 2021년 11월에 만기 출소했다.


이 교사 가족의 비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숙명여고에 재학 중이던 쌍둥이 자매에게까지 이어졌다. 쌍둥이 자매는 2018년 10월 곧바로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도 넘겨졌다. 애초에 검찰은 아버지를 구속 기소하면서 쌍둥이 자매는 미성년자인 점을 고려해 소년보호 사건으로 송치했다. 그러나 심리를 맡은 서울가정법원에서 형사재판 진행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사건을 돌려보내자, 검찰이 불구속 기소한 것이다.


이후 2020년 8월 12일 서울중앙지법은 쌍둥이 딸들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240시간을 선고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1심 재판부는 투명하게 처리되어야 할 고교 내부 시험을 방해해 공정한 경쟁을 훼손하고 공교육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질타했다.


이후 2022년 1월 2심 재판에서도 서울중앙지법은 다소 낮아지기는 했지만 쌍둥이 자매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쌍둥이 자매 측은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2심 재판부도 피고인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한 같은 학년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것은 물론, 공교육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고도 정당하게 성적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뉘우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사건으로 아버지가 징역 3년을 선고받아 복역했고, 범행 당시 고교 1∼2학년이었던 피고인들이 숙명여고에서 퇴학 처분을 받은 점, 형사처벌과 별개로 국민적 비난과 지탄을 받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감형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2024년에 대법원은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쌍둥이 자매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입장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재판까지 받는 일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문제를 유출한 교무부장 아버지를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미성년자인 고교생 딸들까지 기소하고 재판을 받게 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국 가족 입시부정 사건


수시 학종이 전 국민적 논란의 한복판에 세워진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의 입시부정 사건이다. 지난 2022년 1월 대법원은 업무방해와 사문서 위조,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국 전 장관의 아내 정경심 교수에 대해 징역 4년에 벌금 5천만 원의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1·2심과 마찬가지로 조국 가족의 소위 ‘7대 스펙’을 위조 또는 허위로 판단해서 자녀 입시 비리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조국 사태는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2019년 8월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사모펀드 투자와 딸 표창장 위조 논란 등 조국 일가를 둘러싼 의혹이 연이어 불거지자 그해 8월부터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검찰은 2019년 9월 6일 인사청문회 당일, 공소시효 만료 1시간을 앞두고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를 전격 기소했다. 이후 2020년 1심 재판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정 교수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징역 4년, 벌금 5억 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단국대 의과학연구소 인턴 및 체험활동 확인서, 동양대 총장 표창장, 공주대 생명공학연구소 인턴 및 체험활동 확인서,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및 확인서, 부산 아쿠아펠리스호텔 실습 수료증 및 인턴 확인서, KIST 분자인식연구센터 인턴 확인서, 동양대 보조연구원 연구활동 확인서 등 7대 스펙 모두가 위조됐거나 허위로 쓰인 내용이라고 판결했다.


이후 2021년 2심 재판에서도 서울고등법원은 정 교수에게 징역 4년, 벌금 5천만 원을 선고했다. 결국 2022년에 대법원은 정 교수에 대해 징역 4년에 벌금 5천만 원의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1·2심과 마찬가지로 조국 가족의 소위 ‘7대 스펙’을 위조 또는 허위로 판단해 자녀 입시 비리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한 것이다.


자녀 입시 비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장관도 2024년 대법원 판결로 징역 2년이 확정되었다. 조 장관은 딸의 서울대 의전원 입시에 허위 인턴 확인서를 제출하는 등 13개 혐의로 2019년 12월 기소됐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조 장관의 혐의 중 8개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 원을 선고했다. 이 중 입시 비리 관련 혐의가 7개인데, 6개가 유죄로 인정되었다.


딸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증명서 위조 혐의, 딸의 부산 아쿠아펠리스호텔 인턴활동 증명서 위조 혐의, 허위로 작성된 아들의 서울대 인턴 증명서와 조지워싱턴대 장학증명서를 고려대·연세대 대학원 입시에 사용해 학교 입학사정업무 담당자들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 아들의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지원서에 허위 경력을 기재한 혐의, 딸의 서울대 의전원 입시 때 위조 문서를 제출한 혐의,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부산대 의전원에 입학한 딸의 장학금 명목으로 당시 부산의료원장에게 600만 원을 받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서 유죄를 인정했다. 결국 대법원에서도 징역 2년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문제는 당시 '조국 수호'를 외치던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학종을 위해 스펙을 위조 또는 허위로 만들어 제출한 사람들이 조국 가족만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재력이나 권력, 학력을 소유한 기득권층 대부분이 자녀 대학입시에서 유리한 스펙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힘을 총동원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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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2012)에서 가난한 나라들이 번영을 누리지 못하는 주된 이유로 “재능과 포부, 독창성, 미미한 수준이나마 그간 받은 교육을 한껏 발휘할 수 없는 사회 여건”을 들었다. “소수 엘리트층”이 대다수 국민을 희생시켜 가며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사회를 조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부유한 나라들은 시민이 권력을 쥔 엘리트층을 무너뜨려 정치 권력을 한층 고르게 분배했고, 시민에 대한 정부의 책임과 의무가 강조되며, “일반 대중이 경제적 기회를 균등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든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지금도 대다수 국민들이 수시 학종 축소, 정시 수능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수시 학종 중심의 대학입시가 기득권층의 특권을 대물림하는 수단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2018년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과 이를 모티브로 방송된 드라마 <SKY 캐슬>, 그리고 2019년 조국 가족 입시부정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수시 학종은 국민들 사이에서 불공정한 입시의 상징으로 각인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의 탄생


문재인 정부는 수시 학종에서 비교과 영역을 대폭 축소하고 대학입시 경쟁이 치열한 서울 16개 대학의 정시 수능 비중을 40%로 확대하는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2019년)을 발표했다. 당시 교육부는 추진 배경으로 대입전형 간 불균형 심화와 학생‧학부모의 지속적 불신을 제시했다.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수시 학종이 학생 본인의 역량이나 노력보다는 출신 고교 유형, 부모 능력 등 외부 환경의 영향력이 크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평가 결과에 대한 불신이 발생하는 등 학종을 불공정한 전형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교육부는 실태조사에서 학종의 불공정 요소를 확인했다고도 밝혔다. 학종 운영 과정에서 고교 프로파일 등을 통해 출신 고교의 영향력이 발생할 수 있고, 입학 사정에서 전형 자료가 10분 내외로 평가되는 등 부실하게 운영된 정황을 확인했으며, 평가 요소 배점 기준 등 평가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입학사정관의 전문성 확보가 미흡한 점 등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부는 과학고 > 외고·국제고 > 자사고 > 일반고 순으로 서열화된 고교 체제가 학종으로 선발한 결과에 그대로 나타났으며, 소득·지역별 격차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수시 학종이 고교 서열화나 소득 격차의 영향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고교 차원에서 대입전형 자료의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서 비교과 활동 반영을 대폭 축소하는 대신 교과 영역을 확대하였다. 수상 경력은 2022~2023학년도에는 교내 수상의 경우 학기당 1건, 3년간 6건만 대입에 반영되지만, 2024학년도부터는 모두 반영되지 않는다. 그리고 독서활동은 현행대로 도서명과 저자만 학생부에 기재되고, 2024학년도부터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다.


학생부에 기재되는 비교과 활동 가운데 자율활동과 담임교사가 작성하는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은 현행 그대로 유지했지만, 다른 활동들은 대폭 축소되었다. 동아리활동 가운데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자율동아리 활동은 2024학년도부터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다. 봉사활동의 경우 특기사항은 2023년도부터 기재되지 않고, 개인봉사활동 실적은 학생부에 기재는 되지만 2024학년도부터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다. 단, 학교교육계획에 따라 교사가 지도한 개인봉사활동 실적은 대입에 반영된다. 그리고 진로활동은 현행대로 유지되지만, 진로희망분야가 2023학년도부터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다. 사교육 등으로 비난 여론이 높았던 소논문은 이미 2022학년도 입시부터 학교생활기록부 기재가 금지되어 있다.


한편 교과활동 가운데 방과후학교 활동 내용은 2023학년도부터 학생부에 기재되지 않고, 영재·발명교육 실적은 2024학년도부터 학생부에 기재되지만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다. 대신 2024학년도부터는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 기재가 과목을 수강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필수화된다. 따라서 앞으로 수시 학종은 비교과 활동 중심에서 교과 세특 중심으로 개편된다고 볼 수 있다.


자기소개서가 아니라 자기소설서 폐지


교육부는 교사추천서를 2022학년도부터 폐지하고, 자기소개서도 2022~2023학년도에는 4개 문항 5,000자에서 3개 문항 3,100자로 축소했다가 2024학년도부터는 아예 폐지하였다. 당시 자기소개서는 사실의 기록보다는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부풀리는 것이 효과를 발휘한다고 여겨져 ‘자기소설서’라고 불리는 등 국민들 사이에서 폐지 여론이 매우 높았다. 더구나 자신의 진로를 완전히 결정하기 어려운 고등학생들이 재학 기간 동안 자신의 진로와 관련해 의미 있는 학습 경험과 교내 활동을 1,500자나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재학 기간 동안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노력한 경험을 가지기 어려운 고등학생들이 이에 대해 800자나 쓴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자기소개서를 그럴듯하게 창작하기 위해 집에서는 온 가족이 총동원되고, 학교마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세세하게 지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들이 쓴 자기소개서를 첨삭 지도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소개서를 아예 대신 써 주는 학원도 있어서 유사도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학생 개인이 아니라 부모나 교사, 입시 전문가들의 개별적인 지도가 불가피한 자기소개서가 수시 합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일이다. 교육 여건상 제대로 된 지도를 받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학생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소개서가 백해무익한 것은 아니다. 객관적 점수 이외에 자신의 장점이나 잠재력 등을 부각할 수 있는 기회를 학생들에게 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음은 분명하다. 대학입시에서 학생 스스로 자신을 설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의 치열한 입시 경쟁 시스템에서는 자기소개서가 남이 대신 써 주는 ‘자기소설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자기소개서가 폐지되어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학생을 평가하기가 어려워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남들이 첨삭 지도해 준 자기소설서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학생부에 기재되어 있는 객관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학생을 평가하고 불확실한 부분이나 검증이 필요한 내용은 대학별 면접을 통해 직접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후에 우리나라가 미국 수준으로 입시 경쟁이 완화된다면 다시 도입할 필요가 있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자기소개서를 폐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당시 교육부가 부모의 특권이나 사교육 기관이 직접 입시에 개입하는 여지를 없애기 위해 교사추천서와 자기소개서를 모두 폐지하고, 학생부에서 비교과 스펙을 대폭 축소하고, 수시 학종을 교과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은 조국 가족 입시부정 사건 등으로 드러난 수시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흑백 요리사와 공정한 정성평가


언젠가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흑백 요리사>의 인기가 뜨거웠었다. 일반 대중에게 친숙한 요리를 소재로 경연을 벌이는 프로그램이라 대중이 쉽게 접근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출연한 셰프들의 음식점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흑백 요리사>는 출신 대학 학벌이나 유명세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재야의 요리 고수들에게 능력에 걸맞은 명예를 부여하는 것은, 공정한 능력주의 사회를 만드는 데에도 아주 좋은 일이다.


하지만 과연 <흑백 요리사>가 공정한 경쟁 방식이고, 신뢰할 만한 평가였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든다. 무명 요리사 ‘흑수저’ 계급 80인과 심사위원 급인 ‘백수저’ 계급 20인의 요리 대결 자체가 상식적인가? 만약 백수저 셰프가 우승한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혹시 흑수저 셰프가 우승한다면 애초에 백수저와 흑수저를 나눈 기준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비판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은가? 흑수저와 백수저로 계급을 나누지 않았다면 몰라도, 일정한 기준으로 나눈 이상 스포츠처럼 같은 체급끼리 대결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은가? 한식·양식·일식·중식 등 자신만의 전문 분야가 있는 셰프들을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가? 더구나 심사위원 급인 백수저 셰프들을 평가할 만큼 월등한 요리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가 어려운 외식사업 대표를 포함한 단 두 사람이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가? 등등.


특히 팀별 대결을 시키면서 팀원 가운데 한 사람씩 탈락시키는 것은 과도한 경쟁 방식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 <나는 가수다>에서 탈락하고 짠하게 울던 어느 중견 가수 같은 사람은 없었지만, 흑수저도 아닌 백수저 프로 셰프가 혼자 탈락해서 나가는 모습을 보는 마음이 다소 불편했다.


흔히 ‘미슐랭’으로 불리는 미쉐린 가이드는 1900년 프랑스의 타이어 기업인 미쉐린이 만들었다. 기업을 세운 미슐랭 형제는 자동차 구매자를 늘려 타이어를 많이 팔기 위해 여행 안내서 ‘미쉐린 가이드’를 만들었다. 그런데 식당을 소개하는 부분에 많은 사람이 주목하기 시작하자, 평가원에게 익명으로 식당을 방문해 평가하도록 했다. 그리고 좋은 평가를 받은 식당에 1개부터 3개까지의 별을 표시하기 시작했고, 이 별은 요리사와 소비자 사이에서 식당을 평가하는 지표가 되었다.


문학 분야에서도 한국의 한강 소설가가 수상한 노벨문학상처럼 세계적인 평가 시스템이 존재한다. 파스칼 카자노바는 『세계문학공화국』(2024)이라는 책에서 “문학에서 보편에 대한 독점권의 보유자는 모든 이가 평등하다는 미명 아래 세계의 적대적이고 위계적인 구조에 대한 거부를 명목으로 내세우면서 자신의 법을 따르도록 인류 전체를 소환한다.”라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보편이란 보편의 독점자 자신이 보편과 유사하다는 조건에서 획득되고 모든 이에게 확실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임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노벨문학상이든 미슐랭이든, 문학 능력이나 요리 능력을 수능시험처럼 객관식 오지선다형 시험 점수로 평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전문가 그룹에 의한 주관적 정성평가가 불가피하다. 그래서 “보편의 독점자”에 의한 “오해와 몰이해의 긴 연속”일 수밖에 없는 주관적 정성평가를 보다 공정하게 운영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노벨문학상은 해마다 18명 정원의 전문가 심사위원들이 5월부터 9월까지 집중적으로 추천 작품들을 읽은 후 9월부터 매주 심사 독회를 하고 나서 10월 중에 최종 투표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흑백 요리사>는 재미있는 요리 프로그램일 뿐이다. 그대로 학벌주의나 유명세가 아닌 능력주의를 표방하려면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있다. 가령 달랑 2명의 전문가가 아니라, 20인 정도의 백수저 전문 프로 셰프들이 심사위원이 되어 흑수저 무명 요리사 가운데 최종 우승자를 선발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수시 학종도 여전히 입학사정관에 의한 주관적 정성평가인 만큼 학생과 학부모들이 공정성을 인정할 만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불공정성 논란에 휩쓸려서 폐지될지도 모른다. 기득권층에 의한 입시 부정 사건이 문제되는 것은, 공정한 교육이라는 믿음을 처참히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높은 지위나 재력, 특권 등이 없는 평범한 학생의 입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치열한 경쟁을 통과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본인이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공정한 룰이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노력할 이유도 사라진다.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정한 입시제도가 필수적이다. 대학입시의 공정성은 다른 가치들을 위해서 유보되어도 좋은 것이 아니라, 다른 가치들보다 최우선적으로 준수되어야 하는 기본적 가치이다. 공정성이 무너지면 입시가 무너질 뿐만 아니라,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도 무너지기 때문이다.


- 이건주 교육평론가/전 한국교총 현장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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