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반시론>은 <시여, 침을 뱉어라>와 함께 그의 후기 시론을 대표하는 산문이다. <반시론>은 체계적인 이론서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자신의 시론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고, 이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도 함께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김수영의 후기 시론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임이 분명하다.
그동안 <반시론>에 대한 연구는 주로 하이데거 철학과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하이데거의 릴케론과 연결지어 ‘반시’의 의미를 분석하는 연구나, 하이데거의 ‘긍정’ 개념과 관련하여 이를 김수영의 시적 전향 선언으로 보는 연구, 여기에 나타난 존재 사유의 특징적 국면들을 하이데거 예술론의 기본 골격으로 해명하는 연구, 하이데거와 릴케를 후기 김수영의 문학적 사유 전환의 중요한 동력으로 보는 연구,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시대에 하이데거의 진리론과 관련하여 <반시론>이 갖는 의미를 분석하는 연구 등이 그것이다.
그동안의 연구에서는 <반시론>에 제시되어 있는 작품들에 대한 세심한 연구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후 논의 과정에서 분명해지는 것처럼, <반시론>은 김수영이 ‘둥근 시’, ‘배부른 시’라고 명명한 <라디오계>, <먼지>, <성(性)>, <미인> 네 편의 작품에 대한 일종의 ‘시작(詩作) 노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반시론>이 “전반부는 최근 자신의 생활에서 일어난 변화에 관한 기술이고 후반부는 하이데거의 ‘릴케론’과 자신의 시 <미인>에 관한 기술”인 것이 아니라, 전반부는 <라디오계>와 <먼지>그리고 후반부는 <성(性)>과 <미인>의 시작 노트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반시론>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 작품에 대한 세심한 분석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최근에는 <반시론>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반어’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반시론>의 반어가 검열의 폭력성을 피하기 위한 ‘반검열의 수사학’이라고 보는 연구, 반어가 양립 불가능한 사태들을 하나의 언표로 구현하면서 동일성의 체제를 뒤흔드는 운동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연구, 키에르케고르의 아이러니 개념과의 영향 관계를 밝힌 연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반시론>의 핵심 개념은 ‘반어’가 아니라, ‘긴장’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후 논의에서 분명해지는 것처럼 <반시론>에서 김수영은 긴장의 시론을 일관성 있게 제시하였고, ‘배부른 시’들에서도 다양한 긴장의 양상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김수영의 산문 <반시론>을 그가 ‘배부른 시’라고 명명한 시들에 대한 시작 노트로 간주하고, 이 작품들을 산문 <반시론>과 긴밀하게 연결하여 분석하는 방법을 취한다. 이를 통해 <반시론>이 초월적인 시(詩)와 현실적인 반시(反詩)의 이분법적 대립에서 벗어나, 시와 반시를 모두 긍정하면서 그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다원주의적 ‘긴장’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이것은 김수영 후기 시론의 핵심이 다원주의적 긴장임을 입증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 이건주, <김수영의 다원주의 시론 연구 - <반시론>에 나타난 긴장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의 연구》 제73호, 한국문학연구학회, 2021, 7-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