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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머 Oct 22. 2023

비워내기, 생각과 행동을 일치하기

방에 가만히 누워있다가 보면, 방의 물건들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때는 집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새벽이든 낮이든 정리를 시작한다. 그래봤자 고작 비워내는 건, 안 쓴 지 한참 된 연습장, 유통기한 지난 차 몇 가지. 비워내는 걸로 성이 안찰 때는 가구 배치를 바꾼다. 자그마한 방에 가구 배치를 바꾼다고 해서 크게 방이 넓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생각을 덜어내는 나만의 의식 같은 것이다. 가구배치를 바꿀 때면 엄마는 이해 못 한다는 표정으로 방을 바라보고 지나간다. 그래도 한 명, 나의 방 배치를 잘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내가 가구 배치를 바꿀 때마다 이게 낫다, 그래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이렇게 생각을 덜어내는 방식의유전자는 할아버지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가구 배치에 진심이시다. 처음 허리가 안 좋아지신 것도 시골집에서 혼자 소파를 옮기시다 허리가 삐끗하신 것인데 그 이후에도 가구 옮기기는 끝이 아니었다.


오른쪽으로 tv를 보시던 할아버지가 그 뒷날에는 정면으로 tv를 보시고, 그런 식으로 마음에 드는 배치를 찾을 때까지 일주일에 몇 번이고 지치지 않고 가구를 옮기신다.


방은 물론이고, 거실의 소파위치는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시고 열 번은 넘게 바뀐 듯하다. 삼촌들이 오면, 넌지시 소파 위치가 별로라는 사실을 어필 하신다. 그럼 할아버지의 지휘에 따라 삼촌들은 요리조리 소파를 옮긴다. 어쩐지 할아버지의 표정이 흡족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 나는 이제 어느 정도 눈치를 챈다. 다음날이면 다시 소파가 원위치되겠다. 예상대로 소파는 다음날 다시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것도 할아버지 혼자서 요리조리 옮기신 것이다.


나도 가구를 좀 옮겨본 사람으로, 할아버지의 가구 배치 바꾸기는 할아버지의 취미인 듯하다. 활동반경이 좁은 도시에서 가장 활동성이 큰,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그런 취미말이다.


가구를 옮기기 전에, 이런 모습이 나오겠지 생각하고, 딱 내가 원하는 모습이 나오면 그래, 이거다 하며 뭔지 모를 희열감과 성취감이 밀려온다.


할아버지 또한 집안에 가장 잘 나의 결정을 보여줄 수 있는 선택을 하신 것이다. 나는 알 수 있었다.


비워내기, 비워지는 건 집이 아닌 내 생각이다.


오늘 할아버지와 닮은 점을 하나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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