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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머 Oct 21. 2022

할아버지의 양꽃

나는 주말에 약속이 없으면 되도록 밖으로 나가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럴 때면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서 보낸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루를 훌쩍 보내고 나면 뭔가 허탈한 감정을 감출 수 없다.


그럴 때면 밖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오늘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을 먹고, 보고, 듣고 경험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내가 이렇게 집안에서 하루 종일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맞나 생각이 든다.


시간은 금이라는데 내가 주말 하루를 이렇게 날려 되나 생각이 들면서, 다음 주에는 혼자라도 나가볼까 하지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경험’은 ‘청춘’과 대동소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경험’은 내가 직접 걸어서, 도착하고, 느낄 수 있어야 가능하고, 그렇다면 나에게 ‘청춘’이라는 체력과 정신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에 내가 무수한 것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귀찮음에 취약한 나이지만 최근에는 할아버지께 ‘경험’을 선물해 드리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경험하실 수 있는 시간들이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새로움을 권하기 전에 취향에 맞지 않으시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양꼬치가 바로 그랬다. 내가 먹을 때야 맛도 있지만 할아버지에게 적용되려면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에게 음식을 추천할 때는 일단 씹기에 좋아야 한다는 것이고, 너무 달지 않아야 하고, 너무 싱겁지도 않아야 한다.


양꼬치는 이 요건들을 충족하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양꼬치’라는 메뉴가 그저 할아버지에게 새로운 맛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동네 양꼬치집으로 갔다.


동네 양꼬치집이기는 하나 저렴하고, 맛도 좋아 항상 젊은 사람들이 칭다오 한 잔에 양꼬치를 먹고 있는데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처음 가게에 들어섰을 때, 무엇보다 시끄러운 가게 분위기에 할아버지는 적응하지 못하셨다. 양꼬치를 살살 돌려가며, 할아버지께 한 점 건넸다.


할아버지는 질겅질겅 씹으시더니


“이게 뭐라고? 양 꽃?”

“양꼬치요. 맛이 괜찮으세요?”

“그래, 맛이 좋다.”


하시면서 몇 점을 드시더니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으셨다.


할아버지는 양이 적긴 하셨지만 몇 젓가락만에 탈락한 양꼬치가 할아버지의 입맛을 저격하는데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시끄러운 분위기를 참지 못하시겠는지 엄마와 먼저 집으로 가시겠다고 하시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양꼬치 시대가 끝난 줄만 알았다.


그 후, 며칠 뒤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우리에게 제안하셨다.


“양꼬치 먹으러 갈래? 내가 사마.”


할아버지가 메뉴를 제시하며, 외식을 제안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소 놀랐다.


‘우리가 좋아해서, 양꼬치를 제안하셨나?’ 생각하고는 양꼬치 가게로 향했다.


 후에도  번을 “양꼬치 먹으러 갈래?”라고 제안하셨다. 양꼬치는 우리 가족이 가장 즐기는 외식메뉴가  것이다. 항상, 양꼬치를 제안하실 때마다 ‘내가 사겠다 할아버지의 약속은 당연하게 따라왔다.

그 후 몇 번이 지나서야 우리는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마음에 양꽃이 활짝 핀 것이다.


우리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꽃이 말이다. 할아버지에게도 새로운 ‘경험 하나 추가되었다는 사실에 설렜다. 요새는 무엇이 할아버지께 새로움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주말을 맞이한다. 나에게도 새로운 ‘경험’이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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