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인가 보니 우리 아이의 얼굴이 밋밋해 보였다. 어디인가 깔끔해 보이기도 하고, 무언가 없어진 느낌이 들기도 하고, 뭔가 하니 우리 아이의 볼 옆을 지키고 있던 긴 수염들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여기서 우리 아이는 우리 고양이인데 고양이에게 수염이란 자고로 절대로 자르면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한 번도 손댄 적 없는 그 수염들이 댕강 잘려나가 버린 것이다.
고양이는 수염으로 균형을 잡고, 거리를 측정해 뛰어 점프를 하기 때문에 이 수염이 없어 우리 아이가 점프를 하다가 거리를 재지 못해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냐 하는 불안감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이 수염을 과연 어디로, 누가 자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첫 번째로 엄마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내가 엄마에게 고양이수염을 자르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한 적이 없던가. 그랬다면 고양이에 대해 무지한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나의 잘못이겠거니.
하지만 나는 곧장 엄마에게 달려가 화 아닌 화를 냈다.
“엄마, 애 수염이 다 어디 갔어? 엄마가 잘랐어?”
그랬더니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 아니야. 어머, 애가 수염이 다 어디 갔니?”
저렇게 놀라는 것을 보니 엄마는 본래 아이게에 수염이 있는지조차 잘 몰랐을 정도록 별 관심이 없었으리라 생각이 되어, 의심을 거두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사람은 한 명뿐인데, 할아버지.
할아버지께는 다소 부드러운 말투로 여쭤보았다.
“할아버지, 고양이수염 보셨어요?”
할아버지는 밝게 그리고 자랑하듯이 말씀하셨다.
“너무 길어 지저분해서 내가 잘랐지”
나는 짧은 탄식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나보다도 평소 신경 고양이에 대해 쓰지도 않던 엄마가 할아버지께 더 언성을 높였다.
“아버지, 고양이는 수염 자르면 안 돼!”
할아버지는 민망해 하시며 너무 길어서 잘라준 것뿐이라며 말을 아끼셨다. 짧아진 수염을 보니 속상했지만 고양이를 좋아하시지 않는 할아버지가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일조차 크나 큰 노력이라는 것을 알기에 속마음을 감추기로 했다.
며칠 뒤, 할아버지는 모두가 있는 앞에서 말을 꺼내셨다.
“동물병원에 갔더니 고양이를 안 팔더라?”
”동물병원에 고양이를 사러 가셨어요? “
“그래, 자 고양이수염을 잘랐으니 다른 고양이 한 마리를 사려고 했지.”
“할아버지, 동물병원에서는 고양이 안 팔아요. 거기는 애들 아플 때 가는 곳인데”
“그러게, 거기 물어보니까 없다더라, 고양이가 수염이 없어도 되냐니까 처음에는 불편한데 곧 기른다고 괜찮다고 하드라”
할아버지가 고양이를 사러 동물병원에 가셨을 마음을 생각하니, 감사하기도 하고, 표현은 안 했지만 내 속상함을 할아버지께 드러낸 것만 같아 죄송했다.
그리고 동물병원에 가셔서 확실하게 고양이수염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오셨다니 또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할아버지, 그런데 두 마리 키워도 괜찮으세요?”
“그건 안되지, 새끼가 오면 쟤는 보내야지”
예상은 했지만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한편으로는 할아버지가 동물병원으로 고양이를 찾으러 가신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동물에 대해 관심도 없는, 또 아무것도 모르는 할아버지가 손녀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동물병원에 가셨다는 게 마냥 웃기기도 하고, 감동이었다.
“할아버지, 고양이는 살 수가 없는 존재예요. 우리 인간들처럼요. “
할아버지의 마음은 충분히 알았으니, 다음에 고양이 동생은 입양하는 건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