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라는 사랑의 종류
일반적으로 엄마라는 존재에게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이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그 감정을 최근에서야 느껴보았다.
그 감정의 시작을 생각해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면서부터였다.
어느 날인가 부엌에서 냄비를 냉장고로 옮기던 나는 그만 냄비 뚜껑을 발톱 위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금세 발톱에 피가 고여 종종걸음으로 신음하고 있는데 엄마보다도 할머니가 먼저 달려와 내 발을 움켜쥐며, “우야꼬, 우야꼬” 하시면서 안타까워하셨다.
너무 아파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지만, 걱정하시는 할머니께 애써 괜찮다는 말로 할머니를 안심시켰다. 순간 나는 엄마는 이런 따뜻함, 진심 어린 부모의 사랑을 느끼며 살았겠구나 하는 왠지 모를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날 모성애라는 사랑의 종류를 할머니에게서 처음 느껴봤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가 우리를 방임했다거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어릴 적부터 우리와는 정서적 유대감이 부족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는데, 먼저 엄마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첫 번째 이유가 있다. 아빠가 못한 가장 노릇을 하느라 쉬는 날 없이 나가서 일을 해야 했기에 우리와 함께 할 시간이 적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엄마에게 모성애라는 유전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는 두 번째 이유가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는데, 내 입에서 말하기 서글프지만 ‘엄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그에 걸맞은 모성애를 타고나지 않는다는 걸 엄마를 보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는 엄마가 우리를 의식해서 꺼낸 이야기라면, 내가 두 번째 이유를 선택한 것은 엄마가 자신조차도 의식하지 못한 채 우리 앞에서 자신이 모성애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술술 꺼냈기 때문이다. 그것도 간접적이 아닌 직접적으로. 이를테면 “나는 딸들보다 동생들한테 더 정이 가더라”라는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하면서 말이다. 엄마는 이 얘기를 한 번도 아닌 여러 번 발설했다. 그럴 때면 나는 서글픈 마음보다는 짜증이 났다. ‘왜 엄마는 우리보다 다른 이들을 우선할까?’ 하는 의문보다는 ‘왜 우리 엄마는 할 말 못 할 말을 가려서 하지 못할까?’라는 다소 엄마답지 못한 발언에 실망을 하며 말이다.
엄마의 발언은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발언이었다. 동생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발언이며, 딸에게는 ‘엄마는 어쩔 수 없는 모성애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확신을 공고히 하는 발언이었다. 엄마의 저 발언의 목적은 무엇일까? 엄마는 그 발언이 내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알지 못했으며, 또 그 자리에 있는 나에 대한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어 화가 났다.
또한 엄마가 굳이 저렇게 발언하지 않아도 바보가 아닌 이상 엄마의 마음을 나는 다 알 수 있었기에 엄마의 발언은 누구보다 어리석었다. 어릴 적에는 못난 남편이 1순위였고, 우리가 다 자란 후에는 계속해서 순위가 밀려날 가족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엄마는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깔깔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누구에게나 자녀가 1순위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1순위가 아닌 우리에게 자녀라는 이름으로 부담만 지어주는 엄마의 태도가 부당하다고 느껴졌다. 이런 감정을 느낄 때, 스스로도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게 돌아오는 만큼의, 애정만 쏟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찌 보면 그게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할아버지는 자녀들과 함께 식사를 하실 때면 항상 먼저 지갑을 꺼내 드신다. 모두들 한사코 말리지만 할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무언가 사드리는 것을 한사코 거절하시기 때문에 퇴근길에 간식을 손에 들고 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때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엄마와는 “오늘은 엄마가 내!” 하면서 실랑이하는 일이 더 많았다면 할아버지와는 “내가 내겠다, 아니다” 하면서 실랑이를 벌이는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됐다.
오늘도 아귀찜을 계산하시겠다며 급히 계산대로 가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엄마에게 사무치게 부러움을 느꼈다. 든든하다는 게, 물론 물질에서 나오지는 않지만 맛있는 것을 항상 사주고만 싶은 부모의 마음을 엄마는 항상 느끼고 살아왔을 테니 말이다. 오늘도 엄마가 부러워졌다. 철없는 우리 엄마, 그래도 이 글을 엄마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엄마 욕을 한다고 생각할테니. 만약 읽는다해도 내 마음은 그게 아니라는 그 진실된 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