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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머 Oct 07. 2022

익숙함을 버려야만 하는 순간

친구들과 가끔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너는 제주도 가서 살 수 있어?”



제주도는 우리가 간절하게 원하는 여행지이지만 평생을 그 도시에서 산다는 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해보는 질문이다.


도시의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소리가 싫어서 떠나고 싶지만 때로는 그 자동차들이 이끄는 활기가 듣고 싶을 때가 있다.


막연하게 도시의 것들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발목을 묶지만, 더 큰 이유는 새로운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너는 도시에서 살 수 있어?”라고 한다면 그 질문을 듣는 이들도 깊은 고민에 빠지거나 ‘아니’라고 외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평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집에서 떠나 우리와 함께 도시라는 곳에서 정착하게 되었다. 그것도 80이 넘은 나이에. 그래서 우리는 할아버지가 쉽게 도시로 오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역시나 맞아떨어졌다. 할아버지도 처음에는 그 익숙함을 버리지 못하셨다. 평생을 살아온 본인의 집에서, 인생의 끝을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할아버지의 소망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이가 듦으로 인해 해나가지 못하는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너무나도 당연하게 해야 했던

생산적인 일들은 물론이고, 본인의 삶을 이어가기 위한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날들이 오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결국 세월에 굴복하고 말았다. 자발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이어가지 못하는 일상생활을 마주한 굴욕적인 선택이었다. 인생은 때로는 자신이 정말 선택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오는데. 할아버지의 상황이 딱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본인의 고집을 꺾어야만 했던 요인들에 의해 우리와 도시에 살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상황을 내가 맞이했다면, 나는 새로운 삶에서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새롭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희망’ 일 수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두려움’ 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편인데, 80넘은 할아버지가 느끼는 감정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딸이 있고, 아들이 있는 도시이지만 낯선 것들이 즐비한 이곳에서 할아버지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것에 적응하려면 더욱 많은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곳에서 필요한 물품을 사야 하고, 또 헌 것은 새로운 것으로 교체해야 하니 그 공간에는 새로운 것들이 자리를 잡게 된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새로운 시작은 무에서 시작된다. 낡은 것들은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지 않고, 버려진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는 것은 필요성을 잃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할아버지의 공간도 빛을 잃게 된다. 아무도 자리하지 않는 공간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낡아간다. 공간에도 사람의 손길이 꾸준히 필요하니 말이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물건들은 새로운 공간에서의 쓸모의 필요성을 잃고, 사라졌다.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없이 도시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쩌면 인간에게 큰 행운일지도 모른다. 기억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다는 것은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동반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80년의 기억을 가지고, 도시에서 새롭게 태어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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