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을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는 이유
나는 빨리 걷기 신봉자였다
빨리 걷기(런닝머신 속도 7.5 이상)를 한 시간씩 꾸준히 하면 점점 슬림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도 빨리 걷기로 얻은 결과는 짜릿한 감량의 추억으로 회자되곤 한다. 최종 목표는 마지막에 찍힌 몸무게를 유지하는 것이었으나(가장 적게 나갔을 적몸무게는 52kg이었다) 걷기로 줄인 몸무게는 유지되지 않았다. 조절하던 식이를 멈추면 다시 몸무게가 점점 올라갔다. 다이어트를 포기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힘들게 살을 빼면 뭐하는가? 어차피 처음으로 다시 돌아갈텐데. 문제는 마치 내성이 생기듯 몸도 점점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걷기로 점철된 다이어트는 근력 손실을 불러왔다. 근육이 줄어든 몸은 예전처럼 쉽게 살 빼기를 허용해 주지 않았다.
모두가 걷기의 효능은 탁월하다고 말한다. 신이 계시를 내리듯 “내가 너희에게 진실로 말한다. 걸어라, 걸으면 건강해질 것이다” 걷기 신봉자였던 나는 “아멘”하고 고독한 싸움을 시작했다. 집 근처에 안양천을 따라 길이 나 있는데 한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걸어도 길이 끝나지 않는다. 갈 데까지 가보자하고 오목교역에서 출발하여 여의도역까지 가는데 편도로 한시간 반이 걸렸다.
평소 살이 찌면 안된다는 강박증도 한몫했다. 현상 유지만이라도 하려면 움직여야 하니까. 가까운 거리는 물론 지하철 한두정거장 정도의 거리는 무조건 걸어다녔다. 그것이 건강을 위한 일이라 생각했다. TV 건강 프로그램에서는 말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걸으라고. 그런데 그것은 하루 5천보도 걷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이었다. 일주일 평균 만보를 걷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발바닥의 반격이 시작되다
문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2019년의 어느 날이었다. 유난히 밑창이 딱딱한 로퍼를 하루 종일 신었는데 오른쪽 발바닥이 아팠다. ‘금방 좋아지겠지’ 생각하고 그대로 두었다. 평소 습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여전히 걸었고 발 아픈 게 불편하니까 운동화를 신기도 했다.
낌새가 이상했다.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고 통증은 발바닥 전체로 깊숙이 뿌리내렸다. 두려운 마음에 ‘발바닥 통증’을 검색했다. 족저근막염의 원인과 증상에 대해 다룬 글들이 보였다. 어감마저 생소한 이 통증의 정체는 무엇일까?
족저근막염이란 발바닥 근육을 감싸고 있는 막에 생긴 염증을 말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증상으로는 아침에 일어나 발을 디딜 때 심한 통증, 발 뒤꿈치 혹은 발바닥 통증 등이 있다. 원인은 장기간 밑창이 딱딱한 신발 착용, 과체중, 오랜 시간 서 있거나 많이 걸었거나 등이다.
발생 빈도는 40~50대 여성에게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충격이었다. 남들은 40~50대 겪는 일이 30대에 찾아왔으니까. 운동화보다 굽 있는 신발을 자주 신고, 장시간 걸었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갔다. 통증이 없어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 발바닥은 천천히 파업 선언을 준비하고 있었다.
단순히 손가락으로 발바닥을 누르면 아프지 않은데 걸을 때, 몸의 하중이 발바닥에 실리면 찌릿찌릿했다. 기분 나쁜 찌릿함이 싫어서 아픈 부위를 누르지 않고 걸어보려 했지만 결국 찌릿한 느낌은 피할 수 없었다.
우선 한의원에 갔다. 한의사 선생님은 돌침대 같은 네모난 평상에 내 발바닥을 올려두고 유심히 살펴봤다. 청진기로 가슴팍을 슬쩍 훑고 지나가듯 손으로 발목 여기저기를 눌러본다.
한의사 선생님: 아킬레스건이 많이 긴장돼 있고 짧은 편이에요. 발도 요족(凹足, 발의 아치가 높은 상태)이라 압력이 고르게 분산되지 않아요. 걸을 때 엄지발가락 쪽으로 하중이 실려야 하는데 아킬레스건이 약하니까 자꾸 발이 옆으로 빠지는 거죠. 제대로 지탱해 주지 못한 상태로 걷다 보니 발바닥도 아픈 거예요.
발을 요리조리 뜯어보던 선생님이 질문을 시작한다.
한의사 선생님: 평소에 많이 걸으세요?
나: 음.. 많이 걷는 것 같아요.
한의사 선생님: 다른 운동도 하나요?
나: 줌바를 하고 있는데 하면 안될까요?
한의사 선생님: 아무래도 뛰면서 발바닥에 자극을 줄 수 있으니 당분간은 안하는 게 좋겠어요.
당분간 날뛰지 말고 조용히 지내라는 말을 듣고 실망했지만(정말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다) 줌바 사망 선고는 돌덩이처럼 무겁게 가슴을 눌렀다. 침 치료와 함께 물치치료를 받으며 심신의 안정을 되찾아 보려 했다. 침을 맞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맞은 직후에는 좀 아픈 거 같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나아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을. 침 맞고 나아지니 줌바를 가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또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쯤되면 병이구나 싶지만 방방 뛰고 나서(줌바는 에어로빅에 가깝다) 샤워 후 느끼는 상쾌함, 다음날 아침 살짝 정돈된 듯한 복부와 다리 라인을 확인하는 즐거움을 놓치기란 쉽지 않다.
일주일에 두 번 가던 줌바를 한 번으로 줄이면서 상황을 지켜봤다. 운동화를 신다가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으면 다시 예쁜 신발(굽 있는 신발)을 신었다. 발 입장에서 이대로는 안되겠나 싶었나 보다. 작은 통증으로는 끄덕하지 않을 것 같았는지 초강수로 대응하기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