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보다 싸게 집 구하는 방법
“경매로 집을 구할 거야”
남자친구는 신혼집을 경매로 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 집을 구하고 난 다음, 결혼식을 하겠다는 ‘선(先)집 후(後)결혼식’을 강하게 어필했다. 심히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그는 집이 있고 혼인신고만 한다면 결혼식이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냐, 결혼식은 해야 돼"
"알았어. 근데 집을 먼저 구하고 나서 하면 좋겠어."
서로 딜을 끝내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경매에 뛰어들었다.
경매로 집을 사려는 이유
부동산 중개인을 끼고 하는 거래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기의 위험성을 간과할 수 없다. 반면 경매는 낙찰을 받고 잔금만 치른다면 (거주자를 내보내는 과정이 남아있지만) 온전히 내 집이 된다. 나라에서 진행하는 일이므로 충분히 알아보고 접근하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집을 살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시세보다 가격이 싸다는 점이다. 잘하면 시세 차익을 낼 수도 있다. 집이 경매에 들어가면 감정평가사가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하여 감정평가액을 내놓는다. 보통 감정평가 가격은 실거래 가격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다. 경매에 나온 집은 유찰되면서 가격이 떨어지게 되는데 서울은 20%씩, 경기도는 대부분 30%씩 유찰된다. 유찰이란 집을 사려는 낙찰자가 없어 무효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한번 유찰되면 감정평가 가격에서 금액이 떨어지고 최저매각가격이 떨어진다. 최저매각가격이란 그 금액부터 경매를 시작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경매를 하려면 최저매각가격보다 높은 금액을 써야 하며 그중 가장 높은 금액을 쓴 사람이 집을 낙찰받는다.
우리가 원하는 집의 조건은 이렇다.
1. 회사와 최대한 가까운 거리(낙성대 or 사당역 근처)
2. 건물 총면적 30m2 이상(10평 이상)
3. 2억 5천 이하 빌라 매매
4. 지어진 지 20년 이내의 집
남자친구는 빚지는 것을 피하자는 주의다. 신용카드도 꺼려하는 그에게 대출받아 집을 사는 일은 매우 부담일 터였다. 집 사는 비용은 대부분 그가 부담하므로 무리하게 빚내서 집 구하자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 생각이 없어 교육 인프라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둘만 살기 좋으면 괜찮다 주의여서 그나마 선택지가 넓어지는 편이었다.
레이옥션, 네이버 부동산 경매 사이트에 매일 접속하며 매물을 찾았다. 주로 레이옥션을 이용했는데 소재지를 ‘서울특별시 관악구’로, 물건 종류를 다세대(빌라)로 선택하여 검색했다. 원하는 위치는 낙성대역 쪽이었지만 매물은 신림, 봉천 부근에서 많이 나왔다. 2020.07.24일자 매물을 캡처해 봤다. 새로 나온 것부터 유찰 1회부터 4회까지 다양한 매물이 있다.
코로나19를 이유로 경매 매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신건이 나오는 속도는 더딘 편이다. 위치로 봤을 때 매력적인 매물도 없다. 신림과 봉천 쪽에 집중돼 있기도 하지만 역에서 먼 집이 상당히 많았다.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집을 사기 위해 감수해야 할 부분도 보이기 시작했다.
1. 조건에 맞는 집을 찾는 것일까, 집에 조건을 맞추는 것일까
경매는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도전해 보는 게 좋다. 조건에 맞는 집을 찾는 게 아니라 경매로 나오는 매물에 조건을 대입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조건을 펼쳐 놓고 네이버부동산에서 원하는 집을 찾으면 금방이라도 집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경매 물건은 랜덤으로 나오므로 매력적인 집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경매 물건이 많이 쏟아져 나와야 원하는 집을 pick할 수 있는 기회라도 생긴다.
2. 집 내부를 볼 수 없다
직접 내부 구조를 들여다 보지 못하는 것도 단점이다. 낙찰을 받게 되면 현재 거주자는 내가 내보내야 할 사람이 된다. 이미 경매에 나온 집을 잠시 봐도 되냐며 들어가는 것도 불편한 일이다. 어떤 하자가 있는지, 방음은 잘되는지, 위아래로 어떤 위인들이 사는지, 전기, 누수, 곰팡이, 수압 등을 확인해 볼 수 없다. 그래서 낙찰 후 수리 비용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낙찰가를 써야 한다.
3. 낙찰받으면 그때부터 진짜 시작
여러 경쟁자를 뚫고 낙찰을 받은 기쁨도 잠시, 낙찰이 1라운드였다면 진짜 게임은 낙찰 후부터다. 합법적인 일이지만 낙찰 후 거주자를 내보내는 일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안돼’부터 시작해서 ‘법적으로 해결해’까지 다양한 말들로 집 비우기를 미루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경매는 법적으로 진행된 일이다. 끝까지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면 강제집행을 할 수 있으며 강제집행을 위해 들어간 비용도 모두 거주자에게 청구하여 받을 수 있다. 거주자는 어차피 나가야 하고 낙찰자는 집을 받아야 하므로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다.
누굴 위한 집인가
무엇보다 집을 구하면서 느낀 점은 ‘왜 이렇게 비싸?’였다. 얼마 되지 않은 몇 평짜리 집을 억대의 돈을 주고 사야 한다니… 임장(부동산 물건 현장을 조사하기 위해 방문하는 일)을 다니며 목표 건물에 다다르기까지 언덕을 오르고 올랐다. 다닥다닥 붙은 빌라들 사이에서 창문만 열면 옆 빌라와 ‘안녕’할 것 좁은 공간에 숨이 막혔다.
더 슬픈 건 그마저도 사기가 쉽지 않다는 것. 서울에서 밀집돼 있는 빌라 중 한 칸을 얻는 일은 가혹하게만 느껴졌다. 정부에서는 신혼부부를 위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조건에 해당되지 않아 그림의 떡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매에 도전한다. 많은 신혼부부들이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빚을 내서 집을 장만한다. 결혼은 정신적, 경제적 자립을 이룬 두 사람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부모님께 손 벌리며 살아왔는데 결혼만큼은 내 힘으로, 동반자와 함께 힘을 모아 해보고 싶다. 인생을 집으로 저당 잡히지 않는 삶, 경제적으로 부모님에게서 자립하여 동반자와 보금자리를 꾸릴 수 있는 삶을 위해 오늘도 발로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