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남자와 초감성적 여자의 연애
그놈이 그놈인 것 같아요
얼마 전, 집 보러 경매를 다녀왔다고 하니 직장 동료가 말한다.
“어떻게 결혼까지 생각하게 됐어요? 저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결혼 못할 것 같아요”
남자친구와 안 풀리는 일이 있는가 보다.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 ‘결혼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결혼할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든다고. 정말 놀라운 말이다. 당장 내일도 알기 어려운 인생사, 어떻게 첫 만남부터 결혼하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성격상의 차이인지 모르지만 어떤 일에도 확신을 잘 못하는 편이다. 모든 일은 변할 수 있으며 오늘 이렇다고 해서 내일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하루하루,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
이쯤 되면 남자친구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나와 비슷한 생각이지 않았을까 싶지만 한번 물어보기로 한다.
“나를 처음 봤을 때 어떤 확신 같은 게 있었어?”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
??
어차피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결혼하는 마당에 나쁘게 말해서 좋을 게 없지 않은가. 그가 지혜롭게 상황을 모면한 거라 여겼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이나 해’라는 위기의식을 느낀 걸지도 모른다. 사실 그가 무슨 말을 해도 ‘확신’이라는 단어는 믿기 어려울 듯하다.
그리 길지도, 많지도 않은 몇 번의 연애를 하며 느낀 게 있다. 남자와 여자의 생각 회로는 평행선을 그으며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어딘가를 향해 뻗어나간다는 것. 연애는 둘이 하는 건데 혼자인 듯 외로워지는 순간이 있다.
여자: 출근하는 거 너무 힘들어. 오늘도 역마다 정차했어(어서 토닥토닥해줘)
남자: 체력이 약한 거 같네
여자: 내가 약한 게 아니라 출근길이 스펙터클한 거야
남자: 근력 운동을 좀 해봐. 스트레스도 풀리고 좋아.
여자: ….
우리의 대화는 접점을 찾지 못하고 서로를 튕겨낸다. 여자가 위로와 공감을 바라면, 남자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여자도 안다. 출근길 힘든 건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고 바꾸기 어려운 환경이란 걸. 알면서도 본인의 힘든 감정을 알아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다. 남자도 출근, 직장생활 뭐하나 녹록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여자는 가장 가까운 사람, 내 반쪽인 남자친구에게 신적인 힘을 발휘하여 전지전능하게 나의 힘든 부분을 감싸주길 바란다. 오히려 적당히 거리가 있는 직장 동료와는 매너를 지키고 적당한 선을 유지한다. 그래서 동료와는 싸우지 않는 반면, 남자친구와는 싸운다.
적당한 선을 유지할 거면 뭐하러 사귀어?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감싸주는 사람을 만날 거야.
20대 초반 철없던 시절부터 후반까지 쭉 해왔던 생각이다. 30대 초반인 지금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무의식 중에는 이런 사람을 원한다. 우리 모두는 원한다. 사랑받길. 그리고 본인이 건넨 사랑에 보답받길. 부모처럼 조건 없이 사랑해 주는 사람을 무의식 중에 바란다.
안타깝게도 동반자는 신도, 부모님도 아니다. 부모는 자신의 피를 내서라도 자식을 감싸줄 수 있다. 자식이니까. 하지만 남자친구는 나처럼 사랑을 바라는 한 명의 인격체일 뿐이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적당한 거리란 선을 긋고 멀어지라는 말이 아니다. 예의를 지키는 것을 뜻한다.
한 번은 이 일로 크게 다툰 적이 있다.
나: 왜 힘들다는 말에 공감을 안 해줘?
남자친구: 너는 항상 힘들다고 하잖아. 자기 마음의 지옥을 왜 옆 사람에게 전가해?
내가 감정 쓰레기통이야?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지옥을 혼자만 안고 있는 게 싫어서 내 반쪽이 알아주길 바랐다. 그런 이기적인 마음을 품었다. 하지만 위로는 옆 사람에게 받으려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한두 번은 괜찮지만 힘든 일은 한두 번만 있지 않아서 매일 상대방에게 마음의 지옥을 보여줬다. 그는 신이 아니기에 매번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일이 버거워졌다. 본인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걸 계속 듣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도 힘든 상황에서 응석을 부린 것은 선을 넘는 일이었다.
힘들다는 말도 못 한다면 우리 사이가 무슨 의미가 있어? 같이 있어도 외로워. 혼자인 것 같아.
외로움은 나눌 수 없었다. 남녀의 관점 차이에서 외로움이란 물 위의 번진 불 같다. 섞이지 못한 채 평행선을 이루다 보면 선택의 시간이 온다. 합의점을 찾거나 관계를 그만두거나.
헤어지기 싫다면
합의점을 찾고 룰을 정해야 한다
그는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AI 같은 답변보다는 인간적인 공감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나는 부정적인 말들을 가급적 안 하기로 했다. 대신 그가 원하는 건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 삶의 콘텐츠를 다양화하기로 했다.
근력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함도 있었다. 실제로 근력 운동을 하면서 궁금한 점들을 그에게 물어보고 조언을 듣다 보니 운동에 흥미가 생겼다.
이렇게까지 해서 이 사람을 만나야 해? 그냥 다른 사람 만나지 뭐하러 맞춰?
이런 생각이 든다면 과감하게 다른 사람을 만나면 된다. 하지만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진리를 안다면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은 타협하되,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편이 낫다. A의 A-1이 싫어서 B를 만났더니 A-1은 괜찮지만 B-1이라는 새로운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남녀 관계를 넘어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에게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를 통해 위로를 전한다. 어린 왕자는 자기 별에 꽃을 피운 장미꽃에게 시간과 정성을 다한다. 장미꽃에게 물을 주고 밤이 되어 쌀쌀해지면 유리 덮개를 씌워준다. 장미꽃은 어린 왕자가 자신에게 쏟는 시간의 소중함을 모른 채 기분 나쁜 말들을 한다. 어린 왕자가 다른 별로 떠나게 되자 자존심이 강한 장미꽃은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어린 왕자에게 빨리 떠나라고 한다.
어린 왕자는 지구에 도착해 장미꽃과 똑같은 5천 송이의 꽃들을 보게 된다. 하지만 수많은 꽃들 중에 소중한 것은 자신의 별에 두고 온 장미꽃뿐이다. 덮개를 씌워주고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준 꽃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만난 여우와 어린 왕자가 작별할 때 나눈 대화가 아주 인상적이다.
어린 왕자: 잘 있어
여우: 그래 잘가, 이제 내 비밀을 말해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게 또 있어.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바로 네가 그 꽃을 위해 바친 시간이야. 사람들은 이 단순한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넌 잊으면 안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 너는 영원히 책임을 져야 해. 너는 네 장미에게 책임이 있어.
확신이란 어느 날 갑자기 땅에 뚝 떨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평생 내 편을 만들려면 그만큼 정성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소중한 이유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 나의 시간을 쏟았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이 앨범 사진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수많은 난관을 만날 때마다 내가 좀 더 손해 보는 것 같더라도, 힘들더라도 조금 더 스스로를 내려놓고 손 내밀 수 있다면 당신은 준비가 되었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할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