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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경매러의 집 구하기 프로젝트

집은 올라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

경매로 나온 집 중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무조건 임장을 간다. 임장이란 일종의 현장답사로, 관심 있는 건물에 직접 가보는 것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직접 거주할 집이라면 몇 번이고 방문하여 그때그때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들을 눈여겨봐야 한다. 집 내부를 살펴보지 못해도 주변 상황에서 얻는 정보를 통해 경매에 참여할지 말지가 결정된다.  


현장에 답이 있다


보통 임장은 한 번으로 끝내면 안 된다고 한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경매 사이트에서 보기엔 괜찮았는데 막상 가보니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 험난(?)하여 경매 투지 의욕이 사라질 수도 있다. 실제로 임장을 가서 만족하기보다는 상상과 다른 현실에 놀라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예를 들어 봉천역 근처 경매 물건을 보러 갔더니 아래층에 천년 보살이 살고 있던 케이스를 들 수 있다. 천년 묵은 보살님이 사는 곳은 시끄러울지 모르므로 이 집은 조용히 스킵한다. 평소 조용한 것을 선호해 집을 볼 때도 주변 이웃, 반려견 유무를 체크하는 편이다. 개 짖는 소리로 고생한 경험이 있어 반려견 키우는 집은 되도록 피하고 싶다. 말이 통하면 모르겠으나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반려견 주인 때문에 골머리를 썩은 경험은 아직도 뇌리에 진하게 남아있다.


집 주변을 탐방하려면 아침과 저녁,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에도 가봐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한번 보고 맘에 들어 PICK한 집의 경우다. 아 여긴 아니구나’ 사이즈가 나오면 그렇게 다양한 시간대에 찾아갈 필요까진 없다. 지금까지 발품을 팔아 현장에 가본 집에 대해 소개해보자면 이렇다.


산을 오르고~ 산을 오르고~


1.     언덕 2개 집

화살표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계속 언덕을 넘고 넘었다


필자가 원하는 집 조건 중 하나가 관악구의 집을 구하는 것이다. (전편 참고: 경매로 신혼집 구하기) 그러다 보니 봉천, 신림 부근 물건을 주로 본다. 아시겠지만 관악구는 산을 깎아 집을 지었기 때문에 주택가로 들어갈수록 집 가는 길이 등산과 비슷하다. 언덕 2개 집도 비슷한 케이스다. 지도에서 보기로는 봉천역에서 멀어 보이지 않았다. 일단 가보자 하고 남자친구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봉천역 4번 출구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면 야트막한 부지에 주택과 아파트가 보이고 좀 더 걸으면 본격적으로 언덕길이 시작된다.


‘높은 산을 오르고 거친 강을 건너고 깊은 골짜기를 넘어서 생에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오늘도’

이적의 노래 ‘같이 걸을까’ 가사 중 일부


‘같이 걸을까’ 노래를 체험하다 보니 결혼과 집구하기란 닮은 데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것. 화려한 꽃길이 아닌 언덕길이라도 소중한 것을 위해 어려움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


‘조금만 더 힘내, 거의 다 왔어’ 서로를 격려해 주면서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한다. 함께 살 집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듯 우리가 언덕을 오를 일이 생겨도 서로의 등을 밀어줄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길 바라본다.


2.     천년된 이무기일지도 모르는 보살님이 이웃

이번에 찾아간 집은 집뿐만 아니라 이웃에게서도 연식이 느껴졌다. 1970년대 건물 보존등기(건물등기부에 건물에 대한 일정한 권리관계를 기재하는 일, 네이버 지식백과 출처)가 된, 쉽게 말하면 1970년대에 지어진 집이다. 임장을 가기 전 물건현황을 보니 30년이 넘은 집이었다. 이 집을 보러 간 이유는 단 하나,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지상에 있는데 크기 40m2에 1억 중반의 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가격이 싸도 도저히 살만한 집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겉은 멀쩡해 보였지만 좀만 안쪽으로 들어가 내부 구조를 보니 겉만 깨끗해 보이게 리모델링한 건물이었다. 경매로 나온 집은 2층이었는데 1층에는 ‘천년 보살’ 간판을 내건 분이 살고 계셨다.


이웃의 미덕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년 보살님이 평소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으나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집을 뚫고 나와 다세대주택을 감싸고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웃은 만나지 않는 게 복이라고 생각하므로 여러 면에서 올드한 이 집은 패스했다.


3.     위반건축물로 지정된 집

위반증축물 예시

빌라를 가만히 살펴보면 가장 위층이 반듯하게 직사각형인 집을 보기 힘들다. 그 이유는 위반건축물 때문이다. 빌라의 맨 꼭대기 층을 보면 새롭게 증축한 것 같은 위반건축물이 있는 경우가 많다. 경매에서 위반건축물 여부를 따져야 하는 이유는 ‘강제이행금(벌금)’ 때문이다. 예전에는 몇 차례 벌금을 내면 더 이상 돈을 내지 않아도 됐으나, 현재는 위반건축물이라면 본래 용도에 맞도록 변경되기까지 계속해서 벌금을 부과한다.


겉보기에 주택이라고 해서 모두 주택은 아니다. 모양이 그럴싸해도 건물의 용도에 따라 목적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일반 거주용 집처럼 보이는데 용도가 근린생활시설, 상가라면 집을 산 이후 세금을 더 많이 내는 등 변수가 생길 수 있다. (근린생활시설은 쉽게 말해 음식점, 동사무소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을 뜻하며 제1종 근린생활시설과 제2종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된다) 건물은 처음 지을 당시부터 법적 규제에 맞도록 설계를 하므로 용도를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


건물 용도는 ‘건축물대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건축물대장은 정부24에서 ‘건축물대장 등초본 발급(열람) 신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무단, 혹은 불법건축물이 아닌지 확인해 볼 때도 건축물대장을 참고해야 한다.


4.     화려한 소음이 집을 감싸네

신대방역에서 도보로 10분~15분 거리에 있던 집을 보러 갔다. 신도림에서부터 신대방까지는 2호선 지하철이 지상으로 다닌다. 신림으로 진입하는 부분에서 전철이 지하로 들어가는데 신대방에서는 맹렬하게 지하철이 달린다고 보면 된다. 근처에 전철이 다니지만 역에서 좀 떨어진 거리라 소리가 들리지 않을 줄 알았다. 타깃인 건물 옥상까지 올라가 봤다. 옥상에 방수페인트 칠이 잘 되어있는지 확인하고 있는데 전철이 지나가면서 화려한 울림을 준다. 몇 분에 한 대씩 양옆으로 다니는 지하철 소음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가격이나 위치 면에서 나쁘지 않았고 한 번 도전해 볼까 했지만 소음 때문에 입찰을 포기했다.


예상은 했지만 마음에 드는 집 구하기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워낙 경매로 나온 집들이 적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러던 중 사당역과 낙성대역 사이에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게 된다. 지리적 위치와 크기나 가격 모두 적정 수준이었던 남현동 쉐르빌 입찰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자세히 말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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