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면 해가 뜰까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 세 가지를 물어본다면 바퀴벌레, 비 오는 월요일 아침 그리고 비 오는 월요일 아침 출근을 말한다. 2020년 7월 20일 아침은 눈을 뜨자마자 비 내리는 회색빛 하늘을 보며 시작한다.
‘버스 배차 간격이 shit이거나 사람으로 미어터지겠군’
끼여가지 않으려면 민첩하고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네이버 지도 앱을 켜서 바로 오는 버스가 몇 분 뒤에 올지 확인해 본다. 7시 50분. 신도림으로 가는 집 앞 버스 정류장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50분에 더 이상 올라탈 자리도 없는 사이를 비집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체할 것 같이 꾸역꾸역 밀려든다. 그들이 떠나간 자리를 다음 사람들이 또다시 채울 때쯤 새로운 버스가 온다. 앞선 자들이 더욱 많이 자신들을 꾸겨 넣을수록 뒤에 사람들은 좀 더 편하게 버스를 탄다.
1단계: 버스 완료
2단계: 지하철 시작
오전 8시 19분까지 신도림행 열차를 타면 자리에 앉아갈 수 있다. 주로 교대 이상으로 멀리 가는 사람들이 신도림행 열차를 타기 위해 달린다. 8시 13분에 자리에 앉아 ‘오늘은 각 역마다 지연되려나’ 생각한다. 달리던 열차를 멈추게 하는 것은 사람과 열차다. 응급환자가 발생하거나 열차가 전 역을 출발하지 못하면 각 역마다 나란히 늘어선 열차들끼리 종종걸음을 잰다.
열차를 빨리 탄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8시 전에 신도림행 열차를 타면 사람들은 기꺼이 만두 속처럼 스스로를 꾹꾹 눌러 담는다. 열차라는 만두피는 사람들을 매 역마다 삼키며 갈 길을 간다. 그 안에서 눌리고 터지고 서로를 노려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부딪힐 뿐. 앉았다고 해서 쉬운 것은 아니다. 점점 밀려들어오는 사람들을 피해 몸을 꼬깃꼬깃 접다 보면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른다.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마저도 사치다. 자리에 앉아 지켜보는 서서 가는 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이맛살이 찌푸려져 있다.
제일 시간이 안 가는 구간은 사당역에서 교대역이다. 산모가 진통을 하면 자궁문이 열릴수록 점점 진통 주기가 짧아지며 고통이 극심해진다고 한다. 아무도 내리지 않고 신도림역부터 교대역까지 가는 열차에서 사당역~교대역 구간은 출근을 위한 마지막 진통 구간이다. 출근하다 보면 응급환자 발생으로 열차가 멈추는 일인 이틀에 한번 꼴로 발생한다.
지하철 안내 음성: 앞 열차에 응급환자가 발생하여 열차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오늘도 또 누군가가 고통 속에서 쓰러졌겠구나’라는 생각을 삼키며 열차가 출발하길 기다린다. 응급환자가 발생한 것치곤 꽤 재빠르게 일이 처리되고 열차는 곧 출발한다. 오늘도 교대역에서 쾌변의 즐거움을 만끽하듯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 그 뒤를 따른다.
일사불란하게 빠져나가는 사람들 앞으로 어떤 여자 하나가 비틀거리다가 벽에 기대선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직감했다. 벽에 기대서 안정을 취하는 중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여자는 앞으로 몇 걸음 더 움직이려다 무방비 상태로 쓰러지고 만다. 정신이 있는 상태라면 손으로 땅을 짚어 머리를 보호한다. 하지만 자신을 보호해야 할 손은 아무것도 보호하지 못한 채 힘을 잃고 말았다. 여자의 머리는 던진 공이 땅에 꽂히듯 바닥에 부딪혔다. 사람들이 주변으로 모여들고 누군가는 119를 부르고 누군가는 여자의 맥을 짚어본다.
'한번 쓰러져 보고 싶다'
철없는 소리는 건강이 무기인 나이라 할 수 있는 소리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정신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가슴을 점점 옥죄어 오는데 숨을 쉬려고 깊숙하게 심호흡을 해도 공기가 폐로 들어오지 않는다. 구멍 난 폐로 공기를 집어넣는 기분, 물 밖으로 나온 고기가 아가미를 열심히 움직여도 결국 죽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열심히 숨을 쉴수록 눈 앞이 점점 새하얗게 질리다가 어느 순간 의식의 불이 ‘탁’ 꺼진다. 타노스의 손가락 튕김으로 우주의 절반이 사라지듯 그렇게 눈 앞의 모든 것이 암흑 속으로 빠진다.
여자는 쓰러지기 직전까지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그녀가 열차 안에서 정신을 잃었다면 열차 안에 있던 사람 중 누군가는 열차가 지연된다며 짜증을 냈을 것이다. 아픔과 고통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다 그런 것이라며 너만 출근하는 게 아니라며 유난 떨지 말라며 출근길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모두들 쓰러지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이 또한 지나가기 때문에 당신은 잘 해낼 수 있다고. 하지만 쓰러지는 것에는 안전장치가 없다. 넘어지면서 손으로 바닥을 짚으면 손바닥에 상처를 남기는 정도로 끝나겠지만 머리를 다치면 그보다 심각한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일상을 사는, 죽지 못해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는 오늘의 출근길이 안전장치 없는 추락일지도 모른다.
이번 주에는 계속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유난히 긴 장마가 언제쯤 끝날지, 지난한 장마를 견뎌야 하는 사람들 모두가 쓰러지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갈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