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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평김한량 Sep 27. 2017

사람의 속도.

사람은 보폭만큼 걸어갈 때 안정을 느낀다. 

 좀 더 빠르게. 좀 더 많이. 우리는 사람의 속도를 초월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빠른 속도의 쾌감을 즐기며 인생을 더 효율적으로 살고자 노력합니다. 이런 속도는 쾌감을 선사해줍니다. 효율적인 것은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속도를 초월한 생활은 어쩌다 한 번이 적당합니다. 단지 빠르게 이동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변화는 오히려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그런 빠른 속도의 변화는 전적으로 사람이 감당하기에 쉽지 않은 일입니다. 


1. 잠들기 전의 공허함. 

2. 자고 일어나서의 부담감. 

3. 일상에서 대중 속의 외로움. 


만약 이런 감정을 느끼신다면. 몸과 마음에서 상시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잠들기 전의 공허함은 하루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을 때 발생합니다. 그것은 벌린 일은 많으나 어느 것 하나 마무리하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너무 많은 일이라는 것은 남들이 하는 만큼이 아닙니다. 본인의 보폭보다 빠르게 진행하다 보면 일은 계속해서 벌어지기만 하고 맺음을 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무언가에 시달리게 되면 자기 전까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잠이 듭니다. 역시 깊은 숙면은 취하기 힘들며. 그다음에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마무리되지 못할 무언가에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자고 일어나서는 우리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하게 되면 심장이 쿵쾅쿵쾅 뜁니다. 아이가 마치 생동감을 얻으며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현상입니다. 하지만 언제 그렇게 아침에 일어나서 유쾌하게 밖으로 달려 나갈까요? 나이가 들 수록 그런 일은 줄어들게 됩니다. 이것 역시 몸과 마음에서 경고합니다. 하루의 시작이 두려운 것은 속도의 문제입니다. 


사람의 속도를 초월한 관계 역시 문제입니다. SNS에 각종 메신저까지 계속해서 네트워크는 연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동시에 여러 명이 아닙니다. 단 한 명과 집중해서 대화를 하는 것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무한히 확장하는 네트워크 안에서 사람은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카톡이나 문자 등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제 속도는 손글씨 정도이며. 간단한 리플 이외에 많은 소통은 제 속도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아이들과 뛰어노는 것이 속도에 맞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걸음걸이 속도. 


우리의 걸음걸이는 속도가 있습니다. 그 속도에 맞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이 롤러코스터 속도의 삶이라고 상상해보십시오. 한두 번이야 재미를 느끼겠지만. 그것도 일상이면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의 요구가 롤러코스터의 속도라고 해서 그렇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 속도에 맞춰 살다 보면 언젠가는 지쳐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에 너무 익숙해지게 되면 오히려 자신의 걸음걸이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비관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엄연히 우리는 우리의 보폭에 맞는 속도가 있습니다. 그것을 초월한 속도는 우리의 속도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우리를 돕기 위해 나타난 기계의 속도입니다. 그것에 맞춰 살게 되면 진정한 자신을 잃게 됩니다. 


밤에 포근하게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 희망을 노래하며. 사람 관계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삶. 이것은 머나먼 이야기가 아닌. 각자의 선택에 의해서 하나씩 바꾸어 나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걸음걸이 속도를 잊었다면. 


이제부터라도 스텝을 바꿔보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속도는 분명 존중받아야 합니다. 


이상 양평 김한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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