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겐 여러가지 감정이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전이가 된다. 세상의 뉴스에는 희망보단 절망이 많다. 그렇다고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원래 뉴스는 그랬다. 그것에 전이될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좋은 일도 많다. 누군가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이야기. 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인기가 없다.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무언가 드라마틱한 불행은 다른 사람의 주목을 쉽게 받는다. 그게 뉴스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착각한다. 세상은 두려워할 곳이라고. 더이상 아름답지 않다고. 하지만 그것도 완전한 사실은 아니다. 과거엔 먹을 것 때문에 옆동네와 전쟁을 하던 부족 시절도 있었다. 유럽도 아시아도 모두 마찬가지 였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전쟁이 많아도 과거에 비해 경험하기 힘들다. 그러나 뉴스엔 끊임없이 나온다.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우리에게 생존본능을 준다. 그러나 매일이 두렵다면 우리는 겁쟁이가 된다. 내 힘으로 나 하나 먹여살릴 용기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농업국가 조차 한 명이 일을 하면 몇배의 생산이 이뤄졌다. 하물며 산업사회는 그것을 초과한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움츠려들어 있다. 겁은 전이 되어 모두가 두려워 하며 산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할 수 있는 환경에서 태어나기 마련이다. 숨을 쉴 수있는 산소가 있기에 지구에 인간이 태어나듯. 물고기가 물 속에서 태어나듯. 제각각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기에 태어나고 자라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환경을 두려워 하도록 배우고 있다.
본능적으로 두려움만 느끼며 산다면 그것은 주위의 잘못된 육아. 교육으로 인해서다. 어느 누구든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사업부도, 병, 관계 등. 수없이 많은 문제가 우릴 힘들게 한다. 하지만 그건 다 지난 일이고 100프로 똑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 그것으로 무엇을 배웠는가가 더 중요할 뿐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힘든 일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긴다. 과거의 전쟁들은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고. 이젠 누구든 혈기왕성하게 전쟁을 하자고 외치지 않는다.
나에게 힘든 일이 일어났거나 가족에게 힘든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으로 인해 내 삶이 힘들다면. 잠시 쉴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된다. 두려움에 떨거나 삶을 포기하고 사는 것 역시 익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질은 어떤 이름을 가졌는가나 환경이 아니다. 그 사람의 행동 그리고 생각이 본질이다. 같은 사건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은 제각각이다. 그렇기에 나의 두려움이 모두에게 똑같은 두려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 두려움을 자신의 성장에 쓰기 때문이다.
더이상 겁내지 말자. 세상은 지옥불이 타는 곳이 아니다. 아무생각 없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힘들어 하지 말자. 그들은 어차피 생각이 없다. 내일이면 자신이 무슨말을 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행복하자. 그리고 그 행복을 주변에 전이 시키자.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믿음 뿐이다. 믿음 안에 두려움을 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