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 대한 믿음. 그것이 행복감.

Henry님에 대한 답.

by 김준태의 인사이트

반갑습니다. Henry님.


저는 한국인의 행복을 위해 100년을 연구했습니다. 구한말부터 식민지를 계기로 이 땅에 사는 선조들에겐 많은 억울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억울하지 않기 위해 힘을 기르고 유래없는 경제적 부흥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게 1990년대 IMF 전까지 사회적 분위기 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해외를 돌고 서울과 여러 도시를 비교해도 한국의 인프라는 훌륭합니다. 동남아 사람들은 서울에 오는게 꿈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막상 한국인의 도시의 삶은 행복감이 넘칠까요?


여러연구에 따르면 각 가정의 부채는 상당하며. 그에 따른 부담도 상당합니다. 그 부담감이 가장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가정 구성원 모두에게도 다가옵니다.


결국 우리는 경제적 부흥이 과거의 희망이 넘치던 시대에서 돈만 많아지는 플러스 알파로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부작용이 없는 부흥인줄 알았으나 무엇이든 얻는게 있으면 잃는 것도 많았습니다.


돈을 얻었지만. 빚도 얻었고. 이전보다 더 바빠졌으며. 집값이 오른만큼 집이 커진게 아니라 집은 작아졌습니다. 개인의 공간은 더욱 협소해지고 이웃관계 가족관계 모두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대학, 취업 등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었지만. 오히려 그것은 안전한 울타리가 아니었습니다. 과거 당시에 희귀했고 인력이 필요해서 우대해주었던 것 뿐이었습니다.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우리는 그것이 경제적 부흥에서 오는 일시적 혜택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결과 그 혜택을 받았던 사람들도 이젠 무대에서 내려와 은퇴를 시작하고.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아예 꿈을 포기하게 됩니다.


과거의 가치관이 현재와 맞지 않으면서 일어나는 부작용들입니다. 그렇다면 똑같은 일을 겪은 해외 사례는 어떨까요?


서양은 기본적으로 나를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 철학을 바탕으로 했고. 일본은 조화를 중요시하는 조화사상을 한국은 유교적 분위기에서 문화를 중시합니다.


한국이 유독 남눈치를 많이 보는 것도 유교적 문화에서 비롯됩니다. 이것은 군대 혹은 기업에서는 유리하게 적용될 수 있었겠지만. 개인에 대한 특성을 길러주는 것엔 약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로인해 개인의 행복이 모여 사회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통해 행복을 얻는 것으로 비춰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눈치를 보는게 행복과 관련이 있을까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남을 의식하게 되면 생각도 부자연스럽고 활동도 부자연스럽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충실하되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자연히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행복과 연결되는 것을 찾기에 이릅니다.


만약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곁에 누군가 오더라도 대화 분위기는 자연스럽고 부드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남을 원망하는 사람과 대화하면 불신이 느껴지고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행복이 남을 행복하지 않게 하는 것은 아니므로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습니다. 이건 이기주의 혹은 개인주의와도 관련은 없습니다. 단지 행복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우리는 목표를 위해 삽니다. 그런데 그 목표가 대부분 조선시대와 비슷합니다. 입신을 위해 삽니다. 좋은 직장. 돈. 아파트 등. 그런데 그것을 얻기까지 과정은 모두 행복을 포기하고. 막상 얻어도 바빠서 행복을 포기합니다. 물질이 행복이 아님에도 그것을 가졌기에 행복하다고 스스로 위안합니다. 하지만 물질을 얻은 만족감은 불과 며칠 혹은 몇달입니다.


우리의 종교는 진리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종교가 있어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랑. 믿음. 진리 등을 알게 되면 사람은 분명 큰 행복을 누립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어딜가나 물질을 위해 기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리를 위해 가는 곳에서 진리에 대한 믿음 대신 더 많은 물질을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믿으면. 내가 믿는 종교도 온전히 믿게 됩니다.

직장을 잃더라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세상에서 불합리한 일을 겪더라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은 교육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교육의 본질은 잠재력 개발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면 우리의 교육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고. 늦었지만 자기 자신을 위한 교육에 대한 초석을 다시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시간이 지나도 늘 불안할 것이며.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고 해결되지 못할 방법으로 시간을 사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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