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5가지 즐거움이 없으면 절대 행복할 수 없다.
꿈이 없는 건 자랑이 아니다.
직업의 즐거움
관계의 즐거움
운동의 즐거움
취미의 즐거움
철학의 즐거움
먼저 최근에 꿈이 없는 세대가 대세가 되고 있다. 누군가는 꿈이 없어도 괜찮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런 책과 방송은 믿지 마라. 그런 말을 하는 그는 책과 방송으로 꿈을 이룬 사람이다.
먼저 직업의 즐거움.
사람은 성취감을 느끼는 동물이다. 산을 올라도 성취감을 느끼고. 책 한 권을 읽어도 성취감을 느낀다.
그런 성취감을 맛보는 건 결국 생산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잉여인간 취급을 받는다면? 그것만큼 견디기 힘든 일도 없을 것이다.
무언가 가슴이 뛰는 일을 찾는다는 걷는 거짓말이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3만여 개의 직업 중 자신이 즐길만한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문제지에 파묻혀 사느라. 어른들의 말씀에 의존하느라 자신의 선택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일을 찾아내지 못하게 된다. 중요한 건 스스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성취감. 그리고 일이다.
관계의 즐거움
요즘은 사람을 만나지 않는 시대다. 수명이 모여서 그냥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는 조직은 무너지고 있다. 단체 생활이 군대문화와 유사하게 흘렀다. 진짜 자신의 모습보단 남에게 튀지 않는걸 더 신경 썼다.
그러나 그런 건 관계가 아니다. 관계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혼자 사는 게 그렇게 좋으면 왜 모두가 무인도를 탈출하려 할까?
모두가 관계에 서툴렀다. 그래서 사람은 서로에게 질렸고 상처 받았다.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두려워하게 되어간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등을 돌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관계의 즐거움은 어떨게 누릴 수 있나?
먼저 서로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건 드래곤볼인데 누군가가 그것을 빼앗고 뽀로로를 강요한다면? 그런 관계는 오래갈 수 없다. 서로를 바꾸기보다는 있는 모습 자체가 용인되어야 한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부부 또한 동반자일 뿐 각자의 개성은 따로 있기 마련이다.
모든 비극은 서로를 바꾸려는 시도에서 시작된다. 그것만 포기해도 모든 관계는 회복될 수 있다.
운동의 즐거움
각자에게 적정 운동량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남이 운동하는 건 즐겨도 내가 운동하는 건 싫어한다. 그것은 운동의 즐거움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마의자는 스트레칭을 하면 필요 없는 제품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트레칭 대신 안마의자에 올라갔다 내려오길 선택한다.
운동은 너무 바쁘면 할 수 없고. 하기 싫은 운동 종목을 지속적으로 하게 될 경우 질리게 된다. 그리고 운동과 담을 쌓는다.
나는 걷기를 선호한다. 그리고 오래 달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무언가 격한 운동은 과거 심한 부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 이렇듯 각자에게 맞는 운동을 찾고 몸이 마음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돤다.
취미의 즐거움
사람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생산활동은 중요하지만 일만 하면 생산성은 급격히 줄어든다.
일은 취미보다 찾기 쉽다. 꼭 생산적이지 않더라도 그냥 좋아하는 걸 하면 된다. 심장이 뛰는 일을 찾으면 된다.
단 취미는 한 살이라도 나이가 어릴 때 찾는 것이 중요하다. 공부하고 취업해서 취미를 찾으면 너무 늦을 수 있다. 어릴수록 심장이 뛰고 신기한 게 많기 때문이다.
철학의 즐거움
철학이 없는 사람일수록 남의 눈치를 잘 본다. 그리고 남들과 다른 것을 걸릴까 봐 늘 노심초사한다. 이 모임 저 모임 다니며 휘둘린다. 그건 자신의 생각이 없기에 다수에게 의존하는 사람의 특징이다.
철학은 자신의 존재의 근거를 찾아준다. 그리로 누가 뭐라 하던 흔들리지 않게 해 준다.
철학하면 굶어 죽는다고 한다. 하지만 철학을 하지 않으면 밥은 먹어도 늘 불안해하며 남 눈치를 보게 된다.
행복은 스스로의 만족이다. 그러나 불안한 사람이 남 눈치를 보며 과연 만족을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