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도 쏜다는 나라 맞아?
"어머! 두 줄!!"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첫아이를 갖게 되었다. 미국 사는 것도 처음, 내 몸에 이런 변화가 생기는 것도 처음이었다. 만약 한국에 있었으면 맘카페라도 가입해 어디 산부인과 어떤 선생님이 좋은지 조리원은 어디가 좋은지, 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러야 할지 눈이 시뻘게지도록 각종 리뷰들을 살피며 한동안 고민했을 것이다. 결정 장애인 나에게는 오히려 더 다행이었을까? 내가 살던 시골에는 선택권이랄게 없었다. 이 동네에 보험 없고 가난한 유학생이 갈 수 있는 산부인과는 단 한 곳 밖에 없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LA나 NY엔 좋은 산부인과, 한국 의사들도 많고 조리원도 있다고 하던데... 슬프게도 나는 미국 살며 그런 동네는 한 번도 못 살아 봤다.
아무튼 내가 갈 수 있는 한 가지 옵션, 그곳은 Community Health Care(CHC)라는 보건소였다. 그곳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주변의 상점엔 유리에 도난 방치용 철창이 세워져 있었고 건물 벽에는 온통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었다. 밤늦게는 가끔 총소리도 들린다는 그런 곳이었다. 남편은 나에게 그쪽에 주차할 때 절대 동전 한 개라도 남겨 놓지 말라고 했는데, 창 밖에서 동전이 보이면 그거 몇 개를 훔치기 위해 차 유리창을 깨 버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그 보건소에 어떤 사람들이 드나드는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두어 달이 지나 드디어 의사를 만나는 날이 왔다. 간호사의 호명 후 안쪽에 들어가 전자식이 아닌 무게추로 재는 체중계로 체중을 재고 소변을 제출하고 여러 진료실 중 한 곳에 들어가 의사를 기다렸다. 진료실은 내가 상상한 산부인과 진료실 같지 않게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졸린듯한 눈으로 들어오시는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남아공 출신의 70은 넘을 것 같은 할머니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줄자 하나와 무언가 라디오 같은 것을 하나 들고 들어오셨다. 그것은 생긴 모양새가 꼭 등산로에서 노래 틀고 다니시는 할아버지들이 들고 다니시는 것 같았다. 다른 점은 전화선 같은 꼬불꼬불한 선이 달려있고 그 끝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는 점이었다.
선생님은 그 '라디오 같은 것'으로 아기 심장 소리를 들을 거라고 하셨다. '이게 뭐지?'라는 황당함이 앞서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몇 가지 질문을 하시고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시계를 보며 아기 심박수를 세고 줄자로 내 배를 이리저리 재시더니 'Good!' 이라며 몇 달 후 만나자고 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잔뜩 있었는데, 긴장하니 아무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고, 남아공 악센트가 강한 선생님의 말을 알아들으려 애쓰느라 에너지를 다 쓰고 났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까만 초음파 사진이라도 하나 집으로 들고 갈 수 있을 줄 알았던 나는 '이게 끝이야?' 이러며 허무하게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래되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임신 전체 기간을 통틀어 초음파는 20주 차쯤 한 번, 막달에 한 번, 이렇게 딱 두 번 봤던 것 같다.
매달 초음파를 보고 정밀 초음파에 4D 초음파로 아이 얼굴까지 미리 볼 수 있는 한국 산부인과에 비하면 여기는 정말 60-70년대 수준 같았다. 정말 이 나라 우주선도 쏘는 나라 맞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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