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의 3분의 2 지점을 잡는다. 조심스럽게 펼친다. 검정색과 파란색, 빨간색으로 이루어진 삼색 볼펜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낀다. 그러고 엄지를 볼펜 그립에 올리고, 검지와 엄지가 닿도록 한다. 끄적일 준비가 완료됐다.
나는 휘갈기면서 끄적이는 습관이 있다.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코로 맡은 것, 혀로 맛본 것, 손으로 만진 것 등을 교무수첩에 적어둔다. 즉 '오감'을 자극한 모든 것을 기록하려고 한다. 문뜩 떠올라 깨달은 것도 마찬가지다. 당장 교무수첩에 적을 수 없을 땐 '카톡'에 들어간다. '나와의 채팅방'을 오른손 엄지로 터치한다. 빠르게 키워드로만 입력한다. 유전자, 사교육 ··· 사피엔스, 이런 식으로.
습관은 축적을 낳는다. 나의 끄적이는 습관이 축적된 기록물을 낳았다. 그거 아는가? 축적된 모든 것은 자산이다. 매월 적립식으로 모아가는 주식만 자산이 아니다. 매일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적은 글들도 자산이고 재산이며 해자(moat)다.
『체육 교사의 교무수첩』의 글들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한 줄이 될 수도, 다섯 줄이 될 수도, 한두 장 분량이 될 수도 있다. 또한 그 글들의 성격도 다양할 것이다. 난폭하거나 젠틀하거나.
- 작가 이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