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이 있다. 서울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곳에서 혁신이 일어난다고 한다. 정원의 꽃들처럼 다양한 사람들(전문가들)이 모여 자기의 손 안에서 아직 발아하지 못한 지식, 정보, 아이디어 등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들 주고받는 통에 아이디어들끼리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뒤죽박죽 버무려진다. 편집된다. 무언가 창조됐다. 혁신이다.
서울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이 학교에도 있다. 특정 시간대에 밀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오후 12시 20분부터 1시 사이에 정점을 찍는다. 이후부터는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 '무인도'가 된다. 그곳은 바로 '급식실'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모든 교사들이 급식실로 향한다. 점심시간은 헤어져 있던 교사들이 유일하게 만나는 시간이다. 만나면 상봉한 이산가족처럼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오전에 무슨 일 없었는지, 그 교사와는 잘 지내는지, 진행 중인 계획은 잘 되어 가는지 등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침 튀기며 묻는다.
그리고 급식실은 깨달음을 얻는 곳이다. 수업과 업무에 관한 노하우들이 사방으로 퍼진다. '알짜 지식'들이 식판 위를 날아다닌다. 날아다니는 것들 중 내게 필요한 것을 귀에 담는다. 귀에 담은 것을 머리로 이동시킨다. 잊지 않기 위해 머릿속에서 굴린다. 되뇐다. 곱씹는다. 교무실로 들어가 교무수첩에 적어둔다. 학교라는 소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수 지혜가 또 하나 추가됐다.
어느 날 급식실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덕 교사(가명)가 걔네들은 왜 그럴까,라며 답답하고 짜증 나는 심정을 토해내고 있었다. 내 귀가 쫑긋했다. 그 말을 온전히 듣기 위해 입 속에 있는 음식물을 조용히 씹었다. 내 눈과 귀의 주의를 덕 교사의 입으로 기울였다.
"A 걔는 인사도 안 해. 인사할 줄을 몰라. 내가 먼저 인사해도 쌩까. '얘야 인사 좀 하지?'라고 말해도 뭘 질겅질겅 씹기만 하고 있어. 그리고 B 걔는 교무실에서 담임이랑 면담하고 복도로 나가면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아! 개빡치네!'라고 하더라."
덕 교사는 문뜩 또 한 명이 떠올랐는지 말을 급히 이어나간다.
"아, 맞아. C 걔. 걔 왜 그렇게 변했지? 밥 먹듯이 지각하고 결석하더라. 툭하면 늦는다 그러고, 툭하면 배 아프다고 학교 빠지겠대. 교복도 안 입어. 대학생처럼 사복 입고 다녀. 아줌마처럼 화장이나 하고. 욕을 입에 달고 살아. 소리 꽥꽥 지르면서 쏘다니고. 뭔가를 시키면 '제가 왜 해야 돼요?', '왜 저만 시켜요?', '싫어요, 안 해요!', '저 벌점 많으니까 상점이나 좀 주세요.'라고 답답한 소리를 하더라. 걔 작년에는 안 그랬는데. 애가 불쌍해졌어."
할 말을 다 했는지 덕 교사가 먼저 일어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터벅터벅 출구 쪽으로 걸어가 급식실 문을 열고 나갔다.
누가 이상한 걸까, 누구의 잘못일까? '요즘 애들'을 이해 못 하는 덕 교사의 잘못일까? 제대로 지도하지 못하는 덕 교사의 역량이 문제일까? 아니면 '요즘 애들'이 돼버린 학생들이 문제일까?
그것도 아니면 '누가' 문제일까? '누구'의 잘못일까?
- 작가 이강준